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최영장군사당

한국무속신앙사전
제주특별자치도의 추자도 사람들이 [최영 [장군](/topic/장군)](/topic/최영장군)의 은덕을 기리면서 한 해의 풍어를 기원하는 장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 155[번지](/topic/번지)에 소재하며, 1981년 8월26일에 ‘제주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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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의 추자도 사람들이 [최영 [장군](/topic/장군)](/topic/최영장군)의 은덕을 기리면서 한 해의 풍어를 기원하는 장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 155[번지](/topic/번지)에 소재하며, 1981년 8월26일에 ‘제주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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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식
특징제주도 추자도는 최남단 지역으로, 이곳에서 [최영 [장군](/topic/장군)](/topic/최영장군)을 신격화하여 모신다는 것은 지역적으로 특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재한 인물을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결부시켜 [마을](/topic/마을)신으로 모시면서 풍어를 기원하고 있다는 것 또한 특징이다.
특징제주도 추자도는 최남단 지역으로, 이곳에서 [최영 [장군](/topic/장군)](/topic/최영장군)을 신격화하여 모신다는 것은 지역적으로 특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재한 인물을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결부시켜 [마을](/topic/마을)신으로 모시면서 풍어를 기원하고 있다는 것 또한 특징이다.
정의제주특별자치도의 추자도 사람들이 [최영 [장군](/topic/장군)](/topic/최영장군)의 은덕을 기리면서 한 해의 풍어를 기원하는 장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 155[번지](/topic/번지)에 소재하며, 1981년 8월26일에 ‘제주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정의제주특별자치도의 추자도 사람들이 [최영 [장군](/topic/장군)](/topic/최영장군)의 은덕을 기리면서 한 해의 풍어를 기원하는 장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 155[번지](/topic/번지)에 소재하며, 1981년 8월26일에 ‘제주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참조[제주추자도천제와 [장군](/topic/장군)제](/topic/제주추자도천제와장군제)
참고문헌백록어문-부 추자도학술조사보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국어교육학회, 1991)
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Ⅱ-민속 (북제주군, 1998)
참조[제주추자도천제와 [장군](/topic/장군)제](/topic/제주추자도천제와장군제)
참고문헌백록어문-부 추자도학술조사보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국어교육학회, 1991)
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Ⅱ-민속 (북제주군, 1998)
将崔莹将军供奉为神的祠堂。

崔莹将军是高丽末期的名将和忠臣,曾阻挡倭寇侵略,立下赫赫战功。但是在抗击[李成桂](/topic/李成桂)军队的过程中战败被俘,惨遭斩首。崔莹将军一生致力于为守卫高丽,最终人生冤屈离世,百姓们将他视为伟大的英雄,他也是民间信仰中被神化的对象。

供奉崔莹将军的代表性祠堂有开城德物山,庆尚南道统营市蛇梁面琴坪里以及济州市楸子面大西里等。

德物山“崔莹将军祠堂”曾是韩国中部地区巫师们的最高圣地。朝鲜时代曾设有供奉崔莹将军神灵的专职巫女。国家在此处征收税金,充当国家财政的一部分。直至日本殖民统治时期,德物山顶峰曾有过一个叫做山上洞的巫师村。据说此处有供奉崔莹的将军堂,供奉将军夫人的夫人堂以及倡夫堂等。在这些神堂中,神皆以塑像或画像被供奉。在包括统营在内的南海岸地区,也有许多将崔莹供奉为神的村庄,这与崔莹将军在南海岸地区阻挡倭寇侵略的历史事实有关联。

统营崔莹将军祠堂又称为“将军堂”。崔莹将军祠堂内有崔莹将军的肖像画和牌位。每年阴历正月十四日与腊月十四日会举行祠堂祭。

济州崔莹将军祠堂被推定为建于高丽末期。传说崔莹将军于1374 年( 恭愍王23 年) 为镇压济州岛地区动乱,在乘船前往的途中遭遇风浪,随后躲避于楸子岛。在该地躲避期间,崔莹将军向岛民们教授了使用渔网的捕鱼方法。为了缅怀将军,岛民们建立了祠堂。每年阴历七月十五日与除夕,人们会祈祷渔事渔业丰收,举行祭祀。崔莹将军祠堂可以说是历史人物与实际历史事实结合,升为村庄神的典型例子。
This is a shrine is dedicated to General Choe Yeong (1316-1388), a commander and loyal subject of late Goryeo (918-1392).

General Choe Yeong was revered for military distinction including his defense of the kingdom against Japanese invasion. He was however defeated by mutiny leader [Yi Seong-gye](/topic/YiSeong-gye), who went on to found Joseon (1392-1910) and beheaded. Because he met a tragic death while trying to defend the declining Goryeo, Choe came to be deified and worshipped as a shamanic god.

Shrines dedicated to General Choe Yeong remain today in several locations, including Mt. Deongmul in Gaeseong; in Tongyeong, South Gyeongsang Province; and on Chuja Island in Jeju.

The General Choe Yeong Shrine on Mt. Deongmul in Gaeseong, Hwanghae Province, was considered the most sacred site among shamans of the central regions. In Joseon, a shaman was assigned to this shrine to exclusively worship the spirit of General Choe Yeong and the state collected taxes from the shrine to finance government projects. On the summit of Mt. Deongmul, there was a village for shamans named Sansangdong, a community that lasted until the Japanese occupation. The village was home to a shrine for General Choe Yeong called Janggundang (General’s Shrine); Buindang, where Choe’s wife was enshrined; and Changbudang, a shrine for the Clown God, where each deity was enshrined in the form of clay figurines or paintings.

The southern coast is also home to a number of shrines for General Choe Yeong, since this was where the commander fought off the invading Japanese. The shrine in Tongyeong is also called Janggundang and enshrined inside are a portrait of the general and a spirit tablet. Rituals are observed on the fourteenth day of the first and last lunar months of the year.

The General Choe Yeong Shrine in Jeju is believed to have been built in late Goryeo. In the 23rd year of King Gongmin’s reign (1374), the general was on a boat headed to Jeju Island where a rebellion had erupted but a sea storm forced him to seek shelter on Chuja Island, where he stayed for a period of time and taught the villagers to use fishing nets. Legends say that the villagers built the shrine in his honor after he left, and rituals have been observed each year on the fifteenth day of the seventh lunar month and on the last day of the lunar calendar to pray for a good harvest and big catch.
Choeyeongjanggunsadang es el término que se refiere a un santuario dedicado al general Choe Yeong como una deidad.

El general Choe Yeong (1316-1388) era un comandante militar y súbdito leal a finales del reino Goryeo (918-1392), venerado por haber defendido el reino contra la invasión japonesa. Sin embargo el general Choe fue derrotado por el líder de la revuelta, [Yi Seong-gye](/topic/YiSeong-gye), que fundó más tarde la dinastía Joseon (1392-1910) y murió decapitado. Como él perdió la vida de manera trágica defendiendo el reino declinante Goryeo, Choe Yeong fue deificado y adorado como un dios chamánico.

Hoy en día, los santuarios dedicados al general Choe Yeong quedan bien conservados en varias ubicaciones, incluyendo el monte de Deongmulsan en Gaeseong; Saryang-myeon de Tongyeong de la provincia de Gyeongsangnam-do; y Chuja-myeon de la isla de Jeju-do.

El santuario del general Choe en el monte de Deongmulsan se consideraba como el sitio más sagrado entre los chamanes provenientes de las regiones centrales del país. En la dinastía Joseon, se asignaba a un chamán para que venerara exclusivamente al general Ghoe Yeong en dicho santuario. Además el gobierno financiaba proyectos estatales con los impuestos cobrados en el santuario. En la cima del monte de Deongmulsan, había una aldea para los chamanes llamada Sansangdong, una comunidad que duró hasta la ocupación japonesa en Corea. En esta aldea, se encontraban el santuario del general Choe Yeong llamado janggundang; el santuario llamado buindang donde la esposa del general estaba enclaustrada; y el santuario del dios de los payasos llamado changbudang. En estos santuarios, se veneraba cada deidad en la forma de peque.a figura de arcilla o pintura. Asimismo, muchos santuarios del general Choe Yeong estaban situados en las regiones de la costa oeste donde el comandante luchó contra la invasión japonesa.

El santuario en Tongyeong tiene otro nombre de Janggundang, y en su interior, están enclaustrados el retrato del general Choe y su tablilla espiritual. En el santuario, tiene lugar un ritual cada 14 de enero y diciembre del calendario lunar.

Se cree que fue construido el santuario dedicado al general Choe Yeong en la isla de Jeju-do a finales del reino Goryeo. En el vigésimo tercer a.o del reinado de Gongmin (1374), el general embarcó en un barco rumbo a la isla de Jeju-do donde una rebelión había estallado, pero una tormenta en el mar le obligó a buscar refugio en la isla de Chujado en la que el general permaneció por un período de tiempo ense.ando a los habitantes de la isla a utilizar redes de pesca. Cuentan las leyendas que los isle.os construyeron el santuario para adorar a Choe Yeong después de que el general se había marchado. Desde entonces los rituales se han llevado a cabo cada a.o, el 15 de septiembre y el último día del calendario lunar para pedirle por una buena cosecha y una pesca abundante.
내용고려 [공민왕](/topic/공민왕) 시절 제주도에는 목호(牧胡)에 의한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공민왕 23년에 석질리(石迭里) 등이 난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최영 [장군](/topic/장군)](/topic/최영장군)을 제주행병도통사(濟州行兵都統使)로 삼아 이를 진압하도록 하였다. 최영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제주도로 원정을 오가는 도중에 거센 풍랑을 만나 추자도 점산곶(點山串)으로 대피하게 되었다. 추자도는 예부터 제주도를 오가는 배들이 풍랑을 만날 경우 대피하는 곳으로, 해중(海中)의 유일한 후풍처(候風處)였다. 기록에 따르면 최영 장군은 8월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9월 23일부터 10월 17일까지 25일간 등 모두 30일간을 머무른 것으로 확인된다. 이처럼 30일 동안이나 머물렀으니 주민들에게 그물로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었을 만도 하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바다에 고기는 많으나 주민들이 잡을 줄을 몰라 궁핍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최영 장군이 그물을 만들어 고기잡이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추자도 사람들의 생활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나게 된다. 풍부한 어족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일거에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일로 주민들은 장군의 덕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사당](/topic/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칠월 보름날과 섣달그믐날에 풍어와 풍농을 빌며 제사를 지내 왔다. 이를 대제(大祭), 사당제(祠堂祭) 또는 당제(堂祭)라고 한다. 대제는 본래 여름철인 칠월에 지냈다. 추자도는 여름철에 멸치 어장이 형성되고, 최영 장군을 모시는 것이 이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선주들이 윤번제로 사당을 관리하고, 제비도 공동으로 부담하였다. 오늘날에는 수협에서 사당의 관리를 맡고 대제와 관련한 제반 사항도 도맡아 하고 있다. 수협(水協)에서 대제를 맡으면서부터 제일을 봄철인 음력 이월 보름날로 옮겼다. 택일하여 날이 좋지 않으면 길일(吉日)로 바꾸어 제사를 지낸다. 제사 시기를 바꾸게 된 까닭은 주요 어족자원이 조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며, 조기의 성어기가 봄철이기 때문이다.

과거 주민들이 제사를 맡아 지낼 때는 제주(祭主)를 한 사람 정하였다. [제관](/topic/제관)은 축관 한 명과 제관 한 명으로 구성하였다. 제관들은 제주의 집을 제청으로 삼아 일주일 동안 정성을 들였다. 그곳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제물을 비롯한 제반 음식을 마련하였다. ‘큰새미’라고 하는 샘에 3~4일 동안 [금줄](/topic/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금하고, 그 물을 떠다가 제사를 준비하는 데 사용하였다. 제장에도 금줄을 쳐서 부정한 이의 출입을 막았다. 희생으로 소 한 마리를 올렸으며, 통째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올리되 고기는 삶고 내장은 생으로 올렸다. 기타 제물로는 메, 갱(쇠머리 삶은 물), 어물(삼치, 도미, 갈치, 방어, 조기 등), 나물([시금치](/topic/시금치), 콩나물, 산나물, 듬북기, [녹두](/topic/녹두)나물), [시루떡](/topic/시루떡) 등을 올렸다.

한편 신위의 양쪽에는 작은 그릇에 장군과 똑같이 제물을 차려 올렸다. 이것은 호위병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돼지고기는 제물로 올리지 않았다. [음복](/topic/음복)은 제관과 [참례](/topic/참례)자들이 함께하였으며, 남은 음식은 땅에 묻었다. 근래에는 최영 장군에 대한 제사뿐만 아니라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은 어업인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도 함께 지낸다.

영흥리 뒷산 높은 곳에 산신당이 있고, 대서리 바닷가에는 해신당이 있었다고 한다. 대서리 뒷동산에 최영장군사당이 있다. 이 사당은 무속 신당의 기능을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으니 산신당-장군당-해신당의 구도가 갖추어진 셈이다. 실제로 [상추](/topic/상추)자에서 풍어제를 지낼 때는 산신제-장군제-해신제를 차례대로 지내 왔다.
将崔莹将军供奉为神的祠堂。

崔莹将军是高丽末期的名将和忠臣,曾阻挡倭寇侵略,立下赫赫战功。但是在抗击[李成桂](/topic/李成桂)军队的过程中战败被俘,惨遭斩首。崔莹将军一生致力于为守卫高丽,最终人生冤屈离世,百姓们将他视为伟大的英雄,他也是民间信仰中被神化的对象。

供奉崔莹将军的代表性祠堂有开城德物山,庆尚南道统营市蛇梁面琴坪里以及济州市楸子面大西里等。

德物山“崔莹将军祠堂”曾是韩国中部地区巫师们的最高圣地。朝鲜时代曾设有供奉崔莹将军神灵的专职巫女。国家在此处征收税金,充当国家财政的一部分。直至日本殖民统治时期,德物山顶峰曾有过一个叫做山上洞的巫师村。据说此处有供奉崔莹的将军堂,供奉将军夫人的夫人堂以及倡夫堂等。在这些神堂中,神皆以塑像或画像被供奉。在包括统营在内的南海岸地区,也有许多将崔莹供奉为神的村庄,这与崔莹将军在南海岸地区阻挡倭寇侵略的历史事实有关联。

统营崔莹将军祠堂又称为“将军堂”。崔莹将军祠堂内有崔莹将军的肖像画和牌位。每年阴历正月十四日与腊月十四日会举行祠堂祭。

济州崔莹将军祠堂被推定为建于高丽末期。传说崔莹将军于1374 年( 恭愍王23 年) 为镇压济州岛地区动乱,在乘船前往的途中遭遇风浪,随后躲避于楸子岛。在该地躲避期间,崔莹将军向岛民们教授了使用渔网的捕鱼方法。为了缅怀将军,岛民们建立了祠堂。每年阴历七月十五日与除夕,人们会祈祷渔事渔业丰收,举行祭祀。崔莹将军祠堂可以说是历史人物与实际历史事实结合,升为村庄神的典型例子。
This is a shrine is dedicated to General Choe Yeong (1316-1388), a commander and loyal subject of late Goryeo (918-1392).

General Choe Yeong was revered for military distinction including his defense of the kingdom against Japanese invasion. He was however defeated by mutiny leader [Yi Seong-gye](/topic/YiSeong-gye), who went on to found Joseon (1392-1910) and beheaded. Because he met a tragic death while trying to defend the declining Goryeo, Choe came to be deified and worshipped as a shamanic god.

Shrines dedicated to General Choe Yeong remain today in several locations, including Mt. Deongmul in Gaeseong; in Tongyeong, South Gyeongsang Province; and on Chuja Island in Jeju.

The General Choe Yeong Shrine on Mt. Deongmul in Gaeseong, Hwanghae Province, was considered the most sacred site among shamans of the central regions. In Joseon, a shaman was assigned to this shrine to exclusively worship the spirit of General Choe Yeong and the state collected taxes from the shrine to finance government projects. On the summit of Mt. Deongmul, there was a village for shamans named Sansangdong, a community that lasted until the Japanese occupation. The village was home to a shrine for General Choe Yeong called Janggundang (General’s Shrine); Buindang, where Choe’s wife was enshrined; and Changbudang, a shrine for the Clown God, where each deity was enshrined in the form of clay figurines or paintings.

The southern coast is also home to a number of shrines for General Choe Yeong, since this was where the commander fought off the invading Japanese. The shrine in Tongyeong is also called Janggundang and enshrined inside are a portrait of the general and a spirit tablet. Rituals are observed on the fourteenth day of the first and last lunar months of the year.

The General Choe Yeong Shrine in Jeju is believed to have been built in late Goryeo. In the 23rd year of King Gongmin’s reign (1374), the general was on a boat headed to Jeju Island where a rebellion had erupted but a sea storm forced him to seek shelter on Chuja Island, where he stayed for a period of time and taught the villagers to use fishing nets. Legends say that the villagers built the shrine in his honor after he left, and rituals have been observed each year on the fifteenth day of the seventh lunar month and on the last day of the lunar calendar to pray for a good harvest and big catch.
Choeyeongjanggunsadang es el término que se refiere a un santuario dedicado al general Choe Yeong como una deidad.

El general Choe Yeong (1316-1388) era un comandante militar y súbdito leal a finales del reino Goryeo (918-1392), venerado por haber defendido el reino contra la invasión japonesa. Sin embargo el general Choe fue derrotado por el líder de la revuelta, [Yi Seong-gye](/topic/YiSeong-gye), que fundó más tarde la dinastía Joseon (1392-1910) y murió decapitado. Como él perdió la vida de manera trágica defendiendo el reino declinante Goryeo, Choe Yeong fue deificado y adorado como un dios chamánico.

Hoy en día, los santuarios dedicados al general Choe Yeong quedan bien conservados en varias ubicaciones, incluyendo el monte de Deongmulsan en Gaeseong; Saryang-myeon de Tongyeong de la provincia de Gyeongsangnam-do; y Chuja-myeon de la isla de Jeju-do.

El santuario del general Choe en el monte de Deongmulsan se consideraba como el sitio más sagrado entre los chamanes provenientes de las regiones centrales del país. En la dinastía Joseon, se asignaba a un chamán para que venerara exclusivamente al general Ghoe Yeong en dicho santuario. Además el gobierno financiaba proyectos estatales con los impuestos cobrados en el santuario. En la cima del monte de Deongmulsan, había una aldea para los chamanes llamada Sansangdong, una comunidad que duró hasta la ocupación japonesa en Corea. En esta aldea, se encontraban el santuario del general Choe Yeong llamado janggundang; el santuario llamado buindang donde la esposa del general estaba enclaustrada; y el santuario del dios de los payasos llamado changbudang. En estos santuarios, se veneraba cada deidad en la forma de peque.a figura de arcilla o pintura. Asimismo, muchos santuarios del general Choe Yeong estaban situados en las regiones de la costa oeste donde el comandante luchó contra la invasión japonesa.

El santuario en Tongyeong tiene otro nombre de Janggundang, y en su interior, están enclaustrados el retrato del general Choe y su tablilla espiritual. En el santuario, tiene lugar un ritual cada 14 de enero y diciembre del calendario lunar.

Se cree que fue construido el santuario dedicado al general Choe Yeong en la isla de Jeju-do a finales del reino Goryeo. En el vigésimo tercer a.o del reinado de Gongmin (1374), el general embarcó en un barco rumbo a la isla de Jeju-do donde una rebelión había estallado, pero una tormenta en el mar le obligó a buscar refugio en la isla de Chujado en la que el general permaneció por un período de tiempo ense.ando a los habitantes de la isla a utilizar redes de pesca. Cuentan las leyendas que los isle.os construyeron el santuario para adorar a Choe Yeong después de que el general se había marchado. Desde entonces los rituales se han llevado a cabo cada a.o, el 15 de septiembre y el último día del calendario lunar para pedirle por una buena cosecha y una pesca abundante.
내용고려 [공민왕](/topic/공민왕) 시절 제주도에는 목호(牧胡)에 의한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공민왕 23년에 석질리(石迭里) 등이 난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최영 [장군](/topic/장군)](/topic/최영장군)을 제주행병도통사(濟州行兵都統使)로 삼아 이를 진압하도록 하였다. 최영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제주도로 원정을 오가는 도중에 거센 풍랑을 만나 추자도 점산곶(點山串)으로 대피하게 되었다. 추자도는 예부터 제주도를 오가는 배들이 풍랑을 만날 경우 대피하는 곳으로, 해중(海中)의 유일한 후풍처(候風處)였다. 기록에 따르면 최영 장군은 8월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9월 23일부터 10월 17일까지 25일간 등 모두 30일간을 머무른 것으로 확인된다. 이처럼 30일 동안이나 머물렀으니 주민들에게 그물로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었을 만도 하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바다에 고기는 많으나 주민들이 잡을 줄을 몰라 궁핍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최영 장군이 그물을 만들어 고기잡이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추자도 사람들의 생활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나게 된다. 풍부한 어족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일거에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일로 주민들은 장군의 덕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사당](/topic/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칠월 보름날과 섣달그믐날에 풍어와 풍농을 빌며 제사를 지내 왔다. 이를 대제(大祭), 사당제(祠堂祭) 또는 당제(堂祭)라고 한다. 대제는 본래 여름철인 칠월에 지냈다. 추자도는 여름철에 멸치 어장이 형성되고, 최영 장군을 모시는 것이 이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선주들이 윤번제로 사당을 관리하고, 제비도 공동으로 부담하였다. 오늘날에는 수협에서 사당의 관리를 맡고 대제와 관련한 제반 사항도 도맡아 하고 있다. 수협(水協)에서 대제를 맡으면서부터 제일을 봄철인 음력 이월 보름날로 옮겼다. 택일하여 날이 좋지 않으면 길일(吉日)로 바꾸어 제사를 지낸다. 제사 시기를 바꾸게 된 까닭은 주요 어족자원이 조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며, 조기의 성어기가 봄철이기 때문이다.

과거 주민들이 제사를 맡아 지낼 때는 제주(祭主)를 한 사람 정하였다. [제관](/topic/제관)은 축관 한 명과 제관 한 명으로 구성하였다. 제관들은 제주의 집을 제청으로 삼아 일주일 동안 정성을 들였다. 그곳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제물을 비롯한 제반 음식을 마련하였다. ‘큰새미’라고 하는 샘에 3~4일 동안 [금줄](/topic/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금하고, 그 물을 떠다가 제사를 준비하는 데 사용하였다. 제장에도 금줄을 쳐서 부정한 이의 출입을 막았다. 희생으로 소 한 마리를 올렸으며, 통째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올리되 고기는 삶고 내장은 생으로 올렸다. 기타 제물로는 메, 갱(쇠머리 삶은 물), 어물(삼치, 도미, 갈치, 방어, 조기 등), 나물([시금치](/topic/시금치), 콩나물, 산나물, 듬북기, [녹두](/topic/녹두)나물), [시루떡](/topic/시루떡) 등을 올렸다.

한편 신위의 양쪽에는 작은 그릇에 장군과 똑같이 제물을 차려 올렸다. 이것은 호위병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돼지고기는 제물로 올리지 않았다. [음복](/topic/음복)은 제관과 [참례](/topic/참례)자들이 함께하였으며, 남은 음식은 땅에 묻었다. 근래에는 최영 장군에 대한 제사뿐만 아니라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은 어업인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도 함께 지낸다.

영흥리 뒷산 높은 곳에 산신당이 있고, 대서리 바닷가에는 해신당이 있었다고 한다. 대서리 뒷동산에 최영장군사당이 있다. 이 사당은 무속 신당의 기능을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으니 산신당-장군당-해신당의 구도가 갖추어진 셈이다. 실제로 [상추](/topic/상추)자에서 풍어제를 지낼 때는 산신제-장군제-해신제를 차례대로 지내 왔다.
역사최영[장군](/topic/장군)사당은 고려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최영 장군](/topic/최영장군)이 1374년([공민왕](/topic/공민왕) 23년) 잠시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그물을 이용한 어로법을 가르쳐 준 일이 있어 주민들이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topic/사당)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사당은 오랫동안 주민들이 관리하여 왔으나 퇴락을 피할 수 없었다. 1935년에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사당을 새로 지었으며, 1970년에 국가 보조로 건물을 다시 복원하였다. 1974년에 [단청](/topic/단청)과 [담장](/topic/담장)을 보수하였으며 1998년에 외문을 새로 지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역사최영[장군](/topic/장군)사당은 고려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최영 장군](/topic/최영장군)이 1374년([공민왕](/topic/공민왕) 23년) 잠시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그물을 이용한 어로법을 가르쳐 준 일이 있어 주민들이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topic/사당)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사당은 오랫동안 주민들이 관리하여 왔으나 퇴락을 피할 수 없었다. 1935년에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사당을 새로 지었으며, 1970년에 국가 보조로 건물을 다시 복원하였다. 1974년에 [단청](/topic/단청)과 [담장](/topic/담장)을 보수하였으며 1998년에 외문을 새로 지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형태[최영 [장군](/topic/장군)](/topic/최영장군)을 모시는 [사당](/topic/사당)은 추자초등학교 뒤쪽 산등성이에 있다. [상추](/topic/상추)자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사당은 면적 16.5㎡, 평면 세 칸의 우진각 [기와](/topic/기와)[지붕](/topic/지붕) 형태이다. [현판](/topic/현판)에는 ‘최영대장신사(崔瑩大將神祠)’라고 썼다. 내부에는 [영정](/topic/영정)과 돌 [위패](/topic/위패)를 모시고 있다. 사당 주위에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에워 울타리를 쌓았다. 울타리 안쪽에 다시 시멘트 [담장](/topic/담장)을 두었다.

사당 왼쪽 문 앞 위에는 「최영장군신사신축기(崔瑩將軍神祠新築記)」가 걸려 있다. 종서로 새겨진 내용은 “漂漂氣像 與闕張 張肩 堂堂忠義 使夷齊 齊立. 以麗朝臣都統 節鉞摩南 沍伏耽羅 候風斯島故 島民 去後益詠而立祠 牲牛尊誠 致祥消魔之己自數百年靈驗 □自甲午以後茅宇甲戌以來 風霖可年層 棟礎峍巓地 人往獸踏 祠土 不潔 驚惶洞詣 卜地新創 大西里區長 李起雄 有志人 夙興夜深之誠而此地建營之 庶民 自來 敖不活躍薦廟有歡樂樂以謂其□曰神境淨 永世不忘之功 註以記也 西紀一九三五年 乙亥 二月 二十五日(하략)”이다. 이것은 1935년 당시 사당을 새로 지은 내력을 담고 있다. 본래 초가 형태인 사당이 퇴락하여 볼품없게 되자 뜻을 모아 온전한 모양으로 지은 것이다.

사당 안에는 비석 모양으로 만들어진 위패가 있다. 높이는 1m가량이며, 표면은 검은색이다. 거기에 ‘조국도통대장최영장군신위(朝國都統大將崔瑩將軍神位)’라 음각하고 빨간색으로 칠하여 놓았다. 위패의 왼쪽에는 영정을 걸어 모시고 있다. 사당 주위에는 [돌담](/topic/돌담)을 두르고 사당의 맞은편에 문을 달았다. 사당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 바로 옆에는 최영사당금표(崔瑩祠堂禁標)라는 비가 있다. 비의 앞면에는 ‘신묘금지비(神廟禁地碑)’라 음각되어 있음이 확인되나 측면 글자는 많이 마모되어 알아볼 수 없다.
형태[최영 [장군](/topic/장군)](/topic/최영장군)을 모시는 [사당](/topic/사당)은 추자초등학교 뒤쪽 산등성이에 있다. [상추](/topic/상추)자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사당은 면적 16.5㎡, 평면 세 칸의 우진각 [기와](/topic/기와)[지붕](/topic/지붕) 형태이다. [현판](/topic/현판)에는 ‘최영대장신사(崔瑩大將神祠)’라고 썼다. 내부에는 [영정](/topic/영정)과 돌 [위패](/topic/위패)를 모시고 있다. 사당 주위에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에워 울타리를 쌓았다. 울타리 안쪽에 다시 시멘트 [담장](/topic/담장)을 두었다.

사당 왼쪽 문 앞 위에는 「최영장군신사신축기(崔瑩將軍神祠新築記)」가 걸려 있다. 종서로 새겨진 내용은 “漂漂氣像 與闕張 張肩 堂堂忠義 使夷齊 齊立. 以麗朝臣都統 節鉞摩南 沍伏耽羅 候風斯島故 島民 去後益詠而立祠 牲牛尊誠 致祥消魔之己自數百年靈驗 □自甲午以後茅宇甲戌以來 風霖可年層 棟礎峍巓地 人往獸踏 祠土 不潔 驚惶洞詣 卜地新創 大西里區長 李起雄 有志人 夙興夜深之誠而此地建營之 庶民 自來 敖不活躍薦廟有歡樂樂以謂其□曰神境淨 永世不忘之功 註以記也 西紀一九三五年 乙亥 二月 二十五日(하략)”이다. 이것은 1935년 당시 사당을 새로 지은 내력을 담고 있다. 본래 초가 형태인 사당이 퇴락하여 볼품없게 되자 뜻을 모아 온전한 모양으로 지은 것이다.

사당 안에는 비석 모양으로 만들어진 위패가 있다. 높이는 1m가량이며, 표면은 검은색이다. 거기에 ‘조국도통대장최영장군신위(朝國都統大將崔瑩將軍神位)’라 음각하고 빨간색으로 칠하여 놓았다. 위패의 왼쪽에는 영정을 걸어 모시고 있다. 사당 주위에는 [돌담](/topic/돌담)을 두르고 사당의 맞은편에 문을 달았다. 사당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 바로 옆에는 최영사당금표(崔瑩祠堂禁標)라는 비가 있다. 비의 앞면에는 ‘신묘금지비(神廟禁地碑)’라 음각되어 있음이 확인되나 측면 글자는 많이 마모되어 알아볼 수 없다.
민속원서울굿의 양상과 의미홍태한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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