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2구 소라실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기해 올리는 장승제. [마을](/topic/마을)에서는 장승제를 흔히 ‘장승치기’라고 부른다. 1989년 12월 29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박영혁이 예능보[유자](/topic/유자)로 지정되어 있으며, 해마다 [백제문화제](/topic/백제문화제) 등에서 시연하고 있다. 또한 탄천중학교가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학생들을 중심으로 장승제를 전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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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안상경 |
정의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2구 소라실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기해 올리는 장승제. [마을](/topic/마을)에서는 장승제를 흔히 ‘장승치기’라고 부른다. 1989년 12월 29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박영혁이 예능보[유자](/topic/유자)로 지정되어 있으며, 해마다 [백제문화제](/topic/백제문화제) 등에서 시연하고 있다. 또한 탄천중학교가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학생들을 중심으로 장승제를 전수하고 있다. | 정의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2구 소라실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기해 올리는 장승제. [마을](/topic/마을)에서는 장승제를 흔히 ‘장승치기’라고 부른다. 1989년 12월 29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박영혁이 예능보[유자](/topic/유자)로 지정되어 있으며, 해마다 [백제문화제](/topic/백제문화제) 등에서 시연하고 있다. 또한 탄천중학교가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학생들을 중심으로 장승제를 전수하고 있다. | 내용 | 매봉산 기슭 송학리2구 소라실은 동편 [마을](/topic/마을)에 [사모](/topic/사모)를 쓴 ‘신랑장승’으로 동방천원축귀대[장군](/topic/장군)(東方天元逐鬼大將軍)과 삼태봉 아래에 자리한 서편 마을에 [비녀](/topic/비녀)를 꽂은 ‘신부장승’인 서방지하축귀여장군(西方地下逐鬼女將軍)을 만들어 모시고 있다. 최근에는 삼태봉 아래 삼거리에 나무로 세 짝의 장승을 만들어 세우기도 하였다. 오른쪽 짝은 명문(明文)으로 “선조대대 물려받은 우리장승 전통장승 대대손손 수호지신 우리민족 빛난문화 갈고닦고 보존하여 후손만대 물려주자 민속문화 장승문화 세계만방 자랑하세”라고 쓴 재앙축귀대장군(災殃逐鬼大將軍)과 “동리입구 홀로서서 동네안녕 하게하며 오고가는 행인차량 무사하게 통행하고 삼재팔난 액운질병 속거철리 하게하며 국태민안 시화연풍 소원성취 만복일세”라고 쓴 질병축귀여장군(疾病逐鬼女將軍)이다. 가운데 짝은 동방천하축귀대장군(東方天下逐鬼大將軍)과 서방지하축귀여장군(西方地下逐鬼女將軍)이며, 왼쪽 짝은 천하축귀대장군(天下逐鬼大將軍)과 지하축귀여장군(地下逐鬼女將軍)이다. 마을 사람들은 장승제를 흔히 ‘장승치기’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이칭(異稱)을 통해 소라실 장승제가 마을공동체 의식이자 마을공동체 놀이로 인식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승치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제관](/topic/제관) 선출 음력 정월 초나흗날에, ‘책력 볼 줄 아는 사람’이 제관, 축관, 유사를 한 명씩 선출한다. 제관과 축관은 몸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행동을 삼가야 하며, 혹시 상처가 났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말아야 하는 등 지켜야 할 금기가 많다. 2. 걸립 제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풍물패가 걸립을 한다. 이때 [농기](/topic/농기)를 앞세운다. 농기에는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고 적혀 있다. 각 가정에서는 [마당](/topic/마당)에 상을 차리고, 쌀을 됫박에 담아 놓아 둔다. 풍물패는 상앞에서 풍장을 울린 다음 샘(또는 마당의 수돗가), [부엌](/topic/부엌), [장독대](/topic/장독대) 등 순으로 지신을 밟는다. 3. 제물구입 장승치기 전날에 마을 장정들이 제물을 장만한다. 삼색실과·포·소지종이 등은 장에서 구입하며, 떡과 메는 집에서 준비한다. 4. 샘[[우물](/topic/우물)]굿 장승치기 전날 이른 아침에 유사는 장승과 샘 주변을 정비한다. 저녁 무렵에는 풍물패가 풍장을 치며 샘으로 나아가 우물굿을 한다. 풍물패는 먼저 바[가지](/topic/가지)에 쌀을 넣고 그 위에 초를 꽂고 불을 붙여 우물에 띄운다. [상쇠](/topic/상쇠)는 그 앞에서 “뚫으쇼! 뚫으쇼! 물구녕만 뚫으쇼! 칠년대한(七年大旱) 가뭄에 물구녕만뚫으쇼!”라고 축언한다. 이후 풍물패가 가가호호(家家戶戶)를 돌며 지신을 밟는다. 각 가정에서는 풍물패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5. 나무 베기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오전에 풍물패는 유사집 앞에 세워둔 기를 앞세우고 산으로 오른다. 산에서 방향을 보아 길한 쪽의 나무를 고른다. 이때 가지와 옹이가 비교적 적고 반듯한 나무를 택해 벌목한다. 나무를 베기 전에 그 앞에서 간단하게 술과 북어를 제물 삼아 제를 올린다. 제를 올린 뒤 톱과 낫으로 벤다. 6. 장승과 오릿대 깎기 베어 온 나무를 장승 크기로 자른 다음 껍질을 벗긴다. 겉껍질은 도끼로 벗기고, 속껍질은 낫으로 벗긴다. 껍질을 벗긴 나무에 톱으로 눈, 코, 입 등 얼굴의 윤곽을 그어 표시한다. 동편 마을의 장승에는 ‘동방천원축귀대장군’, 서편 마을의 장승에는 ‘서방지하축귀대장군’을 각각 써 넣는다. 오릿대는 긴 장대에 오리 모양을 만들어 끼우고, 입에는 붕어 모양을 만들어 끼운다. 오릿대 만들 나무는 장승에 비해 가늘고 긴 것으로 선정한다. 7. 장승과 오릿대 세우기 모든 준비가 끝나면 장승을 세우기 위해 깃대가 앞장서고그 뒤로 장승, 풍물패, 마을 사람들이 따라 간다. 풍장을 치면서 장승배기에 도착하면 붉은 흙을 장승 앞에 펴고 나서 장승과 오릿대를 세운다. 동편 마을 장승은 서편 마을 장승을 바라보도록 세우고, 서편 마을 장승은 동편 마을 장승을 바라보도록 세운다. 장승을 세울 공간이 마땅치 않으면 묵은 장승을 뽑아 그 자리에 새 장승을 모신다. 뽑아낸 장승은 태운다. 8. 기합례(旗合禮) 장승을 세우면 곧이어 동·서편 깃대를 가져다가 동편 마을의 큰 마당에서 기합례를 행한다. 절차는 전통혼례식과 동일하다. 두 마을의 기가 혼례를 치르는 것이다. 동·서편 마을의 화합을 목적으로 한다. 9. 장승치기 제관 일행이 제를 올린다. 예전에는 제만 올렸지만 요즘에는 ‘기합례’와 동일한 방식으로 장승간에 [혼례식](/topic/혼례식)을 치른다. 10. 홰싸움 장승치기를 마친 다음 추위를 달래기 위해 놓아 둔 화톳불을 횃불에 옮겨 붙인다. 가장 먼저‘장수홰’에 불을 댕기고, 작은 횃불에도 각기 불을 댕겨 마을로 향한다. 장수홰가 앞서고 뒤에 작은 홰들이 따른다. 불이 활활 오래 타야 마을이 좋다고 여기기 때문에 홰를 만들 때부터 신경을 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홰를 든다. 11. 합굿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각기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서 각 마을의 유사집에 모여 간단히 [음복](/topic/음복)하고 휴식을 취한다. 얼마 후 서편 마을 사람들이 동편 마을로 가서 함께 풍장을 친다. 이를 ‘합굿’이라고 한다. 이후 각 마을에서 따로 잔치를 벌인다. 예전에는 구경꾼이 많아 방방마다 손님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어른들은 방에서 상을 받았고, 젊은 사람들은 마당에서 상을 받았다고 한다. 동·서편 사람들이 양편 마을을 오가며 음식과 술을 얻어먹으며 밤이 저물도록 논다. 12. 마을회의 이튿날 오전에 제사 경비를 결산한다. 전날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놀았기 때문에 점심시간 즈음에나 마을회의를 한다. 동·서편 마을 사람들이 각기 한자리에 모여 결산을 본 다음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한다. 이후 음복하고 [윷놀이](/topic/윷놀이) 등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소라실 장승제는 독자적인 성향이 강하다. 각기 다른 마을로 여겨지던 동편과 서편 마을이 장승제를 통해 하나가 된다. 두 마을은 사실 경제적 차원에서나 종교적 차원에서 개별적인 마을로 기능하고 있다. 장승치기의 준비, 제반 절차 등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제비의 마련과 집행이 독립적으로 운용된다는 것은 이러한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두 마을은 장승제를 지내는 그 순간에 하나로 융합된다. 물론 장승제가 각기 진행된다는 점에서 두 마을은 여전히 별개 마을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두 마을이 장승제와 관련된 일부 행사를 함께 행한다는 점에서는 하나의 장승제 안에 개별적인 두 개의 장승제가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마을이 어귀에 남녀 한 쌍의 내외신을 모시는 경우에 비하면, 소라실은 두 마을이 각기 남녀 장승을 따로 모시고, 이들을 하나의 내외신으로 관념하여 장승제를 치르는 것이다. 한편 소라실 장승제는 마을의 안녕과 번영이라는 기본적인 목적 이외에도 ‘[화재막이](/topic/화재막이)’라는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의도도 전제되어 있다. 괘등혈(掛燈穴, 등잔대에 [호롱](/topic/호롱)불을 올려놓는 것과 같은 형상)인 마을 앞산의 화기(火氣)를 막는다는 구비전승과 함께 홰싸움 때 각 가정에서 [지붕](/topic/지붕) [처마](/topic/처마) 위로 물을 끼얹는 풍습은 장승제가 지닌 ‘화재막이’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 내용 | 매봉산 기슭 송학리2구 소라실은 동편 [마을](/topic/마을)에 [사모](/topic/사모)를 쓴 ‘신랑장승’으로 동방천원축귀대[장군](/topic/장군)(東方天元逐鬼大將軍)과 삼태봉 아래에 자리한 서편 마을에 [비녀](/topic/비녀)를 꽂은 ‘신부장승’인 서방지하축귀여장군(西方地下逐鬼女將軍)을 만들어 모시고 있다. 최근에는 삼태봉 아래 삼거리에 나무로 세 짝의 장승을 만들어 세우기도 하였다. 오른쪽 짝은 명문(明文)으로 “선조대대 물려받은 우리장승 전통장승 대대손손 수호지신 우리민족 빛난문화 갈고닦고 보존하여 후손만대 물려주자 민속문화 장승문화 세계만방 자랑하세”라고 쓴 재앙축귀대장군(災殃逐鬼大將軍)과 “동리입구 홀로서서 동네안녕 하게하며 오고가는 행인차량 무사하게 통행하고 삼재팔난 액운질병 속거철리 하게하며 국태민안 시화연풍 소원성취 만복일세”라고 쓴 질병축귀여장군(疾病逐鬼女將軍)이다. 가운데 짝은 동방천하축귀대장군(東方天下逐鬼大將軍)과 서방지하축귀여장군(西方地下逐鬼女將軍)이며, 왼쪽 짝은 천하축귀대장군(天下逐鬼大將軍)과 지하축귀여장군(地下逐鬼女將軍)이다. 마을 사람들은 장승제를 흔히 ‘장승치기’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이칭(異稱)을 통해 소라실 장승제가 마을공동체 의식이자 마을공동체 놀이로 인식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승치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제관](/topic/제관) 선출 음력 정월 초나흗날에, ‘책력 볼 줄 아는 사람’이 제관, 축관, 유사를 한 명씩 선출한다. 제관과 축관은 몸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행동을 삼가야 하며, 혹시 상처가 났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말아야 하는 등 지켜야 할 금기가 많다. 2. 걸립 제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풍물패가 걸립을 한다. 이때 [농기](/topic/농기)를 앞세운다. 농기에는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고 적혀 있다. 각 가정에서는 [마당](/topic/마당)에 상을 차리고, 쌀을 됫박에 담아 놓아 둔다. 풍물패는 상앞에서 풍장을 울린 다음 샘(또는 마당의 수돗가), [부엌](/topic/부엌), [장독대](/topic/장독대) 등 순으로 지신을 밟는다. 3. 제물구입 장승치기 전날에 마을 장정들이 제물을 장만한다. 삼색실과·포·소지종이 등은 장에서 구입하며, 떡과 메는 집에서 준비한다. 4. 샘[[우물](/topic/우물)]굿 장승치기 전날 이른 아침에 유사는 장승과 샘 주변을 정비한다. 저녁 무렵에는 풍물패가 풍장을 치며 샘으로 나아가 우물굿을 한다. 풍물패는 먼저 바[가지](/topic/가지)에 쌀을 넣고 그 위에 초를 꽂고 불을 붙여 우물에 띄운다. [상쇠](/topic/상쇠)는 그 앞에서 “뚫으쇼! 뚫으쇼! 물구녕만 뚫으쇼! 칠년대한(七年大旱) 가뭄에 물구녕만뚫으쇼!”라고 축언한다. 이후 풍물패가 가가호호(家家戶戶)를 돌며 지신을 밟는다. 각 가정에서는 풍물패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5. 나무 베기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오전에 풍물패는 유사집 앞에 세워둔 기를 앞세우고 산으로 오른다. 산에서 방향을 보아 길한 쪽의 나무를 고른다. 이때 가지와 옹이가 비교적 적고 반듯한 나무를 택해 벌목한다. 나무를 베기 전에 그 앞에서 간단하게 술과 북어를 제물 삼아 제를 올린다. 제를 올린 뒤 톱과 낫으로 벤다. 6. 장승과 오릿대 깎기 베어 온 나무를 장승 크기로 자른 다음 껍질을 벗긴다. 겉껍질은 도끼로 벗기고, 속껍질은 낫으로 벗긴다. 껍질을 벗긴 나무에 톱으로 눈, 코, 입 등 얼굴의 윤곽을 그어 표시한다. 동편 마을의 장승에는 ‘동방천원축귀대장군’, 서편 마을의 장승에는 ‘서방지하축귀대장군’을 각각 써 넣는다. 오릿대는 긴 장대에 오리 모양을 만들어 끼우고, 입에는 붕어 모양을 만들어 끼운다. 오릿대 만들 나무는 장승에 비해 가늘고 긴 것으로 선정한다. 7. 장승과 오릿대 세우기 모든 준비가 끝나면 장승을 세우기 위해 깃대가 앞장서고그 뒤로 장승, 풍물패, 마을 사람들이 따라 간다. 풍장을 치면서 장승배기에 도착하면 붉은 흙을 장승 앞에 펴고 나서 장승과 오릿대를 세운다. 동편 마을 장승은 서편 마을 장승을 바라보도록 세우고, 서편 마을 장승은 동편 마을 장승을 바라보도록 세운다. 장승을 세울 공간이 마땅치 않으면 묵은 장승을 뽑아 그 자리에 새 장승을 모신다. 뽑아낸 장승은 태운다. 8. 기합례(旗合禮) 장승을 세우면 곧이어 동·서편 깃대를 가져다가 동편 마을의 큰 마당에서 기합례를 행한다. 절차는 전통혼례식과 동일하다. 두 마을의 기가 혼례를 치르는 것이다. 동·서편 마을의 화합을 목적으로 한다. 9. 장승치기 제관 일행이 제를 올린다. 예전에는 제만 올렸지만 요즘에는 ‘기합례’와 동일한 방식으로 장승간에 [혼례식](/topic/혼례식)을 치른다. 10. 홰싸움 장승치기를 마친 다음 추위를 달래기 위해 놓아 둔 화톳불을 횃불에 옮겨 붙인다. 가장 먼저‘장수홰’에 불을 댕기고, 작은 횃불에도 각기 불을 댕겨 마을로 향한다. 장수홰가 앞서고 뒤에 작은 홰들이 따른다. 불이 활활 오래 타야 마을이 좋다고 여기기 때문에 홰를 만들 때부터 신경을 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홰를 든다. 11. 합굿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각기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서 각 마을의 유사집에 모여 간단히 [음복](/topic/음복)하고 휴식을 취한다. 얼마 후 서편 마을 사람들이 동편 마을로 가서 함께 풍장을 친다. 이를 ‘합굿’이라고 한다. 이후 각 마을에서 따로 잔치를 벌인다. 예전에는 구경꾼이 많아 방방마다 손님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어른들은 방에서 상을 받았고, 젊은 사람들은 마당에서 상을 받았다고 한다. 동·서편 사람들이 양편 마을을 오가며 음식과 술을 얻어먹으며 밤이 저물도록 논다. 12. 마을회의 이튿날 오전에 제사 경비를 결산한다. 전날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놀았기 때문에 점심시간 즈음에나 마을회의를 한다. 동·서편 마을 사람들이 각기 한자리에 모여 결산을 본 다음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한다. 이후 음복하고 [윷놀이](/topic/윷놀이) 등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소라실 장승제는 독자적인 성향이 강하다. 각기 다른 마을로 여겨지던 동편과 서편 마을이 장승제를 통해 하나가 된다. 두 마을은 사실 경제적 차원에서나 종교적 차원에서 개별적인 마을로 기능하고 있다. 장승치기의 준비, 제반 절차 등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제비의 마련과 집행이 독립적으로 운용된다는 것은 이러한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두 마을은 장승제를 지내는 그 순간에 하나로 융합된다. 물론 장승제가 각기 진행된다는 점에서 두 마을은 여전히 별개 마을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두 마을이 장승제와 관련된 일부 행사를 함께 행한다는 점에서는 하나의 장승제 안에 개별적인 두 개의 장승제가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마을이 어귀에 남녀 한 쌍의 내외신을 모시는 경우에 비하면, 소라실은 두 마을이 각기 남녀 장승을 따로 모시고, 이들을 하나의 내외신으로 관념하여 장승제를 치르는 것이다. 한편 소라실 장승제는 마을의 안녕과 번영이라는 기본적인 목적 이외에도 ‘[화재막이](/topic/화재막이)’라는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의도도 전제되어 있다. 괘등혈(掛燈穴, 등잔대에 [호롱](/topic/호롱)불을 올려놓는 것과 같은 형상)인 마을 앞산의 화기(火氣)를 막는다는 구비전승과 함께 홰싸움 때 각 가정에서 [지붕](/topic/지붕) [처마](/topic/처마) 위로 물을 끼얹는 풍습은 장승제가 지닌 ‘화재막이’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 역사 |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2구 소라실 장승제의 연원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축문](/topic/축문)에 “환송곡이존거혜공칠성이영창(環松谷而尊居兮 共七姓而永昌)”이란 구절에서 ‘송곡(松谷)’이란 지명과 ‘칠성(七姓)’을 통해 연원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송학(松鶴)’이란 행정명은 1914년부터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송곡’은 그 이전의 지명이다. 송곡이란 지명의 문헌상 기록은 『여지도서(輿地圖書)』(1759)에서 출현하기 시작하여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1776∼1800),『 공산지(公山誌)』(1861)로 내려오면서 반탄면(半灘面)에 속한 지역으로 나온다. 그런데『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동부면(東部面)에 포함된 지역으로 되어 있다. 칠성(七姓)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에 토성(土姓)으로 이(李), 정(鄭), 송(宋), 박(朴), 황(黃). 고(高), 임(任) 등이 있다고 전한다.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 충청도읍지』,『 공산지』 등에서 칠성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기록을 종합하면 이들 송곡이란 지명과 칠성의 늦어도 조선시대 전기 세종 대 이후까지 소급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2구 소라실 장승제는 조선 전기까지 소급해 볼수도 있다. | 역사 |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2구 소라실 장승제의 연원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축문](/topic/축문)에 “환송곡이존거혜공칠성이영창(環松谷而尊居兮 共七姓而永昌)”이란 구절에서 ‘송곡(松谷)’이란 지명과 ‘칠성(七姓)’을 통해 연원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송학(松鶴)’이란 행정명은 1914년부터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송곡’은 그 이전의 지명이다. 송곡이란 지명의 문헌상 기록은 『여지도서(輿地圖書)』(1759)에서 출현하기 시작하여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1776∼1800),『 공산지(公山誌)』(1861)로 내려오면서 반탄면(半灘面)에 속한 지역으로 나온다. 그런데『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동부면(東部面)에 포함된 지역으로 되어 있다. 칠성(七姓)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에 토성(土姓)으로 이(李), 정(鄭), 송(宋), 박(朴), 황(黃). 고(高), 임(任) 등이 있다고 전한다.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 충청도읍지』,『 공산지』 등에서 칠성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기록을 종합하면 이들 송곡이란 지명과 칠성의 늦어도 조선시대 전기 세종 대 이후까지 소급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2구 소라실 장승제는 조선 전기까지 소급해 볼수도 있다. | 지역사례 | 이 밖에도 ‘탄천면 대학리 장승제’, ‘탄천면 송학리 [거리제](/topic/거리제)’, ‘반포면 공암리 할미탑제’, ‘반포면 상신리·하신리 거리제’ 등이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기해 전승되고 있다. 이들 전승 양상을 살펴보면 충남의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topic/가지)로 장승이 대부분 [마을](/topic/마을)의 하당신(下堂神)으로 모셔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전통적인 신앙이 지속되는 마을에서는 상당제(上堂祭)로 산신제를 올린 뒤 장승제를 올리지만 산신제 없이 장승제만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나무장승이 돌장승으로 변모하거나 소멸되는변화를 겪고 있지만 이들 지역에서 장승은 여전히 중요한 마을의 신앙 대상물로 기능하고 있다. 장승제는 산신제와 더불어 마을신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하당제로 장승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수나무, [수구맥이](/topic/수구맥이)(선돌), 탑([돌탑](/topic/돌탑)) 등도 하당신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장승은 대표적인 하당신으로 존재한다. 마을 어귀에 장승이 다른 신앙 대상물과 함께 있지 않고 홀로 모셔지기도 하지만 대개 그 옆에 짐대를 세워 놓는다. 일반적으로 ‘솟대’라고 불리는 짐대는 나무로 깎아 만든 오리를 장대에 앉혀서 역시 마을의 하당신으로 위하는 중요한 신앙 대상물이다. 그러나 공주시에서는 짐대가 지닌 독립적인 의미와 역할이 분명하지 않고, 지금은 장승에 비하여 부수적이며 보조적인 신앙 대상물로 여겨지고 있다. 장승과 짐대가 함께 모셔지는 경우 장승은 짐대에 비하여 주신(主神)으로 관념되어 모셔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 충남지방 장승·솟대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91) 공주의 문화유적 (공주대학교박물관, 충청남도, 1995) 공주지방의 민속신앙 (공주문화원, 1995) 소라실장승제 (공주문화원, 1998) | 지역사례 | 이 밖에도 ‘탄천면 대학리 장승제’, ‘탄천면 송학리 [거리제](/topic/거리제)’, ‘반포면 공암리 할미탑제’, ‘반포면 상신리·하신리 거리제’ 등이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기해 전승되고 있다. 이들 전승 양상을 살펴보면 충남의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topic/가지)로 장승이 대부분 [마을](/topic/마을)의 하당신(下堂神)으로 모셔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전통적인 신앙이 지속되는 마을에서는 상당제(上堂祭)로 산신제를 올린 뒤 장승제를 올리지만 산신제 없이 장승제만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나무장승이 돌장승으로 변모하거나 소멸되는변화를 겪고 있지만 이들 지역에서 장승은 여전히 중요한 마을의 신앙 대상물로 기능하고 있다. 장승제는 산신제와 더불어 마을신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하당제로 장승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수나무, [수구맥이](/topic/수구맥이)(선돌), 탑([돌탑](/topic/돌탑)) 등도 하당신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장승은 대표적인 하당신으로 존재한다. 마을 어귀에 장승이 다른 신앙 대상물과 함께 있지 않고 홀로 모셔지기도 하지만 대개 그 옆에 짐대를 세워 놓는다. 일반적으로 ‘솟대’라고 불리는 짐대는 나무로 깎아 만든 오리를 장대에 앉혀서 역시 마을의 하당신으로 위하는 중요한 신앙 대상물이다. 그러나 공주시에서는 짐대가 지닌 독립적인 의미와 역할이 분명하지 않고, 지금은 장승에 비하여 부수적이며 보조적인 신앙 대상물로 여겨지고 있다. 장승과 짐대가 함께 모셔지는 경우 장승은 짐대에 비하여 주신(主神)으로 관념되어 모셔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 충남지방 장승·솟대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91) 공주의 문화유적 (공주대학교박물관, 충청남도, 1995) 공주지방의 민속신앙 (공주문화원, 1995) 소라실장승제 (공주문화원,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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