홍성수룡동당제

한국무속신앙사전
홍성수룡동당제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마을](/topic/마을) 뒷산 용두(龍頭) 정수리 부분인 ‘당산(堂山)’ 제당 터에서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아침에 무당을 초청하여 서해의 용왕신에게 지내는 당제. 당제를 지내는 당산을 ‘신령산(神靈山)’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현재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용미(龍尾)에 자리한 마을회관은 당제를 비롯한 마을의 중추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003년 10월 30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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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마을](/topic/마을) 뒷산 용두(龍頭) 정수리 부분인 ‘당산(堂山)’ 제당 터에서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아침에 무당을 초청하여 서해의 용왕신에게 지내는 당제. 당제를 지내는 당산을 ‘신령산(神靈山)’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현재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용미(龍尾)에 자리한 마을회관은 당제를 비롯한 마을의 중추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003년 10월 30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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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호
참고문헌충남 해안지방 동제의 [유형](/topic/유형)과 특징 (김종대, 문화재관리국, 1990)
충남 서해안의 [마을](/topic/마을) 공동체 신앙 연구 (이관호,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2)
충남 홍성지역의 마을신앙 (이관호, 충청문화연구 5, 한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1997)
수룡동당제 조사 연구 (이관호, 한국무속학 5, 한국무속학회, 2002)>
내포지역 마을신앙의 전승과 [변이](/topic/변이) (이관호,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특징역사․문화․지리적 배경 속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수룡동당제는 내용면에서 민속학상 몇 [가지](/topic/가지) 의미와 특징을 지닌다. 우선 [풍수](/topic/풍수)상으로 볼 때 수룡동은 용의 형국으로,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당산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서해의 용왕신에게 당제를 지낸다. 여기서 용(龍)은 한국의 대표적인 수신(水神)으로, 이러한 용의 보살핌이 있기 때문에 [마을](/topic/마을)이 더욱 평안하다고 생각한다.

제당의 형태에 있어서도 예부터 지금껏 당수와 제단을 기본으로 하는 자연제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은 노상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당제를 지내야만 하는 고통이 따랐지만 신에 대한 정성과 전통 보존이란 측면에서 당집을 짓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2003년에 수룡동당제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당집을 새로 지었지만 원당인 자연제당과 신축 당집 두 곳에서 당제를 지내고 있음도 특기할 만하다.

당의 신격에 있어 주신은 여신이자 서해의 용왕신인 당각시를 비롯하여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산신, 지신 등 오당을 모시고 있다. 이로 보아 수룡동당제는 다신론(多神論)적 성격을 지닌다. 실례로 수룡동에서는 예부터 지금까지 당제를 지낼 때 다섯 신에게 바칠 다섯 몫의 제물을 준비한다.

제의 과정은 크게 물 달아 오기, 상당제, 배고사, [거리굿](/topic/거리굿), [음복](/topic/음복) 및 결산, 삼일당제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 풍부한 물을 기원하는 의례인 ‘물 달아 오기’와 당제의 [흠향](/topic/흠향) 정도를 가늠하는 절차인 ‘삼일당제’ 등은 독특한 제의 절차로 주목할 만하다. 또한 다양한 제의 절차를 비롯해 절차마다의 풍부한 문화량 역시 서해안의 어로문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제의를 펼쳐 나가는 데 있어서도 대부분의 과정은 무당이 이끌지만 중요한 결정과 주도권은 당주와 마을 사람들에게 있다. 또한 상당제는 선주를 중심으로 한 남성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지만 거리굿은 아낙네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가정의 안녕을 기원한다. 반면에 배고사는 선주 가족이 중심이 되어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마을제가 대부분 행사 위주로 치우쳐 일부 사람들만이 참여하고 있는데 수룡동당제는 마을 사람들이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당제를 더욱 정성껏 모시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열정이 아직도 넘치고 있는 것이다. 수룡동 사람들 역시 주변 환경의 변화로 많은 부분에서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문화를 계승 및 보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수룡동당제의 민속학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충남 해안지방 동제의 [유형](/topic/유형)과 특징 (김종대, 문화재관리국, 1990)
충남 서해안의 [마을](/topic/마을) 공동체 신앙 연구 (이관호,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2)
충남 홍성지역의 마을신앙 (이관호, 충청문화연구 5, 한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1997)
수룡동당제 조사 연구 (이관호, 한국무속학 5, 한국무속학회, 2002)>
내포지역 마을신앙의 전승과 [변이](/topic/변이) (이관호,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특징역사․문화․지리적 배경 속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수룡동당제는 내용면에서 민속학상 몇 [가지](/topic/가지) 의미와 특징을 지닌다. 우선 [풍수](/topic/풍수)상으로 볼 때 수룡동은 용의 형국으로,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당산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서해의 용왕신에게 당제를 지낸다. 여기서 용(龍)은 한국의 대표적인 수신(水神)으로, 이러한 용의 보살핌이 있기 때문에 [마을](/topic/마을)이 더욱 평안하다고 생각한다.

제당의 형태에 있어서도 예부터 지금껏 당수와 제단을 기본으로 하는 자연제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은 노상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당제를 지내야만 하는 고통이 따랐지만 신에 대한 정성과 전통 보존이란 측면에서 당집을 짓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2003년에 수룡동당제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당집을 새로 지었지만 원당인 자연제당과 신축 당집 두 곳에서 당제를 지내고 있음도 특기할 만하다.

당의 신격에 있어 주신은 여신이자 서해의 용왕신인 당각시를 비롯하여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산신, 지신 등 오당을 모시고 있다. 이로 보아 수룡동당제는 다신론(多神論)적 성격을 지닌다. 실례로 수룡동에서는 예부터 지금까지 당제를 지낼 때 다섯 신에게 바칠 다섯 몫의 제물을 준비한다.

제의 과정은 크게 물 달아 오기, 상당제, 배고사, [거리굿](/topic/거리굿), [음복](/topic/음복) 및 결산, 삼일당제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 풍부한 물을 기원하는 의례인 ‘물 달아 오기’와 당제의 [흠향](/topic/흠향) 정도를 가늠하는 절차인 ‘삼일당제’ 등은 독특한 제의 절차로 주목할 만하다. 또한 다양한 제의 절차를 비롯해 절차마다의 풍부한 문화량 역시 서해안의 어로문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제의를 펼쳐 나가는 데 있어서도 대부분의 과정은 무당이 이끌지만 중요한 결정과 주도권은 당주와 마을 사람들에게 있다. 또한 상당제는 선주를 중심으로 한 남성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지만 거리굿은 아낙네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가정의 안녕을 기원한다. 반면에 배고사는 선주 가족이 중심이 되어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마을제가 대부분 행사 위주로 치우쳐 일부 사람들만이 참여하고 있는데 수룡동당제는 마을 사람들이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당제를 더욱 정성껏 모시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열정이 아직도 넘치고 있는 것이다. 수룡동 사람들 역시 주변 환경의 변화로 많은 부분에서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문화를 계승 및 보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수룡동당제의 민속학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정의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마을](/topic/마을) 뒷산 용두(龍頭) 정수리 부분인 ‘당산(堂山)’ 제당 터에서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아침에 무당을 초청하여 서해의 용왕신에게 지내는 당제. 당제를 지내는 당산을 ‘신령산(神靈山)’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현재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용미(龍尾)에 자리한 마을회관은 당제를 비롯한 마을의 중추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003년 10월 30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
정의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마을](/topic/마을) 뒷산 용두(龍頭) 정수리 부분인 ‘당산(堂山)’ 제당 터에서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아침에 무당을 초청하여 서해의 용왕신에게 지내는 당제. 당제를 지내는 당산을 ‘신령산(神靈山)’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현재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용미(龍尾)에 자리한 마을회관은 당제를 비롯한 마을의 중추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003년 10월 30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
내용당제는 용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마을](/topic/마을) 뒤편에 있는 당산에서 지낸다. 제장(祭場)은 당집 건물이 아닌 자연제당으로, 용의 머리 가운데 정수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마을을 비롯하여 멀리 천수만 앞 먼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가서도 당산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고 한다. 제단은 8평 정도의 자연제단으로, 당수(堂樹)인 소나무 두 그루 아래에 석축을 쌓아 평편하게 만들어 놓았다. 제단은 크게 제물을 차리는 공간과 [제관](/topic/제관) 일행이 제를 지내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그 주변에는 오래된 큰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러한 주변 환경은 누가 보더라도 이곳이 신성한 지역임을 금방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제를 지낼 때에는 추위와 눈보라를 피하기 위해 천막으로 임시제당을 짓는다. 임시제당은 당제가 끝나면 곧바로 철거한다.

수룡동당제가 2003년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면서 홍성군으로부터 1억 원의 지원금을 받아 자연제당 아래 서쪽 방향 산자락 끝에 당집을 지어 여기서 제를 지내고 있다. 당집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단청](/topic/단청)을 한 [기와집](/topic/기와집)이다. 내부는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지는 약 380㎡, 건축면적은 약 33㎡이다.

제당 안에는 정면으로 선반 위에 마을에서 위하는 다섯 신의 [위패](/topic/위패)가 놓여 있다. 마을에서 위하는 다섯 신은 왼쪽부터 당조부신지위(堂祖父神之位), 당조모신지위(堂祖母神之位), 당여신지위(堂女神之位), 당토지신지위(堂土地神之位), 당산신지위(堂山神之位) 순으로 모셔져 있다.

당제의 주된 목적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에 있다. 특히 바다를 [생업](/topic/생업) 현장으로 하여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뱃길에서의 무사함과 풍어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과 풍요로움에 대한 바람은 이들 어민에게 매우 자연스런 갈망이다. 또한 힘든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고 마을 사람 모두 어우러질 수 있는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최근에는 당제가 마을사람들의 단결과 화합의 자리가 되는 데에 무게를 크게 두고 있다. 아울러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당제를 보존․계승시켜야 한다는 측면도 하나의 목적이 되고 있다.

대상 신은 바닷가이니만큼 용왕을 주신(主神)으로 모신다. 즉 수룡동에서는 당제를 지낼 때 다섯 몫의 제물을 마련하는데 이는 다섯 신에게 바치기 위함이다. 다섯 신은 당각시,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산신(山神), 지신(地神) 등으로 오당(五堂)을 모시는 셈이다. 여기서 주신은 여신(女神)인 당각시이다. 이 당각시가 여신으로서 서해의 용왕신인 것이다. 예전에는 배마다 당각시를 배서낭으로 위했기 때문에 늘 화장품, [치마](/topic/치마), [저고리](/topic/저고리), 실, 바늘 등 여성용품을 함에 넣어 [봉안](/topic/봉안)하였다고 한다.

수룡동당제의 제의 절차 및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당주 선출 : 해마다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지내는 당제에 앞서 깨끗한 사람으로 ‘당주(堂主)’를 내고 축원을 전문적으로 해 줄 경쟁이[經巫]를 부른다. 즉 음력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마을에서는 [대동회](/topic/대동회)의를 개최하여 당제에 관한 일을 상의하고 당주를 선출한다. 당주는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아 선출한다. 일단 당주로 정해지면 일 년 내내 부정이 없도록 정성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해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근래에는 정초에 당주를 선출한 다음 모든 제의가 끝나는 대로 당주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번거로움이 있어 1995년부터는 마을 이장이 당제에 관한 일체의 일을 맡아 제를 주관하고 있다. 즉 현재는 마을 이장이 당주가 되어 초청된 무당과 함께 제를 지낸다. 여기서 무당은 주로 축원만 담당할 뿐이다. 제물 준비에서부터 제의 진행 등 일체의 과정은 이장과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주도된다. 한편 수룡동의 경우 인근 여느 지역과는 달리 타 지역에서 무당을 초빙하지 않고 주로 전형적인 충청도 굿인 앉은굿을 하는 경쟁이를 서부면 관내에서 초청한다.


2. 마을의 정화(淨化)와 금기(禁忌) : 당주가 선출되면 마을 사람들은 당제 지낼 준비를 한다. 서너 명씩 모여 자연스럽게 [금줄](/topic/금줄)을 꼬고 샘을 품으며 마을 이곳저곳을 깨끗이 청소한다. 금줄은 왼새끼에 [길지](/topic/길지)를 끼워 당주 집 [대문](/topic/대문)에 매달아 놓는다. 그럼으로써 신성함을 표시하여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는다. 아울러 마을 뒤쪽에 있는 천마산에 가서 [황토](/topic/황토)를 가져와 당주 집 대문 앞 양쪽에 한 무더기씩 뿌린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금토](/topic/금토)(禁土)’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주 집 이외에도 배가 있는 사람들은 황토를 대문 앞에 뿌려 놓는다. 그런 다음 당 [우물](/topic/우물)을 깨끗이 청소한다. 마을에는 여러 개의 우물이 있다. 그 가운데 당주 집과 가장 가까운 우물을 그 해 당우물로 정한다. 제의 기간에 이 우물물을 일반 용도로는 절대 사용할 수 없으며, 반드시 당제와 관련해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이 마[무리](/topic/무리)되면 마을 사람들은 부정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 조심한다. 마을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마을회의에서 날을 새로 잡아 제를 지낸다. 날이 정해지면 이웃 마을에 애사(哀事)가 있어도 참가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친(至親)이 사망하였더라도 문상(問喪)조차 하지 않는다. 또한 제를 앞두고 예상되는 ‘피[血]부정’을 막기 위하여 만삭의 임산부를 친정으로 보내거나 마을 바깥으로 피신시킨다. 여기서 마을 바깥은 당산 너머 육지 쪽에 있는 ‘용골’이다. 용골에서는 제당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을 밖이라고 관념한다. 즉 용골은 신성지역에서 벗어난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부정은 당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제당 주변에 있는 나무들에 대한 주민들의 금기 또한 대단하다. 예부터 지금껏 당산에 있는 나무를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심지어 마른 나뭇[가지](/topic/가지)나 솔잎조차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법이 없다. 이를 어기면 반드시 화(禍)를 입는다고 한다.


3. 제비(祭費) 마련과 비용 결산 : 제비는 정월 초닷새쯤에 걸립으로 장만한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서 쌀 석 되를 직접 당주 집에 갖다 주었으나 근래에는 이장이 중심이 되어 집집마다 방문하기도 하고, 마을사람들이 직접 이장에게 갖다 주기도 한다. 이를 ‘당추렴’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사 경비는 주로 선주들이 부담한다. 선주(船主)들은 추가로 배의 규모에 따라 일정액의 돈을 성의껏 내놓는다. 집안에 부정이 있으면 당제를 끝내고 결산할 때 낸다. 이 밖에도 당제 당일에 들어오는 축의금 등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한 번 제를 지내는 데 소요되는 경비는 100만 원 정도이며, 결산은 이튿날 이루어진다. 걸립하여 모은 경비는 제물 준비와 기타 경비로 쓴다. 초청한 무당에게는 20만 원 정도 준다.


4. 장 보기 : 제물은 광천 장에서 구입한다. 제물 구입은 당주가 정갈한 사람을 사서 준비하도록 시킨다. 물건을 구입할 때에는 소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또한 물건을 구입할 가게에 부정이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 부정이 없는 깨끗한 집에서 구입한다. 제물로 황소 머리 두 개, 삼색실과, 초, 소지종이 등을 구입한다. 여기서 쇠머리뼈는 제의가 끝난 뒤 반으로 쪼개 당산 서쪽 바닷가 나무에 매달아 둔다. 제물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짐승이 먹어 부정이 탈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제기는 당제를 위한 몫으로 마을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장만하지 않지만 제를 지낼 때 사용하는 자리는 매년 구입한다.


5. 제물 장만 : 제물은 당주 집에서 장만한다. 제물로는 쇠머리, 백설기, 팥시루떡, 삼색실과, 포, 술 등이 준비된다. 이때 제물은 당각시,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산신, 지신 몫으로 각각 다섯 상을 차린다. 상당제와 [거리제](/topic/거리제) 모두 동일하다. 단지 상당에는 백설기 시루, 거리제에는 팥시루떡을 각각 올리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술은 초닷샛날 쌀 한 말에 누룩 석 되로 담근다. 이장이 당제를 담당하면서부터는 아주머니들이 마을회관에서 제물을 준비한다.


6. 물 달아 오기 : 당제에 앞서 ‘물 달아 오기’ 행사를 치른다. 당제 준비를 마치면 마을 청년들은 각자 손에 빈 병을 하나씩 들고 물을 달러 간다. 수룡동은 물이 부족한 지역이기 때문에 물이 잘 나는 인근 지역에 가서 물을 달아 오는 것이다. 부근에서 가장 높은 천마산 줄기의 산에서 솟는 샘물을 병에 담아 병 입구를 솔잎으로 막아서 거꾸로 들고 마을로 돌아온다. 솔잎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천마산의 풍부한 수량(水量)을 수룡동으로 옮긴다는 믿음에서 행한 것이다.





1. [뱃기](/topic/뱃기) 세우기 : 배를 부리는 선주들은 열사흗날 아침이 되면 소유하고 있는 배의 수만큼 뱃기를 안[마당](/topic/마당)이나 대문에 세워 둔다. 그런 다음 밤이 되면 집안에 세워 두었던 뱃기를 들고 당주 집 대문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당주 집에 뱃기를 가지고 가장 먼저 들어가면 길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주 집 대문에 금줄이 걸려 있는 한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선주들은 대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당주가 밤 12시(제의 당일 0시)가 넘어 금줄을 걷으면 서로 먼저 들어가 마당에 뱃기를 세워 놓는다. 그러나 당주를 이장이 담당하면서부터 뱃기를 마을회관에 세워 놓았다가 당제 때 당으로 가지고 올라간다. 한편 당으로 가지고 올라가는 뱃기 이외에도 당제 기간에 선주 집 마당에는 뱃기를 계속하여 세워 둔다.


2. 당 오르기 : 당제 당일인 대보름날 아침 9시가 되면 당주 집 마당(요즘은 마을회관)에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 무당[경쟁이]이 당제의 시작을 알리는 징을 한 번 치면서 [비손](/topic/비손)을 한다. 이어 마을 사람들은 풍물패를 앞세우고 당산으로 향한다. 이때 당주는 참나무로 만든 [횃대](/topic/횃대)에 불을 붙여 들고 앞장을 선다. 횃불을 밝히고 가는 것은 혹시 모를 부정이 따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당주 뒤를 풍물패와 무당, 제물을 진 유사, 뱃기를 든 선주들 순으로 행렬을 지어 오른다. 기(旗)를 올릴 때에는 연령이 많은 순으로 하지만 내릴 때에는 반대 순으로 한다. 다른 어촌처럼 기를 올리고 내릴 때 서로 경쟁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당 주위에는 천막을 쳐 놓아 바람이 들지 않게 한다.


3. [부정풀이](/topic/부정풀이) : 당에 도착하면 무당(경쟁이)은 온갖 부정을 막기 위해 임시로 만들어 놓은 당 안으로 들어가 부정풀이를 한다. 사발에 [고추](/topic/고추)와 숯을 넣은 물을 가지고 축원을 하면서 당 주위를 한 번 돈 다음 이를 당 밖으로 쏟아낸다. 마을 사람들은 부정풀이가 끝날 때까지 절대 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무당이 부정풀이를 하는 동안 선주들은 자신의 뱃기를 당 옆에 가지런히 세워 둔다. 당주는 들고 온 횃불로 당 옆에 불을 [댕기](/topic/댕기)고 당 안으로 들어간다. 이 불은 제의가 끝날 때까지 꺼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4. 본제(本祭) : 부정풀이가 끝나고 [제상](/topic/제상)이 차려지면 경쟁이가 본제(本祭)를 지낸다. 본제는 경쟁이의 독경(讀經)에 의한 축원으로 구성된다. 경(經)을 읽는 사이사이에 선주와 마을 사람들은 당 안으로 들어와 절을 하고 복(福)을 기원하는 의미로 돈을 바친다. 이와 같이 서너 석(席)의 앉은굿을 한 다음 경쟁이는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당산소지-대동소지-당주소지-선주소지 순으로 올린다. 선주소지는 복 받는 행사와 겸해 실시한다. 이어 소지올리기가 끝나면 당산 신령님으로부터 복 받는 행사를 한다. 마을 이장이 나이 어린 선주부터 한 명씩 호명하면 해당 선주들은 제단으로 나와서 복(福)돈을 놓고 절을 한다. 이때 경쟁이는 선주를 위해 축원하면서 소지를 올려준다. 소지올리기가 끝나면 경쟁이는 선주에게 제주(祭酒), 백설기, 길지(吉紙) 등을 나누어 준다. [고사](/topic/고사) [덕담](/topic/덕담)을 받은 선주들은 이어 기를 내린다. 선주는 기를 내릴 때 경쟁이에게서 받은 떡과 고기를 길지로 싸서 뱃기 끝에 매단다. 선주들의 복 받는 행사가 끝나면 잠시 동안 제단 앞에서 풍물을 치며 마무리하는 것으로 상당제를 마친다.


5. 당산 내려오기 : 상당제가 끝나면 풍물을 치면서 기를 앞세우고 당산을 내려온다. 이때 제단 바로 아래에서 마을 기를 세워 놓고 경쟁이가 잠깐 동안 축원을 한다. 당제를 무사히 마치고 내려간다는 인사이다. 제가 끝나 당주 집으로 내려온 일행은 해산 행사를 한다.


6. 해산 행사 : 해산 행사는 마을 기를 세워 놓고 개인축원을 한다. 이때 호명하는 대로 한 사람씩 나와서 기를 잡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면 경쟁이가 축원을 해 준다. 개인 축원이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배고사 준비를 한다.





1. 뱃기 축원 : 배고사 준비를 하고 갯가로 나온 선주들은 다시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기를 내린다. 쌀이 담긴 함지박을 무당이 먼저 바닥에 내려놓으면 선주들 역시 순서대로 각자 준비한 쌀 꽃반에 뱃기를 꽂는다. 그러면 무당이 축원을 해 준다. 이어 무당은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topic/복숭아) 나뭇가지[東桃枝]로 만든 화살에 [시루떡](/topic/시루떡)을 끼워 사방으로 쏘아댄다.


2. 배고사 : 뱃기 축원이 끝나면 선주 내외들은 뱃기와 제물을 들고 각자 자신의 배에 가서 배고사를 지낸다. 제물은 집집마다 대동소이(大同小異)하지만 대개 시루, 탕, 과일, 고기, 조기 등을 마련한다. 배에는 선주와 가족만이 올라간다. 제물은 배 함판(중앙) 한 곳에만 차리지만 술은 이물, 고물, 함판 등에 각각 따라 놓는다. 배고사를 지내면서 선주는 “물아래 참봉, 물위 참봉 많이 운감하시오”라는 덕담을 곁들인다.





1. 제물 준비 : 배고사를 마치고 해가 져서 어둑해지면 거리굿을 시작한다. 거리굿은 원래 산고개(새마당)에서 지냈다고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선착장에서 지내다가 바다가 막히면서 지금은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마을회관에서 비닐로 임시제당을 만들어 놓고 지낸다. 거리굿은 마을에 들어오는 액운을 미리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이에 따라 거리굿의 제물은 당산제에서 쓴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단 백설기 대신 팥시루떡을 새로 마련하여 올린다.
한편 당산에서 모신 당제가 선주 중심인 것과 달리 거리굿은 아낙네들의 정성으로 이어진다. 각 가정에서는 [대주](/topic/대주)(大主)의 주발에 [불밝이쌀](/topic/불밝이쌀)을 담아 만든 ‘꽃반’을 각자 들고 나와 제상 옆에 차려 놓는다. 꽃반은 대개 하나를 준비하지만 특별히 정성을 들이고 싶은 집에서는 식구 수대로 마련하기도 한다.


2. 거리굿 : 거리굿 역시 경쟁이가 주관한다. 경쟁이가 경을 읽는 동안 아낙네들은 제장(祭場) 주위에서 치성을 드린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희망자에 한해 당 안으로 들어와 절을 하고 복(福)을 기원하는 의미로 돈을 바친다. 축원을 마친 경쟁이는 이어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거리소지-대동소지-당주소지-세대주소지 순으로 올린다. 세대주소지를 올릴 때 꽃반을 준비한 가정에서는 앞으로 나와 자기 꽃반에 절을 하고 복돈을 놓는다. 그러면 경쟁이는 [쌀점](/topic/쌀점) 신수를 보면서 덕담을 해주고 제물을 조금씩 나누어 준다.


3. [용왕제](/topic/용왕제)와 사살막이 : 거리굿을 끝낸 다음 경쟁이는 바닷가로 나가 비손을 하면서 용왕제를 지낸다. 이때 ‘사살막이’라 하여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로 만든 활과 화살로 액막이를 한다. 사살막이는 ‘사살풀이’ 또는 ‘퇴식(退式)’이라고도 한다. 사살막이는 [수수](/topic/수수)팥 범벅으로 만든 새알심을 동도지(東桃枝)로 만든 화살에 꽂아 동서남북으로 쏘는 것으로, 마을의 잡귀잡신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용왕제를 마친 경쟁이는 혹시 잡귀(雜鬼)가 뒤따라올까 염려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로 돌아온다.


4. 거리제 : 사살막이가 끝나면 약간의 음식을 차려서 마을로 들어오는 삼거리로 나가 거리제를 지낸다. 육지 쪽으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음은 물론 도로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해서이다. 즉 마을 어귀 삼거리에 짚을 깐 다음 제물을 차려 놓고 그 옆에 짚불을 지펴 놓는다. 이어 경쟁이가 경문을 외어 해(害)를 물리면 제물을 사방에 흩뿌린다. 마을 어귀 [문인석](/topic/문인석)(門人石)이 있는 곳에도 제물을 떼어내 [한지](/topic/한지)로 싸서 놓아둔다. 이는 잡귀잡신을 풀어먹이는 것이다.



모든 제의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제물을 나누어 먹으면서 밤새 흥겹게 논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풍물을 치면서 나 등을 한다. 이러한 놀이는 당제가 치러지는 중간중간에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다시 모여 제비 결산을 보고, 쇠머리국을 끓여 먹으면서 하루를 즐긴다.



[선소리](/topic/선소리) : [장군](/topic/장군)님 전에 명복을 받아 우리 배 유덕선 도장원 했구려.
후 렴 : 아~하 아~에 에헤이요오 에~헤 어어이 어허어 어~ 에~헤 에어이 어어허이요오~
선소리 : 사해 바다 용왕님 복을 받아 만배등 장원을 우리가 했구려.
후 렴 : 아~하 아~에 에헤이요오 에~헤 어어이 어허어 어~ 에~헤 에어이 어어허이요오~
선소리 : 우리 배 선주님 거동보소. 조기 불뚝타고 덩실덩실 춤만 추누나.
후 렴 : 아~하 아~에 에헤이요오 에~헤 어어이 어허어 어~ 에~헤 에어이 어어허이요오~
선소리 : 금년신수 대통하여 춘하추동 행차마다 대만선이로다.
후 렴 : 아~하 아~에 에헤이요오 에~헤 어어이 어허어 어~ 에~헤 에어이 어어허이요오~



- 양당 성황님 모셔다 싣고 연평 바다로 돈 실러 가세.
- 연평 칠산 널린 칠령 한 쌍만 남기고 다 잡아 실었네.
- 암애수애 맞마처 놓으니 아드레 밖에 두둥실 나떴네.
- 옥동도화 만사춘하니 가지가지가 봄빛이로고나.
- 삼국충신 도원수는 [임경업 장군](/topic/임경업장군)이 분명하구나.
- 입하소만은 연평도 파시오소, [대서](/topic/대서) 절기엔 수입도 작사라.
- 정월달부터 치는 북을 일 년 열두 달 내눌러 치누나.
- 뱃집의 아줌마 인심 좋아 막뚝딸 길러 화장해 줬다네.
- 순풍 바람에 돛을 달고 연평 바다에 결 없이 몰았네.
- 연평 바다 높이 뜬 갈매기야 정든 임 소식을 전하여 다오.
- 허리대 꼭대기 서리화 꽂고 가운데 마장에 봉죽꽃 피었네.
- 달도 밝고 명랑한데 고향 생각이 절로 나누나.
- 배 떠날 때는 높바람 불더니 환고향 할 때는 갈바람 분다.
- 만선에 깃발을 꼬작끗 달고 마파람 불라고 성황님께 조르네.
- 금년도 신수대통하여 김선주 불러 도장원 줬다네.
- 연평도 산마루 북소리 나드니 오늘도 상봉에 정든 님 만나네.
- 우리 배 동사들 힘을 모아 세세년년 대풍어 이루세.
- 이물고물대 만선기 달고 징 북소리에 궁둥춤 추누나.
- 뱃집에 아줌마 거동보소 닭 잡아 가지고 술



제를 마친 뒤 사흘째 되는 날에는 ‘삼일당’이라 하여 당주 내외만이 당산에 올라가 제사를 지낸다. 직접 산에서 메를 지어 간단하게 올리는 이 제사는 당제를 잘 [흠향](/topic/흠향)(歆饗)했는가를 가늠하는 마지막 절차이다. 이때 삼일당에 올릴 술은 당제를 지낼 때 따로 남겨 둔다. 저녁 8시쯤 당주 내외가 당산으로 올라가 메를 짓고 불밝이쌀과 함께 술을 올린 다음 간단히 제를 지내고 내려온다. 근래에는 메를 집에서 직접 지어 올라가지만 예전에는 산에서 직접 지어 솥에 숟가락 두 개를 꽂아 올렸다고 한다. 삼일당을 마치고 당주 내외가 내려오면 마을 사람들은 삼일당에 올린 메를 나누어 먹는다. 삼일당제를 마지막으로 모든 당제 절차는 끝을 맺는다.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하여 살아가고 있는 수룡동 사람들에게 있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당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산업개발 논리에 밀려 지형지세와 삶의 생활방식이 변해 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정신적 지주로 오랫동안 역사를 함께해 온 당제는 그들의 삶과 유리되지 않은 채 지금도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금도 수룡동당제는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 채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개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마을제가 대부분 행사 위주로 치우쳐 일부 사람들만이 참여하고 있는 데 반해 수룡동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바다가 막혀 생활 터전이 사라졌음에도 멀리까지 나가 어업활동을 함은 물론 조상 대대로 해 오던 당제를 더욱 정성껏 모시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열정은 아직도 넘치고 있는 것이다.

점차 생활 터전을 잃어 가면서 마을을 떠나는 세대가 많아지고, 그에 따른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마을 사람들은 당제가 사라질까봐 걱정하고 있다. 오랫동안 마음의 안식처로 자리 잡아 온 당제가 마을 사람들의 노력만으로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99년 수룡동에서는 당제를 보존 계승하기 위한 노력으로 ‘수룡동당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이를 계승시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3년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용당제는 용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마을](/topic/마을) 뒤편에 있는 당산에서 지낸다. 제장(祭場)은 당집 건물이 아닌 자연제당으로, 용의 머리 가운데 정수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마을을 비롯하여 멀리 천수만 앞 먼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가서도 당산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고 한다. 제단은 8평 정도의 자연제단으로, 당수(堂樹)인 소나무 두 그루 아래에 석축을 쌓아 평편하게 만들어 놓았다. 제단은 크게 제물을 차리는 공간과 [제관](/topic/제관) 일행이 제를 지내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그 주변에는 오래된 큰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러한 주변 환경은 누가 보더라도 이곳이 신성한 지역임을 금방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제를 지낼 때에는 추위와 눈보라를 피하기 위해 천막으로 임시제당을 짓는다. 임시제당은 당제가 끝나면 곧바로 철거한다.

수룡동당제가 2003년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면서 홍성군으로부터 1억 원의 지원금을 받아 자연제당 아래 서쪽 방향 산자락 끝에 당집을 지어 여기서 제를 지내고 있다. 당집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단청](/topic/단청)을 한 [기와집](/topic/기와집)이다. 내부는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지는 약 380㎡, 건축면적은 약 33㎡이다.

제당 안에는 정면으로 선반 위에 마을에서 위하는 다섯 신의 [위패](/topic/위패)가 놓여 있다. 마을에서 위하는 다섯 신은 왼쪽부터 당조부신지위(堂祖父神之位), 당조모신지위(堂祖母神之位), 당여신지위(堂女神之位), 당토지신지위(堂土地神之位), 당산신지위(堂山神之位) 순으로 모셔져 있다.

당제의 주된 목적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에 있다. 특히 바다를 [생업](/topic/생업) 현장으로 하여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뱃길에서의 무사함과 풍어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과 풍요로움에 대한 바람은 이들 어민에게 매우 자연스런 갈망이다. 또한 힘든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고 마을 사람 모두 어우러질 수 있는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최근에는 당제가 마을사람들의 단결과 화합의 자리가 되는 데에 무게를 크게 두고 있다. 아울러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당제를 보존․계승시켜야 한다는 측면도 하나의 목적이 되고 있다.

대상 신은 바닷가이니만큼 용왕을 주신(主神)으로 모신다. 즉 수룡동에서는 당제를 지낼 때 다섯 몫의 제물을 마련하는데 이는 다섯 신에게 바치기 위함이다. 다섯 신은 당각시,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산신(山神), 지신(地神) 등으로 오당(五堂)을 모시는 셈이다. 여기서 주신은 여신(女神)인 당각시이다. 이 당각시가 여신으로서 서해의 용왕신인 것이다. 예전에는 배마다 당각시를 배서낭으로 위했기 때문에 늘 화장품, [치마](/topic/치마), [저고리](/topic/저고리), 실, 바늘 등 여성용품을 함에 넣어 [봉안](/topic/봉안)하였다고 한다.

수룡동당제의 제의 절차 및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당주 선출 : 해마다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지내는 당제에 앞서 깨끗한 사람으로 ‘당주(堂主)’를 내고 축원을 전문적으로 해 줄 경쟁이[經巫]를 부른다. 즉 음력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마을에서는 [대동회](/topic/대동회)의를 개최하여 당제에 관한 일을 상의하고 당주를 선출한다. 당주는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아 선출한다. 일단 당주로 정해지면 일 년 내내 부정이 없도록 정성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해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근래에는 정초에 당주를 선출한 다음 모든 제의가 끝나는 대로 당주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번거로움이 있어 1995년부터는 마을 이장이 당제에 관한 일체의 일을 맡아 제를 주관하고 있다. 즉 현재는 마을 이장이 당주가 되어 초청된 무당과 함께 제를 지낸다. 여기서 무당은 주로 축원만 담당할 뿐이다. 제물 준비에서부터 제의 진행 등 일체의 과정은 이장과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주도된다. 한편 수룡동의 경우 인근 여느 지역과는 달리 타 지역에서 무당을 초빙하지 않고 주로 전형적인 충청도 굿인 앉은굿을 하는 경쟁이를 서부면 관내에서 초청한다.


2. 마을의 정화(淨化)와 금기(禁忌) : 당주가 선출되면 마을 사람들은 당제 지낼 준비를 한다. 서너 명씩 모여 자연스럽게 [금줄](/topic/금줄)을 꼬고 샘을 품으며 마을 이곳저곳을 깨끗이 청소한다. 금줄은 왼새끼에 [길지](/topic/길지)를 끼워 당주 집 [대문](/topic/대문)에 매달아 놓는다. 그럼으로써 신성함을 표시하여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는다. 아울러 마을 뒤쪽에 있는 천마산에 가서 [황토](/topic/황토)를 가져와 당주 집 대문 앞 양쪽에 한 무더기씩 뿌린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금토](/topic/금토)(禁土)’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주 집 이외에도 배가 있는 사람들은 황토를 대문 앞에 뿌려 놓는다. 그런 다음 당 [우물](/topic/우물)을 깨끗이 청소한다. 마을에는 여러 개의 우물이 있다. 그 가운데 당주 집과 가장 가까운 우물을 그 해 당우물로 정한다. 제의 기간에 이 우물물을 일반 용도로는 절대 사용할 수 없으며, 반드시 당제와 관련해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이 마[무리](/topic/무리)되면 마을 사람들은 부정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 조심한다. 마을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마을회의에서 날을 새로 잡아 제를 지낸다. 날이 정해지면 이웃 마을에 애사(哀事)가 있어도 참가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친(至親)이 사망하였더라도 문상(問喪)조차 하지 않는다. 또한 제를 앞두고 예상되는 ‘피[血]부정’을 막기 위하여 만삭의 임산부를 친정으로 보내거나 마을 바깥으로 피신시킨다. 여기서 마을 바깥은 당산 너머 육지 쪽에 있는 ‘용골’이다. 용골에서는 제당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을 밖이라고 관념한다. 즉 용골은 신성지역에서 벗어난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부정은 당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제당 주변에 있는 나무들에 대한 주민들의 금기 또한 대단하다. 예부터 지금껏 당산에 있는 나무를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심지어 마른 나뭇[가지](/topic/가지)나 솔잎조차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법이 없다. 이를 어기면 반드시 화(禍)를 입는다고 한다.


3. 제비(祭費) 마련과 비용 결산 : 제비는 정월 초닷새쯤에 걸립으로 장만한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서 쌀 석 되를 직접 당주 집에 갖다 주었으나 근래에는 이장이 중심이 되어 집집마다 방문하기도 하고, 마을사람들이 직접 이장에게 갖다 주기도 한다. 이를 ‘당추렴’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사 경비는 주로 선주들이 부담한다. 선주(船主)들은 추가로 배의 규모에 따라 일정액의 돈을 성의껏 내놓는다. 집안에 부정이 있으면 당제를 끝내고 결산할 때 낸다. 이 밖에도 당제 당일에 들어오는 축의금 등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한 번 제를 지내는 데 소요되는 경비는 100만 원 정도이며, 결산은 이튿날 이루어진다. 걸립하여 모은 경비는 제물 준비와 기타 경비로 쓴다. 초청한 무당에게는 20만 원 정도 준다.


4. 장 보기 : 제물은 광천 장에서 구입한다. 제물 구입은 당주가 정갈한 사람을 사서 준비하도록 시킨다. 물건을 구입할 때에는 소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또한 물건을 구입할 가게에 부정이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 부정이 없는 깨끗한 집에서 구입한다. 제물로 황소 머리 두 개, 삼색실과, 초, 소지종이 등을 구입한다. 여기서 쇠머리뼈는 제의가 끝난 뒤 반으로 쪼개 당산 서쪽 바닷가 나무에 매달아 둔다. 제물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짐승이 먹어 부정이 탈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제기는 당제를 위한 몫으로 마을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장만하지 않지만 제를 지낼 때 사용하는 자리는 매년 구입한다.


5. 제물 장만 : 제물은 당주 집에서 장만한다. 제물로는 쇠머리, 백설기, 팥시루떡, 삼색실과, 포, 술 등이 준비된다. 이때 제물은 당각시,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산신, 지신 몫으로 각각 다섯 상을 차린다. 상당제와 [거리제](/topic/거리제) 모두 동일하다. 단지 상당에는 백설기 시루, 거리제에는 팥시루떡을 각각 올리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술은 초닷샛날 쌀 한 말에 누룩 석 되로 담근다. 이장이 당제를 담당하면서부터는 아주머니들이 마을회관에서 제물을 준비한다.


6. 물 달아 오기 : 당제에 앞서 ‘물 달아 오기’ 행사를 치른다. 당제 준비를 마치면 마을 청년들은 각자 손에 빈 병을 하나씩 들고 물을 달러 간다. 수룡동은 물이 부족한 지역이기 때문에 물이 잘 나는 인근 지역에 가서 물을 달아 오는 것이다. 부근에서 가장 높은 천마산 줄기의 산에서 솟는 샘물을 병에 담아 병 입구를 솔잎으로 막아서 거꾸로 들고 마을로 돌아온다. 솔잎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천마산의 풍부한 수량(水量)을 수룡동으로 옮긴다는 믿음에서 행한 것이다.





1. [뱃기](/topic/뱃기) 세우기 : 배를 부리는 선주들은 열사흗날 아침이 되면 소유하고 있는 배의 수만큼 뱃기를 안[마당](/topic/마당)이나 대문에 세워 둔다. 그런 다음 밤이 되면 집안에 세워 두었던 뱃기를 들고 당주 집 대문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당주 집에 뱃기를 가지고 가장 먼저 들어가면 길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주 집 대문에 금줄이 걸려 있는 한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선주들은 대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당주가 밤 12시(제의 당일 0시)가 넘어 금줄을 걷으면 서로 먼저 들어가 마당에 뱃기를 세워 놓는다. 그러나 당주를 이장이 담당하면서부터 뱃기를 마을회관에 세워 놓았다가 당제 때 당으로 가지고 올라간다. 한편 당으로 가지고 올라가는 뱃기 이외에도 당제 기간에 선주 집 마당에는 뱃기를 계속하여 세워 둔다.


2. 당 오르기 : 당제 당일인 대보름날 아침 9시가 되면 당주 집 마당(요즘은 마을회관)에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 무당[경쟁이]이 당제의 시작을 알리는 징을 한 번 치면서 [비손](/topic/비손)을 한다. 이어 마을 사람들은 풍물패를 앞세우고 당산으로 향한다. 이때 당주는 참나무로 만든 [횃대](/topic/횃대)에 불을 붙여 들고 앞장을 선다. 횃불을 밝히고 가는 것은 혹시 모를 부정이 따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당주 뒤를 풍물패와 무당, 제물을 진 유사, 뱃기를 든 선주들 순으로 행렬을 지어 오른다. 기(旗)를 올릴 때에는 연령이 많은 순으로 하지만 내릴 때에는 반대 순으로 한다. 다른 어촌처럼 기를 올리고 내릴 때 서로 경쟁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당 주위에는 천막을 쳐 놓아 바람이 들지 않게 한다.


3. [부정풀이](/topic/부정풀이) : 당에 도착하면 무당(경쟁이)은 온갖 부정을 막기 위해 임시로 만들어 놓은 당 안으로 들어가 부정풀이를 한다. 사발에 [고추](/topic/고추)와 숯을 넣은 물을 가지고 축원을 하면서 당 주위를 한 번 돈 다음 이를 당 밖으로 쏟아낸다. 마을 사람들은 부정풀이가 끝날 때까지 절대 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무당이 부정풀이를 하는 동안 선주들은 자신의 뱃기를 당 옆에 가지런히 세워 둔다. 당주는 들고 온 횃불로 당 옆에 불을 [댕기](/topic/댕기)고 당 안으로 들어간다. 이 불은 제의가 끝날 때까지 꺼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4. 본제(本祭) : 부정풀이가 끝나고 [제상](/topic/제상)이 차려지면 경쟁이가 본제(本祭)를 지낸다. 본제는 경쟁이의 독경(讀經)에 의한 축원으로 구성된다. 경(經)을 읽는 사이사이에 선주와 마을 사람들은 당 안으로 들어와 절을 하고 복(福)을 기원하는 의미로 돈을 바친다. 이와 같이 서너 석(席)의 앉은굿을 한 다음 경쟁이는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당산소지-대동소지-당주소지-선주소지 순으로 올린다. 선주소지는 복 받는 행사와 겸해 실시한다. 이어 소지올리기가 끝나면 당산 신령님으로부터 복 받는 행사를 한다. 마을 이장이 나이 어린 선주부터 한 명씩 호명하면 해당 선주들은 제단으로 나와서 복(福)돈을 놓고 절을 한다. 이때 경쟁이는 선주를 위해 축원하면서 소지를 올려준다. 소지올리기가 끝나면 경쟁이는 선주에게 제주(祭酒), 백설기, 길지(吉紙) 등을 나누어 준다. [고사](/topic/고사) [덕담](/topic/덕담)을 받은 선주들은 이어 기를 내린다. 선주는 기를 내릴 때 경쟁이에게서 받은 떡과 고기를 길지로 싸서 뱃기 끝에 매단다. 선주들의 복 받는 행사가 끝나면 잠시 동안 제단 앞에서 풍물을 치며 마무리하는 것으로 상당제를 마친다.


5. 당산 내려오기 : 상당제가 끝나면 풍물을 치면서 기를 앞세우고 당산을 내려온다. 이때 제단 바로 아래에서 마을 기를 세워 놓고 경쟁이가 잠깐 동안 축원을 한다. 당제를 무사히 마치고 내려간다는 인사이다. 제가 끝나 당주 집으로 내려온 일행은 해산 행사를 한다.


6. 해산 행사 : 해산 행사는 마을 기를 세워 놓고 개인축원을 한다. 이때 호명하는 대로 한 사람씩 나와서 기를 잡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면 경쟁이가 축원을 해 준다. 개인 축원이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배고사 준비를 한다.





1. 뱃기 축원 : 배고사 준비를 하고 갯가로 나온 선주들은 다시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기를 내린다. 쌀이 담긴 함지박을 무당이 먼저 바닥에 내려놓으면 선주들 역시 순서대로 각자 준비한 쌀 꽃반에 뱃기를 꽂는다. 그러면 무당이 축원을 해 준다. 이어 무당은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topic/복숭아) 나뭇가지[東桃枝]로 만든 화살에 [시루떡](/topic/시루떡)을 끼워 사방으로 쏘아댄다.


2. 배고사 : 뱃기 축원이 끝나면 선주 내외들은 뱃기와 제물을 들고 각자 자신의 배에 가서 배고사를 지낸다. 제물은 집집마다 대동소이(大同小異)하지만 대개 시루, 탕, 과일, 고기, 조기 등을 마련한다. 배에는 선주와 가족만이 올라간다. 제물은 배 함판(중앙) 한 곳에만 차리지만 술은 이물, 고물, 함판 등에 각각 따라 놓는다. 배고사를 지내면서 선주는 “물아래 참봉, 물위 참봉 많이 운감하시오”라는 덕담을 곁들인다.





1. 제물 준비 : 배고사를 마치고 해가 져서 어둑해지면 거리굿을 시작한다. 거리굿은 원래 산고개(새마당)에서 지냈다고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선착장에서 지내다가 바다가 막히면서 지금은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마을회관에서 비닐로 임시제당을 만들어 놓고 지낸다. 거리굿은 마을에 들어오는 액운을 미리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이에 따라 거리굿의 제물은 당산제에서 쓴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단 백설기 대신 팥시루떡을 새로 마련하여 올린다.
한편 당산에서 모신 당제가 선주 중심인 것과 달리 거리굿은 아낙네들의 정성으로 이어진다. 각 가정에서는 [대주](/topic/대주)(大主)의 주발에 [불밝이쌀](/topic/불밝이쌀)을 담아 만든 ‘꽃반’을 각자 들고 나와 제상 옆에 차려 놓는다. 꽃반은 대개 하나를 준비하지만 특별히 정성을 들이고 싶은 집에서는 식구 수대로 마련하기도 한다.


2. 거리굿 : 거리굿 역시 경쟁이가 주관한다. 경쟁이가 경을 읽는 동안 아낙네들은 제장(祭場) 주위에서 치성을 드린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희망자에 한해 당 안으로 들어와 절을 하고 복(福)을 기원하는 의미로 돈을 바친다. 축원을 마친 경쟁이는 이어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거리소지-대동소지-당주소지-세대주소지 순으로 올린다. 세대주소지를 올릴 때 꽃반을 준비한 가정에서는 앞으로 나와 자기 꽃반에 절을 하고 복돈을 놓는다. 그러면 경쟁이는 [쌀점](/topic/쌀점) 신수를 보면서 덕담을 해주고 제물을 조금씩 나누어 준다.


3. [용왕제](/topic/용왕제)와 사살막이 : 거리굿을 끝낸 다음 경쟁이는 바닷가로 나가 비손을 하면서 용왕제를 지낸다. 이때 ‘사살막이’라 하여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로 만든 활과 화살로 액막이를 한다. 사살막이는 ‘사살풀이’ 또는 ‘퇴식(退式)’이라고도 한다. 사살막이는 [수수](/topic/수수)팥 범벅으로 만든 새알심을 동도지(東桃枝)로 만든 화살에 꽂아 동서남북으로 쏘는 것으로, 마을의 잡귀잡신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용왕제를 마친 경쟁이는 혹시 잡귀(雜鬼)가 뒤따라올까 염려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로 돌아온다.


4. 거리제 : 사살막이가 끝나면 약간의 음식을 차려서 마을로 들어오는 삼거리로 나가 거리제를 지낸다. 육지 쪽으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음은 물론 도로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해서이다. 즉 마을 어귀 삼거리에 짚을 깐 다음 제물을 차려 놓고 그 옆에 짚불을 지펴 놓는다. 이어 경쟁이가 경문을 외어 해(害)를 물리면 제물을 사방에 흩뿌린다. 마을 어귀 [문인석](/topic/문인석)(門人石)이 있는 곳에도 제물을 떼어내 [한지](/topic/한지)로 싸서 놓아둔다. 이는 잡귀잡신을 풀어먹이는 것이다.



모든 제의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제물을 나누어 먹으면서 밤새 흥겹게 논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풍물을 치면서 나 등을 한다. 이러한 놀이는 당제가 치러지는 중간중간에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다시 모여 제비 결산을 보고, 쇠머리국을 끓여 먹으면서 하루를 즐긴다.



[선소리](/topic/선소리) : [장군](/topic/장군)님 전에 명복을 받아 우리 배 유덕선 도장원 했구려.
후 렴 : 아~하 아~에 에헤이요오 에~헤 어어이 어허어 어~ 에~헤 에어이 어어허이요오~
선소리 : 사해 바다 용왕님 복을 받아 만배등 장원을 우리가 했구려.
후 렴 : 아~하 아~에 에헤이요오 에~헤 어어이 어허어 어~ 에~헤 에어이 어어허이요오~
선소리 : 우리 배 선주님 거동보소. 조기 불뚝타고 덩실덩실 춤만 추누나.
후 렴 : 아~하 아~에 에헤이요오 에~헤 어어이 어허어 어~ 에~헤 에어이 어어허이요오~
선소리 : 금년신수 대통하여 춘하추동 행차마다 대만선이로다.
후 렴 : 아~하 아~에 에헤이요오 에~헤 어어이 어허어 어~ 에~헤 에어이 어어허이요오~



- 양당 성황님 모셔다 싣고 연평 바다로 돈 실러 가세.
- 연평 칠산 널린 칠령 한 쌍만 남기고 다 잡아 실었네.
- 암애수애 맞마처 놓으니 아드레 밖에 두둥실 나떴네.
- 옥동도화 만사춘하니 가지가지가 봄빛이로고나.
- 삼국충신 도원수는 [임경업 장군](/topic/임경업장군)이 분명하구나.
- 입하소만은 연평도 파시오소, [대서](/topic/대서) 절기엔 수입도 작사라.
- 정월달부터 치는 북을 일 년 열두 달 내눌러 치누나.
- 뱃집의 아줌마 인심 좋아 막뚝딸 길러 화장해 줬다네.
- 순풍 바람에 돛을 달고 연평 바다에 결 없이 몰았네.
- 연평 바다 높이 뜬 갈매기야 정든 임 소식을 전하여 다오.
- 허리대 꼭대기 서리화 꽂고 가운데 마장에 봉죽꽃 피었네.
- 달도 밝고 명랑한데 고향 생각이 절로 나누나.
- 배 떠날 때는 높바람 불더니 환고향 할 때는 갈바람 분다.
- 만선에 깃발을 꼬작끗 달고 마파람 불라고 성황님께 조르네.
- 금년도 신수대통하여 김선주 불러 도장원 줬다네.
- 연평도 산마루 북소리 나드니 오늘도 상봉에 정든 님 만나네.
- 우리 배 동사들 힘을 모아 세세년년 대풍어 이루세.
- 이물고물대 만선기 달고 징 북소리에 궁둥춤 추누나.
- 뱃집에 아줌마 거동보소 닭 잡아 가지고 술



제를 마친 뒤 사흘째 되는 날에는 ‘삼일당’이라 하여 당주 내외만이 당산에 올라가 제사를 지낸다. 직접 산에서 메를 지어 간단하게 올리는 이 제사는 당제를 잘 [흠향](/topic/흠향)(歆饗)했는가를 가늠하는 마지막 절차이다. 이때 삼일당에 올릴 술은 당제를 지낼 때 따로 남겨 둔다. 저녁 8시쯤 당주 내외가 당산으로 올라가 메를 짓고 불밝이쌀과 함께 술을 올린 다음 간단히 제를 지내고 내려온다. 근래에는 메를 집에서 직접 지어 올라가지만 예전에는 산에서 직접 지어 솥에 숟가락 두 개를 꽂아 올렸다고 한다. 삼일당을 마치고 당주 내외가 내려오면 마을 사람들은 삼일당에 올린 메를 나누어 먹는다. 삼일당제를 마지막으로 모든 당제 절차는 끝을 맺는다.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하여 살아가고 있는 수룡동 사람들에게 있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당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산업개발 논리에 밀려 지형지세와 삶의 생활방식이 변해 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정신적 지주로 오랫동안 역사를 함께해 온 당제는 그들의 삶과 유리되지 않은 채 지금도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금도 수룡동당제는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 채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개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마을제가 대부분 행사 위주로 치우쳐 일부 사람들만이 참여하고 있는 데 반해 수룡동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바다가 막혀 생활 터전이 사라졌음에도 멀리까지 나가 어업활동을 함은 물론 조상 대대로 해 오던 당제를 더욱 정성껏 모시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열정은 아직도 넘치고 있는 것이다.

점차 생활 터전을 잃어 가면서 마을을 떠나는 세대가 많아지고, 그에 따른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마을 사람들은 당제가 사라질까봐 걱정하고 있다. 오랫동안 마음의 안식처로 자리 잡아 온 당제가 마을 사람들의 노력만으로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99년 수룡동에서는 당제를 보존 계승하기 위한 노력으로 ‘수룡동당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이를 계승시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3년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래수룡동[마을](/topic/마을)에서는 예부터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서해를 지키는 용왕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 수룡동당제를 지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면서부터 당제를 지냈다고 전해온다. 마을이 형성된 시기가 약 400년 전이라는 구전(口傳)과 조선시대 때 이곳에 선창과 수군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보아 수룡동당제의 역사를 추정할 수 있다.

수룡동 사람들은 아주 옛날부터 마을 공동 소유의 당산에서 서해 용왕신에게 당제를 지내고 있다. 그 믿음과 열정 또한 매우 대단하다. 현재 수룡동에는 기독교를 비롯한 외래종교를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당제에 대한 믿음 정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강해 당제를 진행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이러한 당제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각종 기록과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1965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당제를 지낼 때 사용한 지출 내역과 걸립 내용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당제 물목기(物目記), 마을의 변천 모습과 당제 진행 과정 등을 담은 사진자료가 전해져 온다. 이들 자료는 마을 규모, 어선 현황, 당시의 경제 상황, 당제 참여도, 당제 규모 등 마을 전반에 대한 현황 및 변천사를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록물이다. 이는 순수한 애향심과 당제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모아진 자료들이다. 또한 1970년쯤 농어촌 사회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직전](/topic/직전) 또는 과도기적 시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모아 놓은 것들로, 당시 당제의 전승 모습을 고증하고 계승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다.

근래 들어 수룡동당제는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약간의 변화를 겪었다. 6․25전쟁 때 황해도에서 들어온 이주민들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황해도식 당제를 자연스럽게 전해 주었으며, 원주민들 역시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한 것이다. 즉 충청도식 당제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당제의 규모나 웅장함, 배치기 노래의 리듬 등 황해도 지역의 독특한 문화 현상을 조금씩 보탬으로써 다른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당제가 지금껏 치러지고 있다.
유래수룡동[마을](/topic/마을)에서는 예부터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서해를 지키는 용왕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 수룡동당제를 지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면서부터 당제를 지냈다고 전해온다. 마을이 형성된 시기가 약 400년 전이라는 구전(口傳)과 조선시대 때 이곳에 선창과 수군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보아 수룡동당제의 역사를 추정할 수 있다.

수룡동 사람들은 아주 옛날부터 마을 공동 소유의 당산에서 서해 용왕신에게 당제를 지내고 있다. 그 믿음과 열정 또한 매우 대단하다. 현재 수룡동에는 기독교를 비롯한 외래종교를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당제에 대한 믿음 정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강해 당제를 진행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이러한 당제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각종 기록과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1965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당제를 지낼 때 사용한 지출 내역과 걸립 내용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당제 물목기(物目記), 마을의 변천 모습과 당제 진행 과정 등을 담은 사진자료가 전해져 온다. 이들 자료는 마을 규모, 어선 현황, 당시의 경제 상황, 당제 참여도, 당제 규모 등 마을 전반에 대한 현황 및 변천사를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록물이다. 이는 순수한 애향심과 당제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모아진 자료들이다. 또한 1970년쯤 농어촌 사회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직전](/topic/직전) 또는 과도기적 시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모아 놓은 것들로, 당시 당제의 전승 모습을 고증하고 계승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다.

근래 들어 수룡동당제는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약간의 변화를 겪었다. 6․25전쟁 때 황해도에서 들어온 이주민들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황해도식 당제를 자연스럽게 전해 주었으며, 원주민들 역시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한 것이다. 즉 충청도식 당제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당제의 규모나 웅장함, 배치기 노래의 리듬 등 황해도 지역의 독특한 문화 현상을 조금씩 보탬으로써 다른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당제가 지금껏 치러지고 있다.
홍성수룡동당제 제의 준비하는 무당
19156
홍성수룡동당제 제의 준비하는 무당
홍성수룡동당제 포구
19271
홍성수룡동당제 포구
홍성수룡동당제 제당앞에서 기다리는 주민들
19152
홍성수룡동당제 제당앞에서 기다리는 주민들
홍성수룡동당제 당산행 행렬
19144
홍성수룡동당제 당산행 행렬
홍성수룡동당제 준비하는 마을회의
19134
홍성수룡동당제 준비하는 마을회의
홍성수룡동당제 복떡과 소지분배를 도와주고 있는 주민들
19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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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룡동당제 당산행 행렬
19145
홍성수룡동당제 당산행 행렬
홍성수룡동당제 풍물패의 악기
19161
홍성수룡동당제 풍물패의 악기
홍성수룡동당제 무당·당주의 기원
19274
홍성수룡동당제 무당·당주의 기원
홍성수룡동당제 뱃고사 준비
19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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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룡동당제 제의 준비하는 무당
19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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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룡동당제 포구
1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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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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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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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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