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아기씨당

한국무속신앙사전
왕십리 아기씨당
공주 아기씨를 주신으로 섬기는 당.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 부근에 살군당·양지당·수풀당 3개가 존재했다. 하지만 양지당은 현재 유실되고, 살군당과 수풀당만 남아 있다. 이 당은 2001년 4월 30일 ‘성동구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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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아기씨를 주신으로 섬기는 당.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 부근에 살군당·양지당·수풀당 3개가 존재했다. 하지만 양지당은 현재 유실되고, 살군당과 수풀당만 남아 있다. 이 당은 2001년 4월 30일 ‘성동구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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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정의공주 아기씨를 주신으로 섬기는 당.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 부근에 살군당·양지당·수풀당 3개가 존재했다. 하지만 양지당은 현재 유실되고, 살군당과 수풀당만 남아 있다. 이 당은 2001년 4월 30일 ‘성동구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
내용살군당에는 당굿도 전승되고 있어 행당동 아기씨당굿이 2005년 1월 10일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살군은 이 [마을](/topic/마을)의 당산나무였던 큰 살구나무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한편 수풀당은 현재 중구 신당5동 758[번지](/topic/번지)에 위치하며 개인이 관리하고 있다. 행당동 아기씨당은 ‘진퍼리 살군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명칭은 마을이 질펀한 들에 있다고 하여 속칭 진퍼리라는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아기씨의 좌정담은 지역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여러 사례 중 3대째 이 당의 당주를 맡고 있는 [김옥렴](/topic/김옥렴) 만신의 구술을 통한 당신(堂神) 좌정담을 소개한다.

“다섯 분이 오형제분이 이리루 피난을 나오셨다가 산찔레 필 무렵에 찔레꽃을 따서 입에다 물고 돌아가셨다고 했거든. 왕십리 이리로 피난을 나오셔서 숨어서 사시면서 풀뿌리, 나무 뿌리를 캐서 잡수시다가 산찔레 필 무렵에 산찔레를 따서 잡수시다가 입에 다 물고 돌아가셨다는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여기는 왜 나오셨대요?] 그러니까, 저기 전해오는 말로는 북쪽에서 나라가 망하자, 다 뿔뿔이 헤어지면서 다섯 공주도 계시고, 옹주도 계시고 다섯 분이 상궁 나인들을 거느리시고 이리로 피난을 나오셨대요. 나오시다가 더 가실 수가 없으니까, 여기 수풀이 많고 하니까는 나무가 많고 여기서 숨어서 사시다가 그땐 여기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대요. 집이 한두 채씩 생기면서 동네가 마을이 생기면서 옛날에 이장 같은 분들 뭐 이런 분들한테 당신님들 한을 풀어달라고 꿈으로다 현몽을 하셔서 무슨 일인가 하고 있다 보니깐 자꾸 이상해 동네에 변화가 생기고 또 흉한 일이 있고 해서 다섯 분을 세 군데다가 나눠 모셨대요. 한 분은 여기 왕십리 기차 정류장이구, 한 분은 지금 상왕십리 전철역 큰길 난 데 청구상업이라고 있는데 양지동 아씨를 거기다 모시고, 수풀당 아씨 삼형제 분이 계시거든, 지금 한양교통회관 뒤편으로 모시고 산찔레 필 무렵이 사월 보름날 정도 아닐까 하고 사월 보름날을 기준으로 하셔서 탄신제 겸 기제 겸 지내 드리고, 10월 상달에는 날 받아서 굿하구 당제, 대동제 지내구.”

이 좌정담은 고난을 피해 숨어 들어온 공주가 죽어서 당신으로 좌정한다는 얘기로, 다섯 형제가 흩어져서 살군당·양지당·수풀당에 각기 좌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음력 10월에 날을 받아 하는 당굿은 일반 서울 재수굿의 형식을 취하는데, 오늘날 연행되는 아기씨당굿은 부정거리, [가망](/topic/가망)거리, [진적](/topic/진적)(작)-유교제례, 본향거리, 아기씨거양거리, 말명거리, 제석거리, 도당부군거리, 도당별상거리, [도당신](/topic/도당신)장거리, 도당대감거리, 성주거리, 창부거리, 계면거리, 뒷전의 순서로 치러진다. 이 가운데 아기씨당굿만의 특징이라면 당신인 아기씨를 위한 굿거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서울 만신들에게 아기씨당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음은 그들이 전승하고 있는 무가에 잘 나타난다.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1934년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 1886~1960), 아키바 다카시(秋葉隆, 1888~1954) 공저의 「朝鮮巫俗の硏究([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에 채록된 경성 무녀 배경재의 무가이다. 이 무가에 왕십리 아기씨당이 기록된 부분은 부정, 가망청배, 호구청배, 말명청배, 뒷전이다.

부정 무가를 예로 들면 “설명도대신말명(서울明圖大神萬明), 사위삼당말명(四位三堂萬明)
국내(國內)로 뎨당말명(諸堂萬明), 그연에상산말명(上山萬明)
열네아기당자말명, 수영반장말명
육조삼말(六曹三府), 부군말명(府君萬明), 배용남산에불사말명(佛事萬明)
물건너화주당(化主堂), [매당왕신](/topic/매당왕신)(應堂王神)의산활말명
왕십리수풀당(壽佛堂)에 열네애기자겨말명
동관암, 남관암, 정전(正殿)은대전말명(大殿萬明)…”이라고 해서 여러 말명을 섬기는 내용이다.

이 문서는 구비공식구처럼 굳어져서 말명의 자리에 가망, 호구, 걸립 등으로 바꾸어 여러 굿거리에 반복된다. 오늘날 서울 만신들의 굿에서는 호구의 종류를 나열할 때만 이 문구가 구송된다. 이 무가 내용에 의하면 왕십리 수풀당이 대표명칭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명칭이 살군당·양지당·수풀당 중 수풀당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앞에서 소개한 김옥렴의 구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러 아기씨(공주)가 흩어져 자리를 잡기 이전에 모두 수풀에 기거했다가 3명의 아기씨만이 수풀당에 정하였으므로 무가에서 열네애기, 구비 신화에서 다섯 공주를 모두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앞에서 인용한 무가 내용에서도 나타나듯이 서울 만신들에게 중요한 용어 가운데 하나가 ‘사위(외)삼당’과 ‘궁(국)리제당’이다. 서울굿의 구대인들 구술을 들어보면 과거 서울 만신들이 [진적굿](/topic/진적굿)을 하기 위해서는 개성 덕물산의 상산을 위시해 삼산을 돌고, 서울 시내의 여러 당도 돌았다. 이는 진적굿을 위한 의례적 행위뿐 아니라 신기(神氣) 보강 차원에서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이 사위삼당 가운데 하나가 왕십리 수풀당이라고 한다. 서울의 중요한 3개의 당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앞의 내용에서도 드러나는 [금성당](/topic/금성당)·[화주](/topic/화주)당 등으로 만신들은 증언하고 있다. 그 외에도 유명한 당으로 홍제동의 할미당, [무악](/topic/무악)재의 사신당, [세검정](/topic/세검정)의 원앙당 등이 있었다.
참고문헌서울민속대관-민간신앙편 (서울특별시, 1990)
[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 (赤松智城·秋葉隆, 심우성 역, 동문선, 1991)
성동구지 (서울특별시 성동구, 1992)
성동구의 민간신앙 (최래옥 외, 성동문화원, 2005)
서울 행당동 아기씨당 무신도 고찰 (김자림, 한국 무속 연구의 한 단면, 민속원, 2005)
서울지역 당신화 연구-행당동 아기씨당을 중심으로 (고영희, 서울굿의 이해, 민속원, 2007)
호구거리의 의미와 기능 (홍태한, 서울굿의 양상과 의미, 민속원, 2007)
역사건립 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봉건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영조 23년(1747) 정도로 추정된다. 당은 1900년대 초까지는 을지로 6가의 전차 종점 부근에 있다가 성동경찰서 앞으로 이전되었고, 1944년경에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당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이유는 전 당주 만신의 꿈에 아기씨가 현몽하여 그 뜻에 따라 이루어졌다.
형태왕십리 아기씨당은 약 265㎡의 대지에 20~23㎡ 규모이다. 제당 옆에는 당주 [만신](/topic/만신)인 [김옥렴](/topic/김옥렴)의 개인 신당과 [살림집](/topic/살림집)이 있다. [마당](/topic/마당)에는 5층 석탑이 있고, 서쪽 문 옆에는 신목이 있다. 당의 내부에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고, 전면에 아기씨를 포함한 7점의 무신도가 걸려 있다. 좌측 벽면에 ‘아기씨당봉건기(阿祈氏堂奉建記)’라는 [현판](/topic/현판)이 걸려 있다.
문음사한국인의 굿과 무당황루시1988
중랑구청중랑구지2000
중랑문화원봉화산도당굿하효길2001
왕십리 아기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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