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신제

한국무속신앙사전
제주특별자치도의 해안 [마을](/topic/마을)에서 멸치잡이의 풍어를 비는 굿. 해마다 늦봄이 되면 멸치 떼가 제주도 연안에 몰려들기 시작해 이때가 되면 모래밭이 있는 해안 마을에서는 지인망(물가에 긴 그물을 둘러쳐서 양 끝에 줄을 연결하여 육지에서 끌어당겨 어획하는 도구)으로 멸치 떼를 끌어당겨 잡는다. 이의 풍어를 비는 굿이다. ‘그물코([그물고사](/topic/그물고사))’ 또는 ‘멜굿(멸치굿)’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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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의 해안 [마을](/topic/마을)에서 멸치잡이의 풍어를 비는 굿. 해마다 늦봄이 되면 멸치 떼가 제주도 연안에 몰려들기 시작해 이때가 되면 모래밭이 있는 해안 마을에서는 지인망(물가에 긴 그물을 둘러쳐서 양 끝에 줄을 연결하여 육지에서 끌어당겨 어획하는 도구)으로 멸치 떼를 끌어당겨 잡는다. 이의 풍어를 비는 굿이다. ‘그물코([그물고사](/topic/그물고사))’ 또는 ‘멜굿(멸치굿)’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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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병
정의제주특별자치도의 해안 [마을](/topic/마을)에서 멸치잡이의 풍어를 비는 굿. 해마다 늦봄이 되면 멸치 떼가 제주도 연안에 몰려들기 시작해 이때가 되면 모래밭이 있는 해안 마을에서는 지인망(물가에 긴 그물을 둘러쳐서 양 끝에 줄을 연결하여 육지에서 끌어당겨 어획하는 도구)으로 멸치 떼를 끌어당겨 잡는다. 이의 풍어를 비는 굿이다. ‘그물코([그물고사](/topic/그물고사))’ 또는 ‘멜굿(멸치굿)’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의제주특별자치도의 해안 [마을](/topic/마을)에서 멸치잡이의 풍어를 비는 굿. 해마다 늦봄이 되면 멸치 떼가 제주도 연안에 몰려들기 시작해 이때가 되면 모래밭이 있는 해안 마을에서는 지인망(물가에 긴 그물을 둘러쳐서 양 끝에 줄을 연결하여 육지에서 끌어당겨 어획하는 도구)으로 멸치 떼를 끌어당겨 잡는다. 이의 풍어를 비는 굿이다. ‘그물코([그물고사](/topic/그물고사))’ 또는 ‘멜굿(멸치굿)’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Pungeoje is the term for rituals held in the coastal regions to pray for peace in the village, safety for the fishermen at sea, and a big catch.

Byeolsingut and haesinje are other terms used to refer to this big catch ritual. Prayers for safety and a big catch are offered to the sea deity [[Yongwang](/topic/DragonKing)](/topic/Yongwang) (Dragon King), the procedures generally officiated by a shaman. Byeolsingut of the eastern and southern coasts; pungeoje from the island of Hwangdo off Anmyeondo on the western coast; and haesinje of Ulleung and Jeju islands are some of the most widely known big catch rituals.
내용그물고사(멜굿)의 대상 신은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는 어부들의 신인 선왕신(船王)으로, ‘영감’ 또는 ‘참봉’이라 불리는 ‘도체비(도깨비)’이다. 옛날 모래밭이 널리 분포돼 있던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와 구좌읍 김녕리․월정리․동복리, 서귀포시 성산읍 동남리 등의 [마을](/topic/마을)에는 그물접[網契]이 구성되어 멸치를 몰아다 주는 영감 도체비를 위한 멜굿․도체비굿이 많았다. 특히 함덕리에는 멸치를 몰아다 주는 도깨비를 ‘말둥이영감’이라 불렀고, 또 그 ‘말둥이영감’이 멸치 떼를 많이 불러 주게 하는 [도깨비굿](/topic/도깨비굿) 가 있었으나 1960년대가 되어 멸치는 잡히지 않고 해수욕장이 개발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제비(祭費)는 각 그물접에서 공동으로 부담하고, [제관](/topic/제관)은 회의를 통해 선출한다. 제관은 [초헌](/topic/초헌)관, [아헌](/topic/아헌)관, [종헌](/topic/종헌)관과 양 집사를 합쳐 모두 다섯 명이다. [헌관](/topic/헌관)은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이 맞는 사람으로 고른다. 제관들은 제일 사흘 전부터 합숙해 [재계](/topic/재계)를 하고 제를 지낸다. 제의는 상단제와 하단제로 나누어 지낸다. 상단제신은 해신, 하단제신은 바다에서 죽은 [무주고혼](/topic/무주고혼)이다. 제관은 상단제의 아헌관이 헌관이 되고 양 집사가 서서 행제한다.

제의 순서는 먼저 헌관이 배례하여 [분향](/topic/분향)을 하고 술잔을 드린다. 술잔은 작은 종지를 쓴다. 헌관이 드리는 잔을 집사가 받아서 메 양푼 둘레에 올리고 그 술잔 앞에 숟가락을 하나 꽂는다. 다시 헌관이 술잔을 드리면 집사가 받아 양푼 둘레에 올리고 숟가락 하나를 꽂는다. 이렇게 술잔 30여 개를 계속해서 올리고 숟가락도 술잔 수대로 양푼 둘레를 돌아가며 꽂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독축](/topic/독축)을 하고 잡식을 한다. ‘잡식’은 [제상](/topic/제상)에 올린 각종 제물을 그릇에 한 숟갈씩 떠 놓고 이를 바다에 가서 어장이 잘되게 해 달라는 축언을 하며 숟가락으로 제물을 떠서 바다에 던지는 것이다.

이로써 제의는 끝난 셈이다. 마지막으로 ‘지묻음’이 남아 있다. ‘지묻음’은 상단제를 끝내고 난 뒤 돼지머리와 모혈(毛血)을 [창호지](/topic/창호지)에 싸 둔 것을 들고 배를 타고 200m 정도 바다로 나가 이것을 물속에 던지는 것이다. 지묻음을 하는 사람은 배를 타고 나가 “금년 해신․용신들이 도와서 어장이 잘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축언을 고하고 지를 바다에 던지고 돌아온다. 해신제는 의례 방식이 유교식 제의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정형화되지 못했고 ‘지드림’과 같이 무속의례의 잔영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Pungeoje is the term for rituals held in the coastal regions to pray for peace in the village, safety for the fishermen at sea, and a big catch.

Byeolsingut and haesinje are other terms used to refer to this big catch ritual. Prayers for safety and a big catch are offered to the sea deity [[Yongwang](/topic/DragonKing)](/topic/Yongwang) (Dragon King), the procedures generally officiated by a shaman. Byeolsingut of the eastern and southern coasts; pungeoje from the island of Hwangdo off Anmyeondo on the western coast; and haesinje of Ulleung and Jeju islands are some of the most widely known big catch rituals.
내용그물고사(멜굿)의 대상 신은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는 어부들의 신인 선왕신(船王)으로, ‘영감’ 또는 ‘참봉’이라 불리는 ‘도체비(도깨비)’이다. 옛날 모래밭이 널리 분포돼 있던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와 구좌읍 김녕리․월정리․동복리, 서귀포시 성산읍 동남리 등의 [마을](/topic/마을)에는 그물접[網契]이 구성되어 멸치를 몰아다 주는 영감 도체비를 위한 멜굿․도체비굿이 많았다. 특히 함덕리에는 멸치를 몰아다 주는 도깨비를 ‘말둥이영감’이라 불렀고, 또 그 ‘말둥이영감’이 멸치 떼를 많이 불러 주게 하는 [도깨비굿](/topic/도깨비굿) 가 있었으나 1960년대가 되어 멸치는 잡히지 않고 해수욕장이 개발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제비(祭費)는 각 그물접에서 공동으로 부담하고, [제관](/topic/제관)은 회의를 통해 선출한다. 제관은 [초헌](/topic/초헌)관, [아헌](/topic/아헌)관, [종헌](/topic/종헌)관과 양 집사를 합쳐 모두 다섯 명이다. [헌관](/topic/헌관)은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이 맞는 사람으로 고른다. 제관들은 제일 사흘 전부터 합숙해 [재계](/topic/재계)를 하고 제를 지낸다. 제의는 상단제와 하단제로 나누어 지낸다. 상단제신은 해신, 하단제신은 바다에서 죽은 [무주고혼](/topic/무주고혼)이다. 제관은 상단제의 아헌관이 헌관이 되고 양 집사가 서서 행제한다.

제의 순서는 먼저 헌관이 배례하여 [분향](/topic/분향)을 하고 술잔을 드린다. 술잔은 작은 종지를 쓴다. 헌관이 드리는 잔을 집사가 받아서 메 양푼 둘레에 올리고 그 술잔 앞에 숟가락을 하나 꽂는다. 다시 헌관이 술잔을 드리면 집사가 받아 양푼 둘레에 올리고 숟가락 하나를 꽂는다. 이렇게 술잔 30여 개를 계속해서 올리고 숟가락도 술잔 수대로 양푼 둘레를 돌아가며 꽂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독축](/topic/독축)을 하고 잡식을 한다. ‘잡식’은 [제상](/topic/제상)에 올린 각종 제물을 그릇에 한 숟갈씩 떠 놓고 이를 바다에 가서 어장이 잘되게 해 달라는 축언을 하며 숟가락으로 제물을 떠서 바다에 던지는 것이다.

이로써 제의는 끝난 셈이다. 마지막으로 ‘지묻음’이 남아 있다. ‘지묻음’은 상단제를 끝내고 난 뒤 돼지머리와 모혈(毛血)을 [창호지](/topic/창호지)에 싸 둔 것을 들고 배를 타고 200m 정도 바다로 나가 이것을 물속에 던지는 것이다. 지묻음을 하는 사람은 배를 타고 나가 “금년 해신․용신들이 도와서 어장이 잘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축언을 고하고 지를 바다에 던지고 돌아온다. 해신제는 의례 방식이 유교식 제의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정형화되지 못했고 ‘지드림’과 같이 무속의례의 잔영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지역사례1. 조천읍 함덕리의 멜굿 : 함덕리는 제주도에서 제일가는 멸치어장이었다. 해수욕장이 개발되기 전만 해도 해수욕장이 있는 ‘큰사시미’ 왼쪽으로 ‘당뒤’, ‘만월여’, ‘중턱굴’, ‘올랫여’, ‘서모’ 등 모두가 기름진 멜밭(멸치어장)이었다. 집어등에 의한 포획이 먼바다에서 행해지고, 해수욕장이 개장되면서 지금은 멸치어장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물코가 천 코라도 베릿배가 주장이더라’는 속담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온 [마을](/topic/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소속된 접꾼끼리 힘을 모아 동아줄을 당긴 것이다. 그물을 당기다 보면 멸치 무게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멸치가 잡혔으며, 지금의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멸치 파시가 펼쳐졌다. 선진망 계원이 아니어도 공공연하게 ‘내어놓은 도둑질’을 하여 마을의 어느 집도 멸치가 들어[가지](/topic/가지) 않은 집이 없었다.

그물접 1접은 30~5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초성기에는 10접까지 있었다. 접에는 주장이 되는 ‘도가’, ‘도가’를 돕는 ‘소임’, 어군(魚群)을 탐지하는 ‘해상’, 계원 관리와 [수확](/topic/수확)의 분배를 맡은 ‘공원’, ‘큰배사공’ 두 명과 사공 세 명 등이 있었다. ‘큰배사공’은 몫을 나눌 때 3찍이라 해서 보통 계원의 세 배를 받고, ‘도가’와 ‘해상’은 2찍 씩을 받았다.

함덕리는 멸치로 부자가 된 마을로, 멸치를 몰아다 주는 ‘말둥이영감’에게 해마다 멸치잡이의 풍요를 기원하는 풍어굿으로 ‘멜굿’을 행했다. 이 굿은 그물을 부리는 함덕마을의 8개 그물접 계원들이 주동이 되어 이루어졌다. 팔선진의 도가(계장)․으뜸․소임들이 중심이 되어 택일을 하고, 일주일 동안 몸정성을 다한다. 굿을 할 때에는 8~10명의 심방을 데리고 이레굿[七日祭]으로 하기 때문에 규모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들어 경비 관계로 뱃고사로 끝내기도 한다.
제장은 현재 탈의장이 있는 곳의 빈 공간에 마련하고, 굿의 마지막 석에는 반드시 ‘말둥이영감’을 놀리는 를 한다. 굿이 끝나면 말둥이영감을 모신 제단이 있는 천연동굴로 가서 ‘영감몫’이라고 하여 돼지 희생을 올린다. 이때 희생으로 쓴 돼지머리는 껍질을 벗기고 머리뼈만 제공한다.


2. 구좌읍 김녕리의 [그물고사](/topic/그물고사)[海神祭] : 정월에 택일하여 해안 그물어장 현장에서 저녁 7시 반쯤에 시작한다. 상단과 하단에 모신 신이 있다. 상단신은 해신, 하단신은 바다에서 죽은 [무주고혼](/topic/무주고혼)의 영혼들이다. 그물고사의 운영은 어망의 계 모임인 그물접에서 지낸다. 동김녕리는 창골접, 신산접, 고봉개접, 아락접 등 네 개의 ‘접(接)’으로 갈라져 있다. 전에는 접마다 따로 제사를 지냈으나 1969년부터는 네 접이 합동으로 지내게 되었다. 제사 비용은 각 접에서 공동부담하고, 회의를 통해 [제관](/topic/제관)을 뽑는다. 제관은 [초헌](/topic/초헌), [아헌](/topic/아헌), [종헌](/topic/종헌) 3제관과 양집사를 합쳐 다섯 명으로 행제(行祭)한다. [헌관](/topic/헌관)은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으로 고른다. 제를 준비하며 사흘 동안 합숙․[재계](/topic/재계)(齋戒)를 한다. 이때 멸치젓과 돼지고기는 금한다.

제사는 상단제와 하단제를 지낸다. 상단제의 제물로는 메 4기(숟가락을 안 쓰고 향 가지를 두 개씩 꽂음), 오과(五果), 건어, [미나리](/topic/미나리)채, 미역채, 전복, 감주(甘酒), 현주(玄酒 또는 井華水), 청주, 폐백(幣帛, 마포 한 필), 모혈(毛穴), 돼지 희생 등을 준비한다. [제상](/topic/제상)은 바다를 뒤로하여 세운다. 하단제의 제물은 상단제에 올리는 것을 모두 올리지만 상(床) 발을 지워 얕게 배설한다. 단, 메는 메그릇에 따로따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큰 양푼 하나에 가득 떠서 그대로 올린다. 제관은 상단제의 아헌관이 혼자 헌관이 되고 양집사가 서서 제를 지낸다.


3. 구좌읍 월정리의 덜레 그물고사 : 제 터는 바닷가 ‘덜레’라는 곳에 있다. 이에 따라 제(祭)의 명칭을 지명을 따서 ‘덜레’라 하기도 하고, ‘그물고사’라 하기도 하며, 어른들은 ‘해신제’라 부르기도 한다. 제단 형태는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장방형의 [돌담](/topic/돌담) 울타리를 쌓고 그 안에 상단과 하단 두 개의 제단을 나란히 반석으로 깔아 놓았으며, 양 제단 사이에는 돌담을 쌓아 가렸다. 왼쪽 제단이 상단, 오른쪽 제단이 하단이다. 각단은 상석과 향석 두 개로 되었고, 상단 옆에는 폐백을 태우는 망료위가 있다. 상단에 모신 신은 해신(海神), 하단의 신은 무주고혼(無主孤魂)이다. 제일(祭日)은 정월․삼월․유월의 초이렛날이며, 3개 망(網)에서 일 년에 한 차례씩 한다.

월정리는 여섯 개의 그물접이 조직되었다가 세 개의 접으로 줄었고, 1970년대 말에는 전부 없어졌다. 이름은 ‘3망, 5망, 6망’이라는 숫자로 이름을 붙인다. 각 망은 망장(網長), 공원(公員), 소임(所任)의 세 임원이 운영한다. 제의는 각 망 회의에서 제관을 선출하고 준비한다. 제관은 생기복덕이 닿는 사람으로 삼헌관을 뽑고, 집사 두 명을 합쳐 다섯 명으로 구성한다. 제의는 상단제와 하단제로 구분된다.

상단제는 희생 한 마리, 메 4기[稻粱黍稷], 해어(海魚), 황육(黃肉), 미역채, 미나리채, 오과(五果), 모혈 등을 진설하여 삼헌관이 직배(直拜)로써 행제한다. 제의 순서는 홀기(笏記) 낭송 없이 배례․삼상향․헌폐 후 초헌관이 [헌작](/topic/헌작)하여 [독축](/topic/독축)하고, 아헌관과 종헌관이 헌작하면 철변두하고 분폐함으로써 끝난다. 상단제 후에 하단제를 지낸다. 하단에는 바다에서 죽은 고혼들 몫의 메와 해선(망선, 떼배 등) 몫의 메를 합쳐 30여 기를 올리고, 다른 제물은 상단과 같이 올린다. 행제도 상단제와 같이 한다.

상․하단제와 동시에 무식제당(巫式祭堂)인 해신당과 ‘솔락개’라는 어장 포구에도 각각 고사를 지낸다. 해신당에는 망장의 처나 소임이 가서 제물을 제단에 진설하고 축을 고함이 없이 간단히 제를 올린다. 어장 포구에는 망장과 공원 등이 가서 제물을 진설하고 독축 없이 간단히 의례를 한다. 제를 모두 지내고 나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지묻음’을 하는 것은 김녕리의 그물고사와 같다. 월정리에서는 특히 [수수](/topic/수수)밥 등 제물을 싸서 바다에 던진다. 이는 도체비(도깨비신)에게 어장의 풍등을 기원하는 것이다. 도체비신은 어장에 불을 밝혀 돌아다니면서 어로를 방해하기도 하고 돕기도 한다.


4. 제주시 화북동 해신제 : 제주시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는 ‘해신사(海神祠)’는 1820년(순조 20)에 목사 한상묵(韓相黙)이 해상 활동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화북포 해안에 지은 [사당](/topic/사당)이다. 1841년(헌종 7)에 방어사(防禦使) 이원조(李源祚)가 건물을 중수하였고, 1849년(헌종 15)에 방어사 장인식(張寅植)이 ‘해신지위(海神之位)’라는 신위를 돌로 새겨 보존케 하였다.

해신사에 모신 해신은 배를 타고 육지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해상사고로부터 생명의 안전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해신은 마을 사람들이 해신당에 모시는 요왕신․선왕신, 해녀들의 바다밭[海田] 경작을 돕는 요왕신, 어부들의 배가 잘되어 만선풍어가 되게 해주거나 멸치잡이의 만선이 되게 해주는 선왕신(도깨비)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마을에서 해신제를 지낸다. 조선시대에는 선박이 출항하기 전에 해신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마을 사람들의 해신신앙이 되어 음력 정월대보름날에 해신제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제주도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제주도, 1986)
제주도부락지 2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0)
제주의 전통문화 (제주도교육청, 1996)
제주의 문화재(증보판) (제주도, 1998)
제주의 민속 (제주도, 1998)
제주의 [마을](/topic/마을) 시리즈 3-함덕리 (오성찬 외, 반석, 2002)
제주도지 (제주특별자치도, 2006)
제주도 본향당신앙과 본풀이 (문무병, 민속원, 2008)
화산섬, 제주문화재탐방 (제주문화예술재단, 2009)
제주도 마을제 종합보고서-제주 유교식 마을제의 전승현장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진흥본부 박물관운영부, 2010)
지역사례1. 조천읍 함덕리의 멜굿 : 함덕리는 제주도에서 제일가는 멸치어장이었다. 해수욕장이 개발되기 전만 해도 해수욕장이 있는 ‘큰사시미’ 왼쪽으로 ‘당뒤’, ‘만월여’, ‘중턱굴’, ‘올랫여’, ‘서모’ 등 모두가 기름진 멜밭(멸치어장)이었다. 집어등에 의한 포획이 먼바다에서 행해지고, 해수욕장이 개장되면서 지금은 멸치어장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물코가 천 코라도 베릿배가 주장이더라’는 속담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온 [마을](/topic/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소속된 접꾼끼리 힘을 모아 동아줄을 당긴 것이다. 그물을 당기다 보면 멸치 무게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멸치가 잡혔으며, 지금의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멸치 파시가 펼쳐졌다. 선진망 계원이 아니어도 공공연하게 ‘내어놓은 도둑질’을 하여 마을의 어느 집도 멸치가 들어[가지](/topic/가지) 않은 집이 없었다.

그물접 1접은 30~5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초성기에는 10접까지 있었다. 접에는 주장이 되는 ‘도가’, ‘도가’를 돕는 ‘소임’, 어군(魚群)을 탐지하는 ‘해상’, 계원 관리와 [수확](/topic/수확)의 분배를 맡은 ‘공원’, ‘큰배사공’ 두 명과 사공 세 명 등이 있었다. ‘큰배사공’은 몫을 나눌 때 3찍이라 해서 보통 계원의 세 배를 받고, ‘도가’와 ‘해상’은 2찍 씩을 받았다.

함덕리는 멸치로 부자가 된 마을로, 멸치를 몰아다 주는 ‘말둥이영감’에게 해마다 멸치잡이의 풍요를 기원하는 풍어굿으로 ‘멜굿’을 행했다. 이 굿은 그물을 부리는 함덕마을의 8개 그물접 계원들이 주동이 되어 이루어졌다. 팔선진의 도가(계장)․으뜸․소임들이 중심이 되어 택일을 하고, 일주일 동안 몸정성을 다한다. 굿을 할 때에는 8~10명의 심방을 데리고 이레굿[七日祭]으로 하기 때문에 규모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들어 경비 관계로 뱃고사로 끝내기도 한다.
제장은 현재 탈의장이 있는 곳의 빈 공간에 마련하고, 굿의 마지막 석에는 반드시 ‘말둥이영감’을 놀리는 를 한다. 굿이 끝나면 말둥이영감을 모신 제단이 있는 천연동굴로 가서 ‘영감몫’이라고 하여 돼지 희생을 올린다. 이때 희생으로 쓴 돼지머리는 껍질을 벗기고 머리뼈만 제공한다.


2. 구좌읍 김녕리의 [그물고사](/topic/그물고사)[海神祭] : 정월에 택일하여 해안 그물어장 현장에서 저녁 7시 반쯤에 시작한다. 상단과 하단에 모신 신이 있다. 상단신은 해신, 하단신은 바다에서 죽은 [무주고혼](/topic/무주고혼)의 영혼들이다. 그물고사의 운영은 어망의 계 모임인 그물접에서 지낸다. 동김녕리는 창골접, 신산접, 고봉개접, 아락접 등 네 개의 ‘접(接)’으로 갈라져 있다. 전에는 접마다 따로 제사를 지냈으나 1969년부터는 네 접이 합동으로 지내게 되었다. 제사 비용은 각 접에서 공동부담하고, 회의를 통해 [제관](/topic/제관)을 뽑는다. 제관은 [초헌](/topic/초헌), [아헌](/topic/아헌), [종헌](/topic/종헌) 3제관과 양집사를 합쳐 다섯 명으로 행제(行祭)한다. [헌관](/topic/헌관)은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으로 고른다. 제를 준비하며 사흘 동안 합숙․[재계](/topic/재계)(齋戒)를 한다. 이때 멸치젓과 돼지고기는 금한다.

제사는 상단제와 하단제를 지낸다. 상단제의 제물로는 메 4기(숟가락을 안 쓰고 향 가지를 두 개씩 꽂음), 오과(五果), 건어, [미나리](/topic/미나리)채, 미역채, 전복, 감주(甘酒), 현주(玄酒 또는 井華水), 청주, 폐백(幣帛, 마포 한 필), 모혈(毛穴), 돼지 희생 등을 준비한다. [제상](/topic/제상)은 바다를 뒤로하여 세운다. 하단제의 제물은 상단제에 올리는 것을 모두 올리지만 상(床) 발을 지워 얕게 배설한다. 단, 메는 메그릇에 따로따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큰 양푼 하나에 가득 떠서 그대로 올린다. 제관은 상단제의 아헌관이 혼자 헌관이 되고 양집사가 서서 제를 지낸다.


3. 구좌읍 월정리의 덜레 그물고사 : 제 터는 바닷가 ‘덜레’라는 곳에 있다. 이에 따라 제(祭)의 명칭을 지명을 따서 ‘덜레’라 하기도 하고, ‘그물고사’라 하기도 하며, 어른들은 ‘해신제’라 부르기도 한다. 제단 형태는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장방형의 [돌담](/topic/돌담) 울타리를 쌓고 그 안에 상단과 하단 두 개의 제단을 나란히 반석으로 깔아 놓았으며, 양 제단 사이에는 돌담을 쌓아 가렸다. 왼쪽 제단이 상단, 오른쪽 제단이 하단이다. 각단은 상석과 향석 두 개로 되었고, 상단 옆에는 폐백을 태우는 망료위가 있다. 상단에 모신 신은 해신(海神), 하단의 신은 무주고혼(無主孤魂)이다. 제일(祭日)은 정월․삼월․유월의 초이렛날이며, 3개 망(網)에서 일 년에 한 차례씩 한다.

월정리는 여섯 개의 그물접이 조직되었다가 세 개의 접으로 줄었고, 1970년대 말에는 전부 없어졌다. 이름은 ‘3망, 5망, 6망’이라는 숫자로 이름을 붙인다. 각 망은 망장(網長), 공원(公員), 소임(所任)의 세 임원이 운영한다. 제의는 각 망 회의에서 제관을 선출하고 준비한다. 제관은 생기복덕이 닿는 사람으로 삼헌관을 뽑고, 집사 두 명을 합쳐 다섯 명으로 구성한다. 제의는 상단제와 하단제로 구분된다.

상단제는 희생 한 마리, 메 4기[稻粱黍稷], 해어(海魚), 황육(黃肉), 미역채, 미나리채, 오과(五果), 모혈 등을 진설하여 삼헌관이 직배(直拜)로써 행제한다. 제의 순서는 홀기(笏記) 낭송 없이 배례․삼상향․헌폐 후 초헌관이 [헌작](/topic/헌작)하여 [독축](/topic/독축)하고, 아헌관과 종헌관이 헌작하면 철변두하고 분폐함으로써 끝난다. 상단제 후에 하단제를 지낸다. 하단에는 바다에서 죽은 고혼들 몫의 메와 해선(망선, 떼배 등) 몫의 메를 합쳐 30여 기를 올리고, 다른 제물은 상단과 같이 올린다. 행제도 상단제와 같이 한다.

상․하단제와 동시에 무식제당(巫式祭堂)인 해신당과 ‘솔락개’라는 어장 포구에도 각각 고사를 지낸다. 해신당에는 망장의 처나 소임이 가서 제물을 제단에 진설하고 축을 고함이 없이 간단히 제를 올린다. 어장 포구에는 망장과 공원 등이 가서 제물을 진설하고 독축 없이 간단히 의례를 한다. 제를 모두 지내고 나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지묻음’을 하는 것은 김녕리의 그물고사와 같다. 월정리에서는 특히 [수수](/topic/수수)밥 등 제물을 싸서 바다에 던진다. 이는 도체비(도깨비신)에게 어장의 풍등을 기원하는 것이다. 도체비신은 어장에 불을 밝혀 돌아다니면서 어로를 방해하기도 하고 돕기도 한다.


4. 제주시 화북동 해신제 : 제주시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는 ‘해신사(海神祠)’는 1820년(순조 20)에 목사 한상묵(韓相黙)이 해상 활동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화북포 해안에 지은 [사당](/topic/사당)이다. 1841년(헌종 7)에 방어사(防禦使) 이원조(李源祚)가 건물을 중수하였고, 1849년(헌종 15)에 방어사 장인식(張寅植)이 ‘해신지위(海神之位)’라는 신위를 돌로 새겨 보존케 하였다.

해신사에 모신 해신은 배를 타고 육지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해상사고로부터 생명의 안전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해신은 마을 사람들이 해신당에 모시는 요왕신․선왕신, 해녀들의 바다밭[海田] 경작을 돕는 요왕신, 어부들의 배가 잘되어 만선풍어가 되게 해주거나 멸치잡이의 만선이 되게 해주는 선왕신(도깨비)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마을에서 해신제를 지낸다. 조선시대에는 선박이 출항하기 전에 해신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마을 사람들의 해신신앙이 되어 음력 정월대보름날에 해신제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제주도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제주도, 1986)
제주도부락지 2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0)
제주의 전통문화 (제주도교육청, 1996)
제주의 문화재(증보판) (제주도, 1998)
제주의 민속 (제주도, 1998)
제주의 [마을](/topic/마을) 시리즈 3-함덕리 (오성찬 외, 반석, 2002)
제주도지 (제주특별자치도, 2006)
제주도 본향당신앙과 본풀이 (문무병, 민속원, 2008)
화산섬, 제주문화재탐방 (제주문화예술재단, 2009)
제주도 마을제 종합보고서-제주 유교식 마을제의 전승현장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진흥본부 박물관운영부, 2010)
유래[그물고사](/topic/그물고사) 또는 멜굿(멸치굿)은 옛날에는 심방을 빌려 굿으로 해 왔고, 그 후 유교식 제법으로 바꾸어 전해 오다가 1970년대부터 멸치 떼가 몰려오지 않아 지인망어업(地引網漁業)이 없어지면서 제의도 소멸되었다. 굿으로 할 때는 그 이름을 ‘그물코’ 또는 ‘멜굿’이라 했고, 유교식 제법으로 바뀌면서 ‘해신제(海神祭)’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유래[그물고사](/topic/그물고사) 또는 멜굿(멸치굿)은 옛날에는 심방을 빌려 굿으로 해 왔고, 그 후 유교식 제법으로 바꾸어 전해 오다가 1970년대부터 멸치 떼가 몰려오지 않아 지인망어업(地引網漁業)이 없어지면서 제의도 소멸되었다. 굿으로 할 때는 그 이름을 ‘그물코’ 또는 ‘멜굿’이라 했고, 유교식 제법으로 바뀌면서 ‘해신제(海神祭)’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문음사한국인의 굿과 무당황루시1988
문화재관리국경기도 도당굿-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186호이두현 외1990
국립문화재연구소경기도 도당굿-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김헌선1999
국립문화재연구소무·굿과 음식 1, 2, 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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