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 있는 [마을](/topic/마을)제당. 마을 어귀에서 [[장군](/topic/장군)봉](/topic/장군봉)까지 마을 곳곳에 마을수호신을 모셔 놓고 있다. 마을제당은 장군당을 비롯하여 천제당과 당산나무 10여 그루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당 안에는 장군도, 목마 두 마리, 산신당과 산신도, 돌벅수 한 쌍 등이 놓여 있다. 이들 일련의 마을신앙 가운데 장군신도는 ‘중요민속자료 제9-1호’, 장군당 안의 대목마는 ‘중요민속자료 제9-2호’, 벅수는 ‘중요민속자료 제9-3호’ 등으로 세분하여 1968년 11월 23일에 지정되었다. 이 세 [가지](/topic/가지) 모두 합해 ‘중요민속자료 제9호 통영삼덕리마을제당’으로 통칭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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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천진기 |
정의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 있는 [마을](/topic/마을)제당. 마을 어귀에서 [[장군](/topic/장군)봉](/topic/장군봉)까지 마을 곳곳에 마을수호신을 모셔 놓고 있다. 마을제당은 장군당을 비롯하여 천제당과 당산나무 10여 그루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당 안에는 장군도, 목마 두 마리, 산신당과 산신도, 돌벅수 한 쌍 등이 놓여 있다. 이들 일련의 마을신앙 가운데 장군신도는 ‘중요민속자료 제9-1호’, 장군당 안의 대목마는 ‘중요민속자료 제9-2호’, 벅수는 ‘중요민속자료 제9-3호’ 등으로 세분하여 1968년 11월 23일에 지정되었다. 이 세 [가지](/topic/가지) 모두 합해 ‘중요민속자료 제9호 통영삼덕리마을제당’으로 통칭하고 있다. | 정의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 있는 [마을](/topic/마을)제당. 마을 어귀에서 [[장군](/topic/장군)봉](/topic/장군봉)까지 마을 곳곳에 마을수호신을 모셔 놓고 있다. 마을제당은 장군당을 비롯하여 천제당과 당산나무 10여 그루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당 안에는 장군도, 목마 두 마리, 산신당과 산신도, 돌벅수 한 쌍 등이 놓여 있다. 이들 일련의 마을신앙 가운데 장군신도는 ‘중요민속자료 제9-1호’, 장군당 안의 대목마는 ‘중요민속자료 제9-2호’, 벅수는 ‘중요민속자료 제9-3호’ 등으로 세분하여 1968년 11월 23일에 지정되었다. 이 세 [가지](/topic/가지) 모두 합해 ‘중요민속자료 제9호 통영삼덕리마을제당’으로 통칭하고 있다. | 내용 | 삼덕리는 원항, 당포, 관유 등 세 개의 자연[마을](/topic/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관유는 별도의 산신당을 [가지](/topic/가지)고 있고, 원항과 당포는 [[장군](/topic/장군)봉](/topic/장군봉)에 있는 장군당과 산신당에 마을제사를 모신다. 장군봉의 장군당과 산신당에 드리는 마을공동체 제의는 마을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원항마을은 섣달그믐날, 당포마을은 정월 초이튿날에 각각 제의를 치른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제관](/topic/제관)을 선정해 지냈으나 지금은 인근의 스님이나 무당에게 의뢰한다. 당포마을은 정월 초이튿날 산신과 장군신에게 제의를 지낸 다음 마을로 내려와서 [벅수제](/topic/벅수제)와 [용왕제](/topic/용왕제)를 지낸다. [벅수제](/topic/벅수제)와 용왕제가 끝나면 매구꾼들은 먼저 벅수 앞에서 풍악을 치고 절을 한 다음 용왕제를 지낸 바닷가 쪽에 가서 매구를 치고 역시 절을 한다. 그런 다음 마을의 [우물](/topic/우물)과 마을회관을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며 마을의 태평을 기원한다. 원항마을은 섣달그믐날 밤 10시쯤에 장군당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나서 이튿날 오전 5~6시쯤에 벅수제를 시작으로 당산나무제, 용왕제 순으로 지낸다. 장군당․산신당 제의는 스님과 무당 등에 의뢰하여 단독으로 지내고, 벅수제 이후 제의는 마을사람들이 함께 지낸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 6시쯤 이장이 징을 치면 제의가 시작된다. 마을공동체 제의와 별도로 장군당, 산신당, 벅수, 당산 등에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이 마을은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 동제가 잘 보존되어 있고 거기에 따른 신앙 대상이 다양하게 골고루 갖추어져 있어 마을신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치가 크다. | 참고문헌 | 경남어촌민속지 (국립민속박물관, 2002) 한국동물민속론 (천진기, 민속원, 2003) 한국 말 민속론 (천진기, 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 2006) 운명을 읽는 코드 열 두 동물 (천진기,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8) | 내용 | 삼덕리는 원항, 당포, 관유 등 세 개의 자연[마을](/topic/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관유는 별도의 산신당을 [가지](/topic/가지)고 있고, 원항과 당포는 [[장군](/topic/장군)봉](/topic/장군봉)에 있는 장군당과 산신당에 마을제사를 모신다. 장군봉의 장군당과 산신당에 드리는 마을공동체 제의는 마을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원항마을은 섣달그믐날, 당포마을은 정월 초이튿날에 각각 제의를 치른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제관](/topic/제관)을 선정해 지냈으나 지금은 인근의 스님이나 무당에게 의뢰한다. 당포마을은 정월 초이튿날 산신과 장군신에게 제의를 지낸 다음 마을로 내려와서 [벅수제](/topic/벅수제)와 [용왕제](/topic/용왕제)를 지낸다. [벅수제](/topic/벅수제)와 용왕제가 끝나면 매구꾼들은 먼저 벅수 앞에서 풍악을 치고 절을 한 다음 용왕제를 지낸 바닷가 쪽에 가서 매구를 치고 역시 절을 한다. 그런 다음 마을의 [우물](/topic/우물)과 마을회관을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며 마을의 태평을 기원한다. 원항마을은 섣달그믐날 밤 10시쯤에 장군당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나서 이튿날 오전 5~6시쯤에 벅수제를 시작으로 당산나무제, 용왕제 순으로 지낸다. 장군당․산신당 제의는 스님과 무당 등에 의뢰하여 단독으로 지내고, 벅수제 이후 제의는 마을사람들이 함께 지낸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 6시쯤 이장이 징을 치면 제의가 시작된다. 마을공동체 제의와 별도로 장군당, 산신당, 벅수, 당산 등에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이 마을은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 동제가 잘 보존되어 있고 거기에 따른 신앙 대상이 다양하게 골고루 갖추어져 있어 마을신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치가 크다. | 참고문헌 | 경남어촌민속지 (국립민속박물관, 2002) 한국동물민속론 (천진기, 민속원, 2003) 한국 말 민속론 (천진기, 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 2006) 운명을 읽는 코드 열 두 동물 (천진기,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8) | 형태 | 1. [장군](/topic/장군)당과 장군신도 : [장군봉](/topic/장군봉)은 송장개에서 바라본 산의 지형이 갑옷과 투구를 쓴 장군의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장군봉 정상에 장군당이 있다. 장군당은 이곳에 수군 만호가 있던 시대에는 초가[지붕](/topic/지붕)이었으며 1925년쯤에 [기와](/topic/기와)지붕으로 개수하였다고 한다. 장군당을 산제당 또는 상당이라고도 한다. 그 안에 걸린 장군신도는 갑주를 착용한 장군의 모습이다. 장군신도는 현재 두 [가지](/topic/가지)이다. 하나는 예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수염에 갑옷을 입고 양손에 칼을 쥐고 있다. 표현 기법이 거칠다. 다른 하나는 최근에 제작된 것으로 깔끔하게 그려졌다. 옛 것은 목마 뒤에 걸려 있고, 최근 것은 바닥에 내려져 있다. 이 신은 원래 장군봉의 산신령이라고 전해진다. 통영 지방이 [이순신](/topic/이순신)장군의 대첩지여서 근년에 무신이나 남신을 이순신장군과 결부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신도(神圖)도 여기에 근거하지 않았는지 추측되고 있다. 장군에 대해서는 문화재관리국이 1968년에 발간한 『삼덕리부락당제(三德里部落堂祭)』를 보면 이순신장군 또는 고려장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현지 [마을](/topic/마을)에서는 [최영](/topic/최영)장군[사당](/topic/사당)으로도 인식하고 있다. 지금의 신당은 1988년에 재건축한 것이며, 신당 옆에는 산신을 모신 당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 장군봉의 장군은 4월 17일이 생일이며, 이날 당 앞에서 메를 지어 생일을 축하해 준다. 또한 큰 어장이 있는 사람들은 당집 안의 목마에 돈이나 물고기를 걸어 두기도 한다. 2. 대목마(大木馬) : 장군당의 장군신 그림 앞에 서 있는 두 마리의 목마 가운데 큰 목마(용마라고도 함)이다. 목마는 모두 마을 쪽을 향해 서 있다. 놋쇠로 만든 말도 있었으나 도난당하였다. 큰 목마는 1935년쯤에 만든 것으로, 소박한 형태를 하고 있다. 작은 목마는 이 해안에서 어장을 하는 일인(日人)이 풍어 기원으로 헌납한 것이다. 길이 68cm, 높이 65cm로 비교적 정교하다. 큰 목마는 여덟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긴 몸통에 두 귀, 네 다리, 꼬리를 끼워 맞추었다. 갈기와 눈 등은 먹으로 그려 표시했고, 코는 크게 파냈다. 입과 이빨은 조각한 뒤 붉은색으로 칠하였다. 조각을 했다기보다 나무토막을 잘라 별다른 장식 없이 말 모양을 만들고, 먹으로 세부를 그린 형태이다.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엉성한 듯 보이는 소박한 말의 모습이 오히려 친근감은 준다. 작은 목마는 정교하게 만들었다. 큰 목마와 달리 말의 외형을 매끈하게 마감했고, 선각․음양각과 먹 등을 통해 실제 말 모습과 흡사하도록 만들었다. 말과 관련된 설화에 따르면 장군당의 말은 황금으로 되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가지고 가다가 물에 빠뜨렸다고 한다. 또한 예전의 말은 [철마](/topic/철마)였는데 다른 마을에서 훔쳐 가다가 그 배가 바다에 빠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어업을 크게 하던 다나카라는 사람이 일본에서 정교하게 만든 목마를 장군당에 모셨다고 한다. 그는 고기를 잡으면 가장 좋고 큰 것을 목마에 걸었으며, 어획량도 다른 사람에 비해 많았다고 한다. 두 마리의 목마 가운데 작고 정교한 것이 다나카의 것이고, 크고 투박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다나카가 가지고 온 목마는 1960년대에 없어졌고, 그 이후 마을의 [머슴](/topic/머슴)이 새로 큰 목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은 목마는 2000년쯤에 양개일이라는 스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시집을 가거나 장가를 들 때 장군봉이 보이면 가마나 말에서 내렸으며, 사람들이 말을 타고 장군봉이 보이는 세포고개를 넘을 때면 꼭 낙마하거나 말이 다쳤다고 한다. 이를 참지 못한 세포마을 사람들은 밤에 몰래 장군봉에 있는 철마를 훔쳐 바다에 버렸고, 그 이후부터는 낙마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철마가 없어진 사실을 안 삼덕리 사람들이 목마를 만들어 안치했다고 한다. 장군봉에 올라갈 때에는 침을 뱉거나 오줌을 누지 않는다. 장군에 대한 예우와 권위를 보여 주고 위해 주는 것이다. 3. 벅수 : 통영에서 원항마을로 들어가는 어귀 양쪽에 돌벅수 한 쌍이 서 있다. 남벅수는 마을로 들어가면서 오른쪽, 여벅수는 왼쪽에 각각 있다. 재료는 화강암으로 192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크기는 한 쌍의 벅수가 각각 85cm, 90cm이고, 둘레는 98cm, 93cm이다. 벅수는 모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고, 남벅수는 머리장식으로 건(巾)을 쓰고 있다. 마을의 경계표시와 함께 마을지킴이 역할도 한다. | 형태 | 1. [장군](/topic/장군)당과 장군신도 : [장군봉](/topic/장군봉)은 송장개에서 바라본 산의 지형이 갑옷과 투구를 쓴 장군의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장군봉 정상에 장군당이 있다. 장군당은 이곳에 수군 만호가 있던 시대에는 초가[지붕](/topic/지붕)이었으며 1925년쯤에 [기와](/topic/기와)지붕으로 개수하였다고 한다. 장군당을 산제당 또는 상당이라고도 한다. 그 안에 걸린 장군신도는 갑주를 착용한 장군의 모습이다. 장군신도는 현재 두 [가지](/topic/가지)이다. 하나는 예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수염에 갑옷을 입고 양손에 칼을 쥐고 있다. 표현 기법이 거칠다. 다른 하나는 최근에 제작된 것으로 깔끔하게 그려졌다. 옛 것은 목마 뒤에 걸려 있고, 최근 것은 바닥에 내려져 있다. 이 신은 원래 장군봉의 산신령이라고 전해진다. 통영 지방이 [이순신](/topic/이순신)장군의 대첩지여서 근년에 무신이나 남신을 이순신장군과 결부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신도(神圖)도 여기에 근거하지 않았는지 추측되고 있다. 장군에 대해서는 문화재관리국이 1968년에 발간한 『삼덕리부락당제(三德里部落堂祭)』를 보면 이순신장군 또는 고려장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현지 [마을](/topic/마을)에서는 [최영](/topic/최영)장군[사당](/topic/사당)으로도 인식하고 있다. 지금의 신당은 1988년에 재건축한 것이며, 신당 옆에는 산신을 모신 당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 장군봉의 장군은 4월 17일이 생일이며, 이날 당 앞에서 메를 지어 생일을 축하해 준다. 또한 큰 어장이 있는 사람들은 당집 안의 목마에 돈이나 물고기를 걸어 두기도 한다. 2. 대목마(大木馬) : 장군당의 장군신 그림 앞에 서 있는 두 마리의 목마 가운데 큰 목마(용마라고도 함)이다. 목마는 모두 마을 쪽을 향해 서 있다. 놋쇠로 만든 말도 있었으나 도난당하였다. 큰 목마는 1935년쯤에 만든 것으로, 소박한 형태를 하고 있다. 작은 목마는 이 해안에서 어장을 하는 일인(日人)이 풍어 기원으로 헌납한 것이다. 길이 68cm, 높이 65cm로 비교적 정교하다. 큰 목마는 여덟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긴 몸통에 두 귀, 네 다리, 꼬리를 끼워 맞추었다. 갈기와 눈 등은 먹으로 그려 표시했고, 코는 크게 파냈다. 입과 이빨은 조각한 뒤 붉은색으로 칠하였다. 조각을 했다기보다 나무토막을 잘라 별다른 장식 없이 말 모양을 만들고, 먹으로 세부를 그린 형태이다.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엉성한 듯 보이는 소박한 말의 모습이 오히려 친근감은 준다. 작은 목마는 정교하게 만들었다. 큰 목마와 달리 말의 외형을 매끈하게 마감했고, 선각․음양각과 먹 등을 통해 실제 말 모습과 흡사하도록 만들었다. 말과 관련된 설화에 따르면 장군당의 말은 황금으로 되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가지고 가다가 물에 빠뜨렸다고 한다. 또한 예전의 말은 [철마](/topic/철마)였는데 다른 마을에서 훔쳐 가다가 그 배가 바다에 빠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어업을 크게 하던 다나카라는 사람이 일본에서 정교하게 만든 목마를 장군당에 모셨다고 한다. 그는 고기를 잡으면 가장 좋고 큰 것을 목마에 걸었으며, 어획량도 다른 사람에 비해 많았다고 한다. 두 마리의 목마 가운데 작고 정교한 것이 다나카의 것이고, 크고 투박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다나카가 가지고 온 목마는 1960년대에 없어졌고, 그 이후 마을의 [머슴](/topic/머슴)이 새로 큰 목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은 목마는 2000년쯤에 양개일이라는 스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시집을 가거나 장가를 들 때 장군봉이 보이면 가마나 말에서 내렸으며, 사람들이 말을 타고 장군봉이 보이는 세포고개를 넘을 때면 꼭 낙마하거나 말이 다쳤다고 한다. 이를 참지 못한 세포마을 사람들은 밤에 몰래 장군봉에 있는 철마를 훔쳐 바다에 버렸고, 그 이후부터는 낙마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철마가 없어진 사실을 안 삼덕리 사람들이 목마를 만들어 안치했다고 한다. 장군봉에 올라갈 때에는 침을 뱉거나 오줌을 누지 않는다. 장군에 대한 예우와 권위를 보여 주고 위해 주는 것이다. 3. 벅수 : 통영에서 원항마을로 들어가는 어귀 양쪽에 돌벅수 한 쌍이 서 있다. 남벅수는 마을로 들어가면서 오른쪽, 여벅수는 왼쪽에 각각 있다. 재료는 화강암으로 192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크기는 한 쌍의 벅수가 각각 85cm, 90cm이고, 둘레는 98cm, 93cm이다. 벅수는 모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고, 남벅수는 머리장식으로 건(巾)을 쓰고 있다. 마을의 경계표시와 함께 마을지킴이 역할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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