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심리

한국무속신앙사전
경상도와 전라도지역에서 처음 어획한 대구로 국을 끓여 가정신에게 먼저 바치는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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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와 전라도지역에서 처음 어획한 대구로 국을 끓여 가정신에게 먼저 바치는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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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훈
정의경상도와 전라도지역에서 처음 어획한 대구로 국을 끓여 가정신에게 먼저 바치는 제의.
정의경상도와 전라도지역에서 처음 어획한 대구로 국을 끓여 가정신에게 먼저 바치는 제의.
내용대구로 국을 끓이면 비릿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 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즐겨 먹었다. 대구는 어체가 커서 한 번 국을 끓이면 많은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는 풍족함을 주는 물고기이다. 말린 대구는 탕이나 찜을 해서 먹는다. 알, 내장, 아가미는 젓갈로 담가 먹었다. 이처럼 버릴 것이 없는 대구는 매우 귀한 물고기로 인식되었다.

경상남도 거제도와 진해지역에서는 처음 나는 대구로 국을 끓여서 [조상신](/topic/조상신)께 먼저 올린 다음에 식구들끼리 나눠 먹었다. 이를 ‘대구 천신(薦新)’이라고 하였다. 합천지역에서는 대구를 사오면 먼저 [가신](/topic/가신)(家神)에게 대구심리를 올리고 나서 먹었다. 대구국과 찬을 장만하여 [부엌](/topic/부엌)에서 먼저 조왕신과 성주신을 위한 다음 방으로 들어가 조상을 위하였다. 이처럼 조상에게 먼저 대구심리를 하지 않으면 대구를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구심리는 보통 음력 섣달에 한다. 대구가 12월에서 2월 사이에 잡히는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진해만을 끼고 있는 거제, 창원 등지에서 대구심리가 전승돼 행해졌다. 우리나라의 진해만은 대구가 가장 많이 잡히는 어장이어서 경남 지역에 대구가 많이 유통되었다. 대구는 한류를 따라 남해로 들어와 진해만에서 산란을 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잡은 대구가 가장 크고 맛이 있다. 현재는 거제의 외포항이 대구를 많이 잡아 들어오는 항구이다.
내용대구로 국을 끓이면 비릿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 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즐겨 먹었다. 대구는 어체가 커서 한 번 국을 끓이면 많은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는 풍족함을 주는 물고기이다. 말린 대구는 탕이나 찜을 해서 먹는다. 알, 내장, 아가미는 젓갈로 담가 먹었다. 이처럼 버릴 것이 없는 대구는 매우 귀한 물고기로 인식되었다.

경상남도 거제도와 진해지역에서는 처음 나는 대구로 국을 끓여서 [조상신](/topic/조상신)께 먼저 올린 다음에 식구들끼리 나눠 먹었다. 이를 ‘대구 천신(薦新)’이라고 하였다. 합천지역에서는 대구를 사오면 먼저 [가신](/topic/가신)(家神)에게 대구심리를 올리고 나서 먹었다. 대구국과 찬을 장만하여 [부엌](/topic/부엌)에서 먼저 조왕신과 성주신을 위한 다음 방으로 들어가 조상을 위하였다. 이처럼 조상에게 먼저 대구심리를 하지 않으면 대구를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구심리는 보통 음력 섣달에 한다. 대구가 12월에서 2월 사이에 잡히는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진해만을 끼고 있는 거제, 창원 등지에서 대구심리가 전승돼 행해졌다. 우리나라의 진해만은 대구가 가장 많이 잡히는 어장이어서 경남 지역에 대구가 많이 유통되었다. 대구는 한류를 따라 남해로 들어와 진해만에서 산란을 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잡은 대구가 가장 크고 맛이 있다. 현재는 거제의 외포항이 대구를 많이 잡아 들어오는 항구이다.
역사대구(大口)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즐겨 먹는 어류로서 국가 관청에 바쳐지거나 지인에게 선물로 보내졌다. 여말 선초의 문신인 양촌(陽村) 권근(權近)은 경상도 관찰사 이공원(李公原)으로부터 햇대구를 받고 감사의 시를 썼다. 이처럼 대구는 귀한 사람에게 선물로 보내지는 것으로 보아 식생활의 귀중한 자원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전기에 경상도의 남해안과 함경도의 동해안지역에서 대구가 많이 잡혔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에는 경상도의 창원, 거제, 진해, 고성, 사천, 고성 등의 토산품으로 대구가 기록되어 있다. 함경도의 함흥과 영흥 등에서도 대구는 주요 토산품이라고 실려 있다.

대구를 잡아서 많은 이득을 올리게 되자 궁방과 관청에서는 대구의 어장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1676년(숙종 2)에 영의정 허적(許積)의 제안으로 숙휘공[주방](/topic/주방)(淑徽公主房)이 빼앗은 거제도 옥포진의 대구 어장을 다시 통영(統營)에 돌려주게 되었다. 경상도 감영(監營)은 [식탁](/topic/식탁)에 오르는 중요한 자원인 대구를 팔아서 이윤을 남기려고 하였다. 1712년(숙종 38)에는 영남의 해안가 백성들이 감영에 공물로 바치는 1천 마리의 대구를 비롯한 해산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일도 있었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이 생선이 동해에서만 나고 중국에는 없기 때문에 그 이름이 문헌에 전하지 못하여 중국 사람이 진미라 하였다. 북도 명천의 건대구가 유명하다.”라고 하였다. 명천은 함경북도의 동해안에 접한 지역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함경도에서는 대구가 많이 잡혀 사재감(司宰監)에 백대구어(白大口魚)를 진상하였다.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많이 나는 대구가 중국인들이 진미라 할 정도로 중국에까지 대구의 명성이 퍼진 것이다.
역사대구(大口)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즐겨 먹는 어류로서 국가 관청에 바쳐지거나 지인에게 선물로 보내졌다. 여말 선초의 문신인 양촌(陽村) 권근(權近)은 경상도 관찰사 이공원(李公原)으로부터 햇대구를 받고 감사의 시를 썼다. 이처럼 대구는 귀한 사람에게 선물로 보내지는 것으로 보아 식생활의 귀중한 자원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전기에 경상도의 남해안과 함경도의 동해안지역에서 대구가 많이 잡혔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에는 경상도의 창원, 거제, 진해, 고성, 사천, 고성 등의 토산품으로 대구가 기록되어 있다. 함경도의 함흥과 영흥 등에서도 대구는 주요 토산품이라고 실려 있다.

대구를 잡아서 많은 이득을 올리게 되자 궁방과 관청에서는 대구의 어장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1676년(숙종 2)에 영의정 허적(許積)의 제안으로 숙휘공[주방](/topic/주방)(淑徽公主房)이 빼앗은 거제도 옥포진의 대구 어장을 다시 통영(統營)에 돌려주게 되었다. 경상도 감영(監營)은 [식탁](/topic/식탁)에 오르는 중요한 자원인 대구를 팔아서 이윤을 남기려고 하였다. 1712년(숙종 38)에는 영남의 해안가 백성들이 감영에 공물로 바치는 1천 마리의 대구를 비롯한 해산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일도 있었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이 생선이 동해에서만 나고 중국에는 없기 때문에 그 이름이 문헌에 전하지 못하여 중국 사람이 진미라 하였다. 북도 명천의 건대구가 유명하다.”라고 하였다. 명천은 함경북도의 동해안에 접한 지역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함경도에서는 대구가 많이 잡혀 사재감(司宰監)에 백대구어(白大口魚)를 진상하였다.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많이 나는 대구가 중국인들이 진미라 할 정도로 중국에까지 대구의 명성이 퍼진 것이다.
지역사례대구심리는 거제시와 창원시 등 경남에서 많이 하는 제의이지만 보성군, 여수시 등 남해안과 접하고 있는 전남지역에서도 행하였다. 보성에서는 처음 잡은 대구를 올려 조상에게 감사를 드렸다. 여수지역에서는 어부들이 대구를 처음 잡아서 먼저 조상 앞에 차려 두고 대구심리를 한 뒤에 식구들과 국을 끓여 먹었다.
참고문헌陽村集, 世宗實錄地理志, 備邊司謄錄, 新增東國輿地勝覽, 閨閤叢書, 경상남도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전라남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한국의 가정신앙-경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지역사례대구심리는 거제시와 창원시 등 경남에서 많이 하는 제의이지만 보성군, 여수시 등 남해안과 접하고 있는 전남지역에서도 행하였다. 보성에서는 처음 잡은 대구를 올려 조상에게 감사를 드렸다. 여수지역에서는 어부들이 대구를 처음 잡아서 먼저 조상 앞에 차려 두고 대구심리를 한 뒤에 식구들과 국을 끓여 먹었다.
참고문헌陽村集, 世宗實錄地理志, 備邊司謄錄, 新增東國輿地勝覽, 閨閤叢書, 경상남도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전라남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한국의 가정신앙-경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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