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의 금산공원 안에 있으며,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납읍리[마을](/topic/마을)제를 지내는 포제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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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강소전 |
정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의 금산공원 안에 있으며,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납읍리[마을](/topic/마을)제를 지내는 포제단. | 정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의 금산공원 안에 있으며,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납읍리[마을](/topic/마을)제를 지내는 포제단. | 참조 | [제주납읍리[마을](/topic/마을)제](/topic/제주납읍리마을제) | 참고문헌 | 제주도부락지 Ⅱ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0) 북제주군의 문화유적 Ⅱ (북제주군·제주대학교박물관, 1998) | 참조 | [제주납읍리[마을](/topic/마을)제](/topic/제주납읍리마을제) | 참고문헌 | 제주도부락지 Ⅱ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0) 북제주군의 문화유적 Ⅱ (북제주군·제주대학교박물관, 1998) | 내용 | 금산공원 안에 있는 포제단에서 납읍리 [마을](/topic/마을)제를 지낸다. 포제의 대상 신은 제단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토신(土神), 서신(西神), [포신](/topic/포신)(酺神)이다. 토신은 마을의 토지신(土地神)으로서 부락수호신이며, 서신은 홍역신(紅疫神)이고, 포신은 객신(客神)으로서 인물재해지신(人物災害之神)이라고 한다. 행제 순서는 토신, 포신, 서신의 순으로 한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에 춘제(春祭), 칠월에 추제(秋祭)라 하여 두 차례 포제를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1960년대에 마을회의의 결의를 통해 추제는 폐지되고 현재는 정월의 춘제만 지낸다. | 내용 | 금산공원 안에 있는 포제단에서 납읍리 [마을](/topic/마을)제를 지낸다. 포제의 대상 신은 제단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토신(土神), 서신(西神), [포신](/topic/포신)(酺神)이다. 토신은 마을의 토지신(土地神)으로서 부락수호신이며, 서신은 홍역신(紅疫神)이고, 포신은 객신(客神)으로서 인물재해지신(人物災害之神)이라고 한다. 행제 순서는 토신, 포신, 서신의 순으로 한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에 춘제(春祭), 칠월에 추제(秋祭)라 하여 두 차례 포제를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1960년대에 마을회의의 결의를 통해 추제는 폐지되고 현재는 정월의 춘제만 지낸다. | 형태 | 포제단은 ‘천연기념물 제375호’로 지정한 납읍 난대림지대가 있는 금산공원 안에 마련되어 있다. 금산공원 입구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포제단이 나온다. 포제단 주위로 [돌담](/topic/돌담)을 정성스럽게 [가지](/topic/가지)런히 쌓아 전체적인 제장을 마련하였다. 제장은 동서 길이가 8m, 남북 길이가 15m 정도로 비교적 넓은 편이다. 바닥도 자[연상](/topic/연상)태로 잘 정비되어 있다. 제장의 북쪽에 제단이 마련되었고, 남쪽에는 [기와](/topic/기와)를 덮은 포제청이 있다. 제단은 모두 세 개다. 북쪽인 제장 정면에 서신단(西神壇)과 토신단(土神壇)이 있고, 그 오른쪽에 따로 [포신](/topic/포신)단(酺神壇)이 마련되어 있다. 토신단과 포신단의 크기가 서로 비슷한 데 견주어 서신단은 비교적 작고 단출한 편이다. 제단의 상석(床石)은 모두 자연석을 이용하여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상석 뒤에는 자그마한 돌을 비석 모양으로 다듬어 세워 포제를 지낼 때 지방을 붙이는 용도로 사용한다. 망료위(望燎位, 능에서 제사를 지내고 [축문](/topic/축문)을 태우던 곳)는 서신단 왼쪽에 있다. 이 밖에 토신단과 포신단의 오른쪽에 직육면체의 자연석이 하나씩 놓여 있다. 한편 그동안 제단 주위에 쇠말뚝을 박고 쇠줄을 연결하여 제단을 보호하다가 현재는 쇠줄을 철거한 상태이다. | 형태 | 포제단은 ‘천연기념물 제375호’로 지정한 납읍 난대림지대가 있는 금산공원 안에 마련되어 있다. 금산공원 입구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포제단이 나온다. 포제단 주위로 [돌담](/topic/돌담)을 정성스럽게 [가지](/topic/가지)런히 쌓아 전체적인 제장을 마련하였다. 제장은 동서 길이가 8m, 남북 길이가 15m 정도로 비교적 넓은 편이다. 바닥도 자[연상](/topic/연상)태로 잘 정비되어 있다. 제장의 북쪽에 제단이 마련되었고, 남쪽에는 [기와](/topic/기와)를 덮은 포제청이 있다. 제단은 모두 세 개다. 북쪽인 제장 정면에 서신단(西神壇)과 토신단(土神壇)이 있고, 그 오른쪽에 따로 [포신](/topic/포신)단(酺神壇)이 마련되어 있다. 토신단과 포신단의 크기가 서로 비슷한 데 견주어 서신단은 비교적 작고 단출한 편이다. 제단의 상석(床石)은 모두 자연석을 이용하여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상석 뒤에는 자그마한 돌을 비석 모양으로 다듬어 세워 포제를 지낼 때 지방을 붙이는 용도로 사용한다. 망료위(望燎位, 능에서 제사를 지내고 [축문](/topic/축문)을 태우던 곳)는 서신단 왼쪽에 있다. 이 밖에 토신단과 포신단의 오른쪽에 직육면체의 자연석이 하나씩 놓여 있다. 한편 그동안 제단 주위에 쇠말뚝을 박고 쇠줄을 연결하여 제단을 보호하다가 현재는 쇠줄을 철거한 상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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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 4/김기수//국립국악원/196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1/ | 국악통론/서한범//태림출판사/1993/ | 최신 국악총론/장사훈//세광음악출판사/19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