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팔현마을산신당

한국무속신앙사전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1리 원팔현[마을](/topic/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산신당으로, 마을 원주민들이 위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신앙의 제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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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1리 원팔현[마을](/topic/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산신당으로, 마을 원주민들이 위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신앙의 제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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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정의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1리 원팔현[마을](/topic/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산신당으로, 마을 원주민들이 위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신앙의 제의 장소.
정의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1리 원팔현[마을](/topic/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산신당으로, 마을 원주민들이 위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신앙의 제의 장소.
내용팔현1리는 오남읍에서 정서쪽으로 10㎞ 정도 떨어진 산촌[마을](/topic/마을)이다. 왕숙천 원수원이 흐르고 있는 천마산의 높은 산자락과 계곡 사이에 산개한 가옥들이 자리 잡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농업](/topic/농업)에 종사하지만 빼어난 경치 덕분에 요즈음은 음식가게와 민박집, [전원주택](/topic/전원주택) 등이 많이 늘어났다. 현재도 이곳저곳에 택지 개발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팔현리에는현재 35가구 정도 살고 있으나 택지 개발이 완료되면 많은 사람이 정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산신당은 2008~2009년 2년 사이에 새롭게 [단청](/topic/단청)을 입히고 수리를 하였으며, [담장](/topic/담장)과 문도 보수하였다.

이 마을에서는 산신당에서 지내는 제의를 ‘산신제’, 당집이 있는 곳을 ‘산제당터’라고 한다. 제일은 매년 음력 팔월 초에서 시월 초 사이에 택일하며, 제의일시 최종 확정은 가까운 절에 가서 스님에게 물어 본다. 가능하면 월 초로 날을 잡으며, 제사 당일 해질 무렵 산에 올라가 준비하고 밤 9시쯤에 제를 지낸다.

팔현리에는 당을 관리하는 당주가 별도로 있어서 당주가 제의 사흘 정도를 앞두고 동네 사람들 가운데 생기와 복덕을 가려 [제관](/topic/제관) 한 명, [화주](/topic/화주) 한 명을 임의로 선출한다. 제관과 화주가 되면 그날부터 비린 음식을 먹지 않고, 부부 동침도 삼간다. 예전에는 [솔[가지](/topic/가지)](/topic/솔가지)를 끼운 [금줄](/topic/금줄)을 [대문](/topic/대문)에 걸어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고, 본인도 바깥출입을 자제하는 등 금기를 지켰다. 이 밖에도 당주와 제관은 당집 주변을 정리하고 깨끗이 청소한다.

제사에 쓰는 제물은 제관과 화주가 함께 장만한다. 중요한 제물인 쇠고기는 주로 장현에 있는 도살장에 미리 연락하여 좋은 물건을 확보한다. 예전에는 소 한마리를 통째 구입하여 산신당 옆에서 직접 잡아 제물로 올렸으나 요즘에는 쇠머리, 앞다리, 뒷다리를 구입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선지도 한 말 구입하여 [음복](/topic/음복) 때 안주로 한다. 이 밖의 제물과 제사에 필요한 물건은 예전에는 직접 장에 나가 구입했으나 요즈음에는 전화로 주문하여 배달시켜 받는다. [대추](/topic/대추)·밤·곶감을 삼색과일로 장만하고 소지용 종이와 초·향 등은 배달시킨다. 그러나 [시루떡](/topic/시루떡)은 화주 집에서 직접 찐다. 이 마을의 경우 시루떡을 찔 때 절대 소금 간을 하지 않는다는 금기가 있다. 진메 역시 화주 집에서 장만한다. 그 전에는 제의 장소인 당집 옆에서 불을 지펴 밥을 직접 지었다. 이 마을의 경우 제주(祭酒) 대신 당집 옆 [우물](/topic/우물)터에서 뜬 [정화수](/topic/정화수)를 올린다. 제의 준비가 모두 끝나면 당주, 제관, 화주는 의관을 정제하고 산신당으로 향한다. 이때가 저녁 8시쯤이 된다. 이 밖에 마을 사람들 중 심신이 깨끗한 사람들도 함께 산에 올라 당주와 제관이 제의를 행하는 동안 우물터에서 솥을 걸고 들고 온 선지와 각종 야채를 넣은 국을 끓이면서 제의가 끝날 때를 기다린다.

제물은 일반 그릇에 담아 진설한다. 원래 팔현리에는 대대로 물려받은 유기제기와 목제기가 있었으나 몇 년 전에 모두 도난당하고 지금은 스테인리스 그릇을 제기로 사용하고 있다. 제물은 당 안에 붙박이로 설치된 제단 위에 차린다. 앞쪽으로 대추, 껍질 벗긴 밤, 곶감을 놓고 가운데에 정화수를 올린다. 맨 뒤쪽 가운데에다 [채반](/topic/채반)에 담은 쇠머리를 올리고, 그 앞줄에 소 앞다리와 뒷다리를 진설한다. 팥시루떡은 [제상](/topic/제상) 제일 오른쪽에 두고, 양쪽에 촛불을 밝힌다. 진설이 끝나면 당주가 강신 재배를 하고 이어 축을 읽는다. [축문](/topic/축문)이끝나면 제관과 이장이 재배하고 마지막으로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마을 가가호호의 소원을 말하면서 당주가 올린다. 소지 내용은 주로 ‘가내안녕과 무탈’에 대한 기원이며, 각기 개인의 소원을 비는 소지를 올리면 모든 제의가 끝난다. [철상](/topic/철상) 한 뒤에는 고기와 삼색실과 등을 조금 나누어 당집 담장 위에 올려둔다. 음복은 제의가 진행되는 동안 끓인 선짓국으로 한다. 제상에 올린 쇠머리와 쇠다리도 이때 선짓국 솥에 넣어 삶아 꼬치로 만들어 동네 어른들 댁에 일일이 돌린다. 늦은 시간까지 음복하며 [덕담](/topic/덕담)을 나눈다.

이 마을에는 ‘선후회’라는 친목계가 활성화되어 있어 동네의 대소사와 산신제까지 모두 주도적으로 맡아 하고 있다. 산신제 비용의 경우 선후회에서 집집마다 갹출하고, 각 단체나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후원금도 추렴하는 등 경비를 마련하고 있다.
참고문헌남양주시지 3 (남양주시지편찬위원회, 2000)
경기도의 [마을](/topic/마을)신앙과 제당 (김지욱, 전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회, 2002)
내용팔현1리는 오남읍에서 정서쪽으로 10㎞ 정도 떨어진 산촌[마을](/topic/마을)이다. 왕숙천 원수원이 흐르고 있는 천마산의 높은 산자락과 계곡 사이에 산개한 가옥들이 자리 잡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농업](/topic/농업)에 종사하지만 빼어난 경치 덕분에 요즈음은 음식가게와 민박집, [전원주택](/topic/전원주택) 등이 많이 늘어났다. 현재도 이곳저곳에 택지 개발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팔현리에는현재 35가구 정도 살고 있으나 택지 개발이 완료되면 많은 사람이 정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산신당은 2008~2009년 2년 사이에 새롭게 [단청](/topic/단청)을 입히고 수리를 하였으며, [담장](/topic/담장)과 문도 보수하였다.

이 마을에서는 산신당에서 지내는 제의를 ‘산신제’, 당집이 있는 곳을 ‘산제당터’라고 한다. 제일은 매년 음력 팔월 초에서 시월 초 사이에 택일하며, 제의일시 최종 확정은 가까운 절에 가서 스님에게 물어 본다. 가능하면 월 초로 날을 잡으며, 제사 당일 해질 무렵 산에 올라가 준비하고 밤 9시쯤에 제를 지낸다.

팔현리에는 당을 관리하는 당주가 별도로 있어서 당주가 제의 사흘 정도를 앞두고 동네 사람들 가운데 생기와 복덕을 가려 [제관](/topic/제관) 한 명, [화주](/topic/화주) 한 명을 임의로 선출한다. 제관과 화주가 되면 그날부터 비린 음식을 먹지 않고, 부부 동침도 삼간다. 예전에는 [솔[가지](/topic/가지)](/topic/솔가지)를 끼운 [금줄](/topic/금줄)을 [대문](/topic/대문)에 걸어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고, 본인도 바깥출입을 자제하는 등 금기를 지켰다. 이 밖에도 당주와 제관은 당집 주변을 정리하고 깨끗이 청소한다.

제사에 쓰는 제물은 제관과 화주가 함께 장만한다. 중요한 제물인 쇠고기는 주로 장현에 있는 도살장에 미리 연락하여 좋은 물건을 확보한다. 예전에는 소 한마리를 통째 구입하여 산신당 옆에서 직접 잡아 제물로 올렸으나 요즘에는 쇠머리, 앞다리, 뒷다리를 구입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선지도 한 말 구입하여 [음복](/topic/음복) 때 안주로 한다. 이 밖의 제물과 제사에 필요한 물건은 예전에는 직접 장에 나가 구입했으나 요즈음에는 전화로 주문하여 배달시켜 받는다. [대추](/topic/대추)·밤·곶감을 삼색과일로 장만하고 소지용 종이와 초·향 등은 배달시킨다. 그러나 [시루떡](/topic/시루떡)은 화주 집에서 직접 찐다. 이 마을의 경우 시루떡을 찔 때 절대 소금 간을 하지 않는다는 금기가 있다. 진메 역시 화주 집에서 장만한다. 그 전에는 제의 장소인 당집 옆에서 불을 지펴 밥을 직접 지었다. 이 마을의 경우 제주(祭酒) 대신 당집 옆 [우물](/topic/우물)터에서 뜬 [정화수](/topic/정화수)를 올린다. 제의 준비가 모두 끝나면 당주, 제관, 화주는 의관을 정제하고 산신당으로 향한다. 이때가 저녁 8시쯤이 된다. 이 밖에 마을 사람들 중 심신이 깨끗한 사람들도 함께 산에 올라 당주와 제관이 제의를 행하는 동안 우물터에서 솥을 걸고 들고 온 선지와 각종 야채를 넣은 국을 끓이면서 제의가 끝날 때를 기다린다.

제물은 일반 그릇에 담아 진설한다. 원래 팔현리에는 대대로 물려받은 유기제기와 목제기가 있었으나 몇 년 전에 모두 도난당하고 지금은 스테인리스 그릇을 제기로 사용하고 있다. 제물은 당 안에 붙박이로 설치된 제단 위에 차린다. 앞쪽으로 대추, 껍질 벗긴 밤, 곶감을 놓고 가운데에 정화수를 올린다. 맨 뒤쪽 가운데에다 [채반](/topic/채반)에 담은 쇠머리를 올리고, 그 앞줄에 소 앞다리와 뒷다리를 진설한다. 팥시루떡은 [제상](/topic/제상) 제일 오른쪽에 두고, 양쪽에 촛불을 밝힌다. 진설이 끝나면 당주가 강신 재배를 하고 이어 축을 읽는다. [축문](/topic/축문)이끝나면 제관과 이장이 재배하고 마지막으로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마을 가가호호의 소원을 말하면서 당주가 올린다. 소지 내용은 주로 ‘가내안녕과 무탈’에 대한 기원이며, 각기 개인의 소원을 비는 소지를 올리면 모든 제의가 끝난다. [철상](/topic/철상) 한 뒤에는 고기와 삼색실과 등을 조금 나누어 당집 담장 위에 올려둔다. 음복은 제의가 진행되는 동안 끓인 선짓국으로 한다. 제상에 올린 쇠머리와 쇠다리도 이때 선짓국 솥에 넣어 삶아 꼬치로 만들어 동네 어른들 댁에 일일이 돌린다. 늦은 시간까지 음복하며 [덕담](/topic/덕담)을 나눈다.

이 마을에는 ‘선후회’라는 친목계가 활성화되어 있어 동네의 대소사와 산신제까지 모두 주도적으로 맡아 하고 있다. 산신제 비용의 경우 선후회에서 집집마다 갹출하고, 각 단체나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후원금도 추렴하는 등 경비를 마련하고 있다.
참고문헌남양주시지 3 (남양주시지편찬위원회, 2000)
경기도의 [마을](/topic/마을)신앙과 제당 (김지욱, 전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회, 2002)
형태제당은 원팔현[마을](/topic/마을)이라고 쓴 비석이 있는 마을 어귀를 지나 우측으로 난 길 오른쪽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제당을 지나 오른쪽 주택가로 올라가면 제당 뒤쪽으로 올라 갈 수있다. 제당은 천마산 줄기의 한 자락인 원팔현마을이 시작되는 초입에 있다. 왼쪽으로 팔현교를 지나 바로 있는 마을회관에서 보면 개울을 건너 마주보고 있다. 제당은 벼랑 끝에 위치하며 나무가 없는 겨울에는 제당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제당을 ‘산신당’이라 부른다. 당에도 길이 60㎝, 폭 30㎝ 정도의 크기에 푸른 글씨로「산신당(山神堂)」이라고 음각한 [현판](/topic/현판)이 걸려 있다. 산신당은 낮은 시멘트[기단](/topic/기단) 위에 가로, 세로 4×4m 크기의 [기와](/topic/기와)를 얹은 한 칸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집으로 지었다. 풍판(風板)을 달고 겹[처마](/topic/처마)를 올렸으며, 전체적으로 [단청](/topic/단청)을 하여 큰 사찰의 산신각보다 더 격이 높아 보인다. 본체의 1.5m 앞에 기와[지붕](/topic/지붕)을 얹은 작은 문을 만들고, 자연석으로 1.3m 높이의 둥근 [담장](/topic/담장)도 쌓았다. 건물 전면은 두 짝 [여닫이](/topic/여닫이)문을 만들고, [평상](/topic/평상)시에는 자물쇠를 채워 둔다. 전체적으로 매우 아담하고 균형 잡힌 당집으로, 마을 어귀에 위치하면서도 작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제의 공간으로서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당 내부에는 안쪽으로 폭 40㎝, 높이 1m 정도의 목제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 위 정면 벽면에 여닫이문을 달고 그 안에 산신탱화를 모셨다. 탱화에는 산신할아버지와 동자, 따님, 호랑이가 함께 그려져 있다. 좌우 벽면에는 팔선녀 그림을 각각 액자에 넣어 걸었다. 이 그림은 1970년대 말쯤 탱화화가에게 의뢰하여 제작하였으며, 그 이전의 그림은 너무퇴색되어 불에 태웠다. 당집 주변에 소를 잡던 [우물](/topic/우물)과 제의 준비 장소는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제의에 쓰이는 쟁반·도마·[채반](/topic/채반) 등 그릇들은 당 안에 보관하고 있다. 이 산신당은 멀리 천마산의 주봉이 보이고, 앞으로는 작지만 물이 흐르고 있어 [풍수](/topic/풍수)지리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형태제당은 원팔현[마을](/topic/마을)이라고 쓴 비석이 있는 마을 어귀를 지나 우측으로 난 길 오른쪽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제당을 지나 오른쪽 주택가로 올라가면 제당 뒤쪽으로 올라 갈 수있다. 제당은 천마산 줄기의 한 자락인 원팔현마을이 시작되는 초입에 있다. 왼쪽으로 팔현교를 지나 바로 있는 마을회관에서 보면 개울을 건너 마주보고 있다. 제당은 벼랑 끝에 위치하며 나무가 없는 겨울에는 제당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제당을 ‘산신당’이라 부른다. 당에도 길이 60㎝, 폭 30㎝ 정도의 크기에 푸른 글씨로「산신당(山神堂)」이라고 음각한 [현판](/topic/현판)이 걸려 있다. 산신당은 낮은 시멘트[기단](/topic/기단) 위에 가로, 세로 4×4m 크기의 [기와](/topic/기와)를 얹은 한 칸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집으로 지었다. 풍판(風板)을 달고 겹[처마](/topic/처마)를 올렸으며, 전체적으로 [단청](/topic/단청)을 하여 큰 사찰의 산신각보다 더 격이 높아 보인다. 본체의 1.5m 앞에 기와[지붕](/topic/지붕)을 얹은 작은 문을 만들고, 자연석으로 1.3m 높이의 둥근 [담장](/topic/담장)도 쌓았다. 건물 전면은 두 짝 [여닫이](/topic/여닫이)문을 만들고, [평상](/topic/평상)시에는 자물쇠를 채워 둔다. 전체적으로 매우 아담하고 균형 잡힌 당집으로, 마을 어귀에 위치하면서도 작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제의 공간으로서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당 내부에는 안쪽으로 폭 40㎝, 높이 1m 정도의 목제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 위 정면 벽면에 여닫이문을 달고 그 안에 산신탱화를 모셨다. 탱화에는 산신할아버지와 동자, 따님, 호랑이가 함께 그려져 있다. 좌우 벽면에는 팔선녀 그림을 각각 액자에 넣어 걸었다. 이 그림은 1970년대 말쯤 탱화화가에게 의뢰하여 제작하였으며, 그 이전의 그림은 너무퇴색되어 불에 태웠다. 당집 주변에 소를 잡던 [우물](/topic/우물)과 제의 준비 장소는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제의에 쓰이는 쟁반·도마·[채반](/topic/채반) 등 그릇들은 당 안에 보관하고 있다. 이 산신당은 멀리 천마산의 주봉이 보이고, 앞으로는 작지만 물이 흐르고 있어 [풍수](/topic/풍수)지리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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