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부전대동계문서

한국무속신앙사전
충청남도 공주시 부전동에서 조선 후기 동계를 결성하고 그 운영내력을 기록한 문서. 부전대동계는 16세기 이래 부전동에 속한 12개 [마을](/topic/마을)민들이 향촌자치와 무성산의 산신제를 주관해 온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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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부전동에서 조선 후기 동계를 결성하고 그 운영내력을 기록한 문서. 부전대동계는 16세기 이래 부전동에 속한 12개 [마을](/topic/마을)민들이 향촌자치와 무성산의 산신제를 주관해 온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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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충청남도 공주시 부전동에서 조선 후기 동계를 결성하고 그 운영내력을 기록한 문서. 부전대동계는 16세기 이래 부전동에 속한 12개 [마을](/topic/마을)민들이 향촌자치와 무성산의 산신제를 주관해 온 조직이다
정의충청남도 공주시 부전동에서 조선 후기 동계를 결성하고 그 운영내력을 기록한 문서. 부전대동계는 16세기 이래 부전동에 속한 12개 [마을](/topic/마을)민들이 향촌자치와 무성산의 산신제를 주관해 온 조직이다
내용‘공주부전대동계문서’는 400년 넘게 이어온 동계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자료이다. 현재 전하고 있는 부전동계의 문서로는『 동계좌목(洞稧座目)』, 『선안(仙案)』 등 동계좌목류 13권, 동계 소유의 [동물](/topic/동물)(洞物)에 관한 사항을 기록해 놓은 『부전동물유치책(浮田洞物留置冊)』 1권, 동계재산과 관련해서 송사(訟事)를 다룬 소지류 5점 등이다. 그 외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매년 동계 수지부(收支簿) 6권, 1994년 산신제례회의 구성과 관련한 회의록 및 결의서, 산신제와 관련한 산제문(山祭文)·천제문(川祭文), 동계 소유 부동산의 등기와 관련된 서류 등 40여 건 등이다.

동계좌목류 문서 중 가장 이른 자료는 1663년(현종 4)의 『동계좌목』이다. 크기는 가로 25.5㎝×세로 40㎝로 수록내용은 「동계중수서(洞契重修序)」와 「좌목(座目)」·「입약(立約)」·「입의(立義)」이다. 「좌목」에는 모두 23인(추입 7인)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고,「 입약(立約)」은 모두 10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행세칙으로 볼 수 있는 「입의(立義)」 27조가 첨부되어 있다. 부전동계는 1663년을 포함해서 조선 후기에 세 차례 중수(1663·1792·1839년)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다시 두 차례 중수(1914·1924년)되었다. 이와 관련된 문서로는 1792년의 『대동계 입의(大同稧 立議)』, 1839년의『 부전대동계 입의(浮田大同稧 立議)』, 1914년과 1924년의 『부전대동계 중수안(浮田大洞稧 重修案)』 등이 있다.

1792년 『대동계 입의』는 「동계중수서(洞稧重修序)」,「 입약(立約)」,「 벌목(罰目)」으로, 1839년『 부전대동계 입의』는 「우정부전대동계중수서(牛井浮田大洞稧重修序)」, 「입의(立議)」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시기에도 동계는 상하합계의 형태로 운영되었고 하민(下民)을 통제하기 위한 동계 보완의 필요성 등이 논의되고 있다. 두 계첩 모두에는 이전과는 달리 관의 답인(踏印)이 찍혀 있다. 그리고 1839년의『 부전대동계 입의』에는 부전동계문서 중 처음으로 산신제 [제관](/topic/제관)을 선정하는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

1914년의 『부전대동계 중수안』 「동계규칙 정정」에서는 “본계는 무성산 여제(厲祭)를 존숭(尊崇)하고 혼상제구(婚喪諸具)를 준비하여 일반계원이 사용하기로 한다”라고 해서 여제로 표현되는 산신제 거행이 동계의 목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이어 1924년의 『부전대동계 중수안』 「규칙」에는 산신제의 거행을 위해 “상여[고지](/topic/고지)기[大輿庫直]가 경작하는 사래답(私來畓) 3두락(斗落)을 산제답(山祭畓)으로 변경”하고, “산제답의 도조를 쌀 10두(斗)로 정해서 산제를 지낸다”는 등의 관련 조항을 두어 산신제 운영의 [기초](/topic/기초)를 마련하고 있다.

1839년에 작성된 『부전동물유치책(浮田洞物留置冊)』은 가로 27.2㎝×세로 40㎝이다. 혼구(婚具)와 상구(喪具) 등 부전동계에서 소유한 동물(洞物)의 종류와 구입 연도, 동물별 세전(貰錢)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말미에는 ‘각처도지결총기(各處賭地結摠記)’라 해서 [동답](/topic/동답)의 운영 및 도지(賭地) 수입에 관한 기록이 첨가되어 있다.

수지부(收支簿)는 매년 동계의 결산기록으로 1940년부터 2002년까지 모두 6권이다. 내용은 연도별로 서문, 계원명단, 수입기, 지출기, 분급기 등의 항목으로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수지부에는 1940년 이래 ‘산(山) 제수용(祭需用)’이라 해서 산신제 지출과 관련된 비용을 매년 기록해 놓고 있어 산신제의 실제 운영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외 무성산 산신제와 관련해서는 1994년 특별히 산신제례회(山神祭禮會)를 결성하면서 작성한 「규약」과 계원들 개인 명의로 되어 있던 동계 부동산을 ‘부전대동계 산신제례회’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서」 등의 문건이 있다. 이상 부전대동계문서 일괄과 동계에서 소유하고 있던 동물(洞物) 일부는 2008년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기탁되어 보관 중에 있다.
내용‘공주부전대동계문서’는 400년 넘게 이어온 동계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자료이다. 현재 전하고 있는 부전동계의 문서로는『 동계좌목(洞稧座目)』, 『선안(仙案)』 등 동계좌목류 13권, 동계 소유의 [동물](/topic/동물)(洞物)에 관한 사항을 기록해 놓은 『부전동물유치책(浮田洞物留置冊)』 1권, 동계재산과 관련해서 송사(訟事)를 다룬 소지류 5점 등이다. 그 외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매년 동계 수지부(收支簿) 6권, 1994년 산신제례회의 구성과 관련한 회의록 및 결의서, 산신제와 관련한 산제문(山祭文)·천제문(川祭文), 동계 소유 부동산의 등기와 관련된 서류 등 40여 건 등이다.

동계좌목류 문서 중 가장 이른 자료는 1663년(현종 4)의 『동계좌목』이다. 크기는 가로 25.5㎝×세로 40㎝로 수록내용은 「동계중수서(洞契重修序)」와 「좌목(座目)」·「입약(立約)」·「입의(立義)」이다. 「좌목」에는 모두 23인(추입 7인)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고,「 입약(立約)」은 모두 10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행세칙으로 볼 수 있는 「입의(立義)」 27조가 첨부되어 있다. 부전동계는 1663년을 포함해서 조선 후기에 세 차례 중수(1663·1792·1839년)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다시 두 차례 중수(1914·1924년)되었다. 이와 관련된 문서로는 1792년의 『대동계 입의(大同稧 立議)』, 1839년의『 부전대동계 입의(浮田大同稧 立議)』, 1914년과 1924년의 『부전대동계 중수안(浮田大洞稧 重修案)』 등이 있다.

1792년 『대동계 입의』는 「동계중수서(洞稧重修序)」,「 입약(立約)」,「 벌목(罰目)」으로, 1839년『 부전대동계 입의』는 「우정부전대동계중수서(牛井浮田大洞稧重修序)」, 「입의(立議)」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시기에도 동계는 상하합계의 형태로 운영되었고 하민(下民)을 통제하기 위한 동계 보완의 필요성 등이 논의되고 있다. 두 계첩 모두에는 이전과는 달리 관의 답인(踏印)이 찍혀 있다. 그리고 1839년의『 부전대동계 입의』에는 부전동계문서 중 처음으로 산신제 [제관](/topic/제관)을 선정하는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

1914년의 『부전대동계 중수안』 「동계규칙 정정」에서는 “본계는 무성산 여제(厲祭)를 존숭(尊崇)하고 혼상제구(婚喪諸具)를 준비하여 일반계원이 사용하기로 한다”라고 해서 여제로 표현되는 산신제 거행이 동계의 목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이어 1924년의 『부전대동계 중수안』 「규칙」에는 산신제의 거행을 위해 “상여[고지](/topic/고지)기[大輿庫直]가 경작하는 사래답(私來畓) 3두락(斗落)을 산제답(山祭畓)으로 변경”하고, “산제답의 도조를 쌀 10두(斗)로 정해서 산제를 지낸다”는 등의 관련 조항을 두어 산신제 운영의 [기초](/topic/기초)를 마련하고 있다.

1839년에 작성된 『부전동물유치책(浮田洞物留置冊)』은 가로 27.2㎝×세로 40㎝이다. 혼구(婚具)와 상구(喪具) 등 부전동계에서 소유한 동물(洞物)의 종류와 구입 연도, 동물별 세전(貰錢)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말미에는 ‘각처도지결총기(各處賭地結摠記)’라 해서 [동답](/topic/동답)의 운영 및 도지(賭地) 수입에 관한 기록이 첨가되어 있다.

수지부(收支簿)는 매년 동계의 결산기록으로 1940년부터 2002년까지 모두 6권이다. 내용은 연도별로 서문, 계원명단, 수입기, 지출기, 분급기 등의 항목으로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수지부에는 1940년 이래 ‘산(山) 제수용(祭需用)’이라 해서 산신제 지출과 관련된 비용을 매년 기록해 놓고 있어 산신제의 실제 운영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외 무성산 산신제와 관련해서는 1994년 특별히 산신제례회(山神祭禮會)를 결성하면서 작성한 「규약」과 계원들 개인 명의로 되어 있던 동계 부동산을 ‘부전대동계 산신제례회’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서」 등의 문건이 있다. 이상 부전대동계문서 일괄과 동계에서 소유하고 있던 동물(洞物) 일부는 2008년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기탁되어 보관 중에 있다.
Donggyemunseo es el término que hace referencia a los registros guardados por la cooperativa de un pueblo llamada donggye en cuanto a la preparación y gestión de rituales comunitarios.

La donggye es una cooperativa formada para preparar la celebración de los festivales de los dioses tutelares del pueblo llamados dongje y su nombre puede alternarse por los de daedonggye o sanhyanggye. La cooperativa debe mantener todos los registros relacionadas con los rituales: los detalles sobre sacrificios ofrecidos incluyendo costos; la lista de oficiantes del ritual; y la lista de donantes. Los citados registros sirven como datos importantes que reflejan cómo gestionar una aldea y cómo llevar a cabo un ritual comunitario. Debido a que los dichos registros muestran los cambios en los objetos sacrificiales y en los costos correspondientes, ellos también sirven como importantes pistas para rastrear los cambios en la tradición relacionada con los rituales comunitarios a lo largo de los siglos.
Donggyemunseo are records kept by the village cooperative donggye regarding the preparation and management of communal rituals.

Donggye is a cooperative formed to prepare for the annual village tutelary festivals (dongje), and alternate terms include daedonggye (grand village cooperative) and sanhyanggye (mountain village cooperative). The cooperative must maintain all records related to the rituals: details about the sacrifices offered including costs; list of ritual officials; and list of donors. These records serve as important data that reflect how a village is managed and how a village ritual is staged. Since the records show the changes in sacrificial goods and in the costs involved, they also serve as important clues for tracking down the changes in the village ritual tradition over the centuries.
村庄共同祭仪相关文件。

村里的居民为举办洞祭而建立的组织称作“洞契”,又称大同契,山乡契,而筹办洞祭时,必须将相关内容记录下来,这便是洞契文书。洞契文书记录着每年举行洞祭所需要的祭品种类及费用,祭官名单,捐款人名单等。洞契文书十分完好地整理出关于村庄运营的内容以及洞祭本质性的内容,同时还记录有祭品种类及变化,日常生活物价的变动。因此,洞契文书是追踪一个村庄洞祭传承与变化的重要线索。
역사‘공주부전대동계문서’는 부전동에 정착한 양반 사족들이 주도하여 창립·운영한 일종의 향약(鄕約), 동약(洞約) 자료이다. 부전동은 공주의 무성산 남쪽 자락에서 금강에 이르는 20여 리의 긴 골짜기에 터전을 마련한 12개 [마을](/topic/마을)을 아우르던 명칭으로 ‘뜬밭’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행정구역상으로는 공주시 우성면의 한천리(韓川里)·내산리(內山里)·도천리(道川里)·신웅리(新熊里) 등이 포함된다. 부전동은 조선 전기부터 양반사족들이 거주하던 마을로 조선 후기에는 300여 호에 이르는 큰 마을을 형성하였다.

부전동계가 조직된 정확한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16세기부터 동계가 운영되고 있었다. 그것은 현전하는 가장 오랜 자료인 1663년의『 동계좌목(洞稧座目)』 『동계중수서(洞稧重修序)』에서 “임진왜란 이전에 동계를 실시하고 있었으나 난을 거치면서 시행하 지 못하고 있다”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에 부전동계를 창립한 주도 세력은 부전동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예안 김씨(禮安 金氏)를 주축으로 이들과 혼인관계로 맺어진 전주 이씨(全州 李氏)·강화 최씨(江華 崔氏)·충주 지씨(忠州池氏) 등이다. 이는 창설기 부전동계가 사족들의 향약계로 출발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동계좌목』을 보면, 당시 동계는 상층민과 하층민을 결합한 상하합계(上下合契)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임진왜란 이후 동계조직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피폐해진 향촌사회의 재건을 위해서 하민(下民)을 동계에 끌어들임으로써 하층민들의 일탈을 막고 협조를 구하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후대로 올수록 점차 강화되어 18세기에 이르면 사족들은 자신의 권위만으로는 하층민을 통제하지 못하고 관(官)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에 처하게 되며, 19세기에는 사족들의 향촌 지배책이라는 동계 본연의 성격과 위상은 더이상 그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약화되었다. 계원 구성원에 있어서도 18세기에 이르면 초창기에 동계를 주도했던 성씨들은 대부분 부전동을 떠나고 풍천 임씨(豊川 任氏)·평산 신씨(平山 申氏)·만경 노씨(萬頃 盧氏) 등이 주도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부전동계는 계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나 무성산산신제를 지속하기 위한 전통보존회 차원의 계모임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현재 부전동계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27일에 총회를 열어 산신제를 비롯해서 한 해의 대소사를 정리한다. 17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부전동계의 자료들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 지난날 향촌사회에서 동계의 성격과 위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Donggyemunseo es el término que hace referencia a los registros guardados por la cooperativa de un pueblo llamada donggye en cuanto a la preparación y gestión de rituales comunitarios.

La donggye es una cooperativa formada para preparar la celebración de los festivales de los dioses tutelares del pueblo llamados dongje y su nombre puede alternarse por los de daedonggye o sanhyanggye. La cooperativa debe mantener todos los registros relacionadas con los rituales: los detalles sobre sacrificios ofrecidos incluyendo costos; la lista de oficiantes del ritual; y la lista de donantes. Los citados registros sirven como datos importantes que reflejan cómo gestionar una aldea y cómo llevar a cabo un ritual comunitario. Debido a que los dichos registros muestran los cambios en los objetos sacrificiales y en los costos correspondientes, ellos también sirven como importantes pistas para rastrear los cambios en la tradición relacionada con los rituales comunitarios a lo largo de los siglos.
Donggyemunseo are records kept by the village cooperative donggye regarding the preparation and management of communal rituals.

Donggye is a cooperative formed to prepare for the annual village tutelary festivals (dongje), and alternate terms include daedonggye (grand village cooperative) and sanhyanggye (mountain village cooperative). The cooperative must maintain all records related to the rituals: details about the sacrifices offered including costs; list of ritual officials; and list of donors. These records serve as important data that reflect how a village is managed and how a village ritual is staged. Since the records show the changes in sacrificial goods and in the costs involved, they also serve as important clues for tracking down the changes in the village ritual tradition over the centuries.
村庄共同祭仪相关文件。

村里的居民为举办洞祭而建立的组织称作“洞契”,又称大同契,山乡契,而筹办洞祭时,必须将相关内容记录下来,这便是洞契文书。洞契文书记录着每年举行洞祭所需要的祭品种类及费用,祭官名单,捐款人名单等。洞契文书十分完好地整理出关于村庄运营的内容以及洞祭本质性的内容,同时还记录有祭品种类及变化,日常生活物价的变动。因此,洞契文书是追踪一个村庄洞祭传承与变化的重要线索。
역사‘공주부전대동계문서’는 부전동에 정착한 양반 사족들이 주도하여 창립·운영한 일종의 향약(鄕約), 동약(洞約) 자료이다. 부전동은 공주의 무성산 남쪽 자락에서 금강에 이르는 20여 리의 긴 골짜기에 터전을 마련한 12개 [마을](/topic/마을)을 아우르던 명칭으로 ‘뜬밭’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행정구역상으로는 공주시 우성면의 한천리(韓川里)·내산리(內山里)·도천리(道川里)·신웅리(新熊里) 등이 포함된다. 부전동은 조선 전기부터 양반사족들이 거주하던 마을로 조선 후기에는 300여 호에 이르는 큰 마을을 형성하였다.

부전동계가 조직된 정확한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16세기부터 동계가 운영되고 있었다. 그것은 현전하는 가장 오랜 자료인 1663년의『 동계좌목(洞稧座目)』 『동계중수서(洞稧重修序)』에서 “임진왜란 이전에 동계를 실시하고 있었으나 난을 거치면서 시행하 지 못하고 있다”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에 부전동계를 창립한 주도 세력은 부전동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예안 김씨(禮安 金氏)를 주축으로 이들과 혼인관계로 맺어진 전주 이씨(全州 李氏)·강화 최씨(江華 崔氏)·충주 지씨(忠州池氏) 등이다. 이는 창설기 부전동계가 사족들의 향약계로 출발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동계좌목』을 보면, 당시 동계는 상층민과 하층민을 결합한 상하합계(上下合契)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임진왜란 이후 동계조직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피폐해진 향촌사회의 재건을 위해서 하민(下民)을 동계에 끌어들임으로써 하층민들의 일탈을 막고 협조를 구하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후대로 올수록 점차 강화되어 18세기에 이르면 사족들은 자신의 권위만으로는 하층민을 통제하지 못하고 관(官)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에 처하게 되며, 19세기에는 사족들의 향촌 지배책이라는 동계 본연의 성격과 위상은 더이상 그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약화되었다. 계원 구성원에 있어서도 18세기에 이르면 초창기에 동계를 주도했던 성씨들은 대부분 부전동을 떠나고 풍천 임씨(豊川 任氏)·평산 신씨(平山 申氏)·만경 노씨(萬頃 盧氏) 등이 주도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부전동계는 계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나 무성산산신제를 지속하기 위한 전통보존회 차원의 계모임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현재 부전동계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27일에 총회를 열어 산신제를 비롯해서 한 해의 대소사를 정리한다. 17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부전동계의 자료들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 지난날 향촌사회에서 동계의 성격과 위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의‘공주부전대동계문서’는 충청 지역에서 확인된 동계자료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17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향촌사회의 운영과 실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사족들의 동계 조직이 상하합계를 거쳐 19세기 이후에는 산신제 조직으로 변화해 간 특별한 사례로도 주목된다.
참고문헌조선후기 동계조직과 촌락사회의 변화-공주 부전대동계(浮田大洞契)를 중심으로 (임선빈, 동방학지 80,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93)
무성산 산신제의 형성과 변천-부전동 대동계문서를 중심으로 (박종익, 한국민속학 49, 한국민속학회, 2009)
의의‘공주부전대동계문서’는 충청 지역에서 확인된 동계자료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17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향촌사회의 운영과 실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사족들의 동계 조직이 상하합계를 거쳐 19세기 이후에는 산신제 조직으로 변화해 간 특별한 사례로도 주목된다.
참고문헌조선후기 동계조직과 촌락사회의 변화-공주 부전대동계(浮田大洞契)를 중심으로 (임선빈, 동방학지 80,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93)
무성산 산신제의 형성과 변천-부전동 대동계문서를 중심으로 (박종익, 한국민속학 49, 한국민속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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