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의 [장군](/topic/장군)이자 민간과 무속에서 신앙되는 장군신의 하나. 본관은 김해이며, 가야국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 손이다. 아버지는 김서현(金舒玄), 어머니는 갈문왕 입종(立宗)의 손녀 만명(萬明)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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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오세길 |
정의 |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의 [장군](/topic/장군)이자 민간과 무속에서 신앙되는 장군신의 하나. 본관은 김해이며, 가야국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 손이다. 아버지는 김서현(金舒玄), 어머니는 갈문왕 입종(立宗)의 손녀 만명(萬明)이다. | 내용 | 김유신(595~673)은 민간과 무속신앙에서 [장군](/topic/장군)신의 하나로 신앙되고 있다. 주로 [마을](/topic/마을)을 수호하는 산신(山神) 또는 마을신으로 받들어진다. 강원도 강릉시, 충청북도 진천군, 경상북도 군위군, 서울시 용산구 일대가 대표적인 신앙 전승지이다. 마을의 평안과 풍농•풍어를 위해 거행되는 강릉단오제의 경우 주신은 [서낭신](/topic/서낭신)인 [범일국사](/topic/범일국사)신(梵日國師神)이지만 김유신 장군 역시 대관령을 관장하는 산신으로 모셔진다. 또 강릉 시내에 위치한 김유신 장군을 모신 [사당](/topic/사당)인 화부산사(花浮山祠)에서는 매년 오월 단오 때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한편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topic/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명주(溟州, 지금의 강릉) 사람들이 장차 5월의 길일에 신라대장군 김유신 대령신(大嶺神, 대관령 산신)을 맞으러 간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같은 책에서 “경상도 군위현에 김유신신사(金庾信神祠)가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어머니 만명(萬明)을 모시고 있으며, 무녀들이 그 만명을 섬기는데 신당에는 반드시 명도(明圖)라는 구리거울을 걸어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현재 무속에서 ‘말명(대신)’으로 신앙되는 김유신의 어머니도 일찍이 신격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단오조에서도 “군위군 효령(孝靈) 서악(西岳)에 김유신사당이 있는데 속칭 삼장군당(三將軍堂)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현재에도 경북 군위 지역의 무속인 대부분이 김유신을 팔공산 산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 밖에 김유신의 태(胎)가 묻힌 곳으로 알려진 충북 진천군 길상산(吉祥山)은 고려 때 태령산(胎靈山)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 이래로 김유신사(金庾信祠)를 세워 통일신라ㆍ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봄ㆍ가을로 치제하였다고 한다. 또 서울 용산구 보광동과 주성동 등지의 김유신장군당에서는 마을의 태평을 기원하며 당굿을 거행하고 있다. 이처럼 신격화된 김유신에 대한 [일화](/topic/일화)는 문헌기록과 구비전승을 통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그의 일대기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 실려 있고,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제2 김유신조(金庾信條)에도 그의 행적에 관한 단편적인 일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또 『[파한집](/topic/파한집)(破閑集)』, 『동경잡기(東京雜記)』, 『[동국여지승람](/topic/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에도 그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특히 민간신앙의 주체인 민중의 구비전승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신격화되어 나타난다. 이들을 토대로 한 영웅의 일대기에 따라 김유신의 일생을 재구성하여 대표적인 [삽화](/topic/삽화)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고귀한 혈통을 지니고 신이한 탄생을 하다 : 김유신은 가야국의 시조 수로왕의 12대손이며, 칠요(북두칠성)의 정기를 타고났고, 태기가 있은 지 20개월 만에 출생하였다. 2. 신이한 능력을 획득하다 : 김유신이 어렸을 때 건천읍(乾川邑)의 남쪽 끝에 있는 단석산(斷石山) 바위 안에서 10년을 공부하기 위해 갔다. 10년을 마치고 나오는 날 밤 꿈에 단석산 산신령이 나타나 “이 칼은 네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인다”고 하였다. 김유신이 칼을 [가지](/topic/가지)고 나오면서 천탑바위[千塔岩]를 보고, 신검으로 겨누니 바위가 절로 갈라졌다. 3.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다 : 신라 군사가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있었다. 김유신이 단을 쌓고 신술을 쓰자 갑자기 큰 독만한 광채가 단(壇) 위에서 나오는데 별이 북쪽으로 날아갔다. 적군은 모두 땅에 자빠졌다가 한참만에야 깨어나서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또 소정방(蘇定方, 595~667)의 군대가 부여를 건너오는데 강에 있는 용이 풍파를 일으켜 소정방이 넘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김유신이 금고리에 백마를 꿰어 용을 낚자 소정방이 건너올 수 있었다. 4. 산신이 되어 나라를 지키다 : 신라 김유신 장군은 어렸을 때 명주(溟州)에서 유학하며 대관령 산신에게 검술을 배웠다. 그는 사후에 대관령의 산신이 되어 이 지방을 보호해 주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대관령과 송정의 모든 소나무를 군사로 보이게 하여 왜군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김유신은 출생이 천계(天界)와 연결되어 있고, 증거로 몸에는 북두칠성을 닮은 7개의 점을 지니고 있다. 수련의 과정을 거쳐 행적에 이르기까지 그의 탄생과 결부된 신이한 요소는 줄곧 나타나며 죽어서는 대관령의 산신으로 좌정된다. 이처럼 김유신의 출생에서부터 비롯된 그의 신이성은 그가 사후에 다시 천(天)의 세계인 산신으로 복귀함으로써 더욱 강화되고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순환적 서사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순환적 서사구조로 말미암아 김유신은 죽은 뒤에도 왜군을 물리치는 등의 이적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그가 민중의 의식 속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장군은 대개 국가적 위기인 전란의 시기에 활동하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전란을 겪고 있는 민중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구원해 주는 대상으로 장군을 평가하고 받아들인다. 곧 장군은 한 시대에 있어 민중이 바라는 영웅의 표상이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이후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주체성을 지켜낸 김유신 장군은 한국영웅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하여 신격화되어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 참고문헌 | 동신당 (김태곤, 민속원, 1999) 한국무속의 신관에 대한 연구 (이용범,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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