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지석리에서 [마을](/topic/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제사. 마을에서는 일반적으로 정개산산신제, 지석리산신제, 소당산산신제라고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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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홍순석 |
정의 |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지석리에서 [마을](/topic/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제사. 마을에서는 일반적으로 정개산산신제, 지석리산신제, 소당산산신제라고 부른다. | 정의 |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지석리에서 [마을](/topic/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제사. 마을에서는 일반적으로 정개산산신제, 지석리산신제, 소당산산신제라고 부른다. | 내용 | 이천시 신둔면 지석리의 뒷산은 정개산이다. 사람들은 정개산에 산신령이 살고 있다고 여기고 격년제, 즉 이 년에 한 번 음력 이월 초하룻날에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는 곳은 정개산 중턱으로, 이곳을 ‘산지사터’라고 부른다. ‘산지사’는 ‘산제사’의 사투리, ‘산지사터’는 ‘산제사를 지내는 터’라는 의미이다. 정개산은 [풍수](/topic/풍수)적으로 [명당](/topic/명당)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예부터 무덤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마을](/topic/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암매장을 해 산신령의 진노를 사서 마을이 해를 입을까봐 두려워한다. 1950년대에 정개산 중턱에서 불빛이 새어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조상 묘를 쓴다고 여겨 그곳으로 달려가 땅을 파헤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정개산산신제에는 당집이나 신목이 없다. 단지 중턱에 제물을 진설하기 위해 축대를 쌓아 놓았을 뿐이다. 축대의 크기는 소 한 마리를 놓고도 남을 만하다. 제를 올릴 때에는 이곳에 [차양](/topic/차양)을 친다. 축대로부터 아래로 10m 떨어진 지점에는 큰 바위가 있다. 큰 바위 밑에는 그릇․시루․술병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제사 때마다 이것을 사용한다. 정개산 중턱은 산신령이 사는 곳이다. 그렇기에 산지사터 위로는 무덤을 쓸 수 없도록 마을에서 규정을 만들었다. 또한 산지사터 주위에서 침을 뱉거나 오줌을 누는 등 부정한 행위를 할 수 없다. 나무도 베어서는 안 된다. 제사 전에 가장 중요한 일이 [제관](/topic/제관) 선정과 제물 준비이다. 제사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제관, 축관, 화부를 뽑는다. 제관과 축관은 각각 한 명, 화부는 두 명을 선출하는데,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가려 선출한다. 이들을 뽑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성명과 생년월일을 적어서 책력으로 따진다. 제관 등으로 뽑힌 사람들은 집 [대문](/topic/대문)과 마을 입구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금기된 생활에 들어간다. 비린 음식을 먹지 않고 초식 위주로 한다. 그리고 제사 지내기 사흘 전부터는 외출을 금하고, 음식도 소식(小食)을 한다. 또한 매일 목욕을 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 제를 지내기 전날에도 목욕재계를 하며, 이때에는 음식을 먹지 않고 근신한다. 제의 비용은 각 가구에서 쌀 한 말씩 추렴하여 사용한다. 이것은 2년치를 모아서 하는 것이지만 부족할 경우 마을에 적립된 돈으로 충당한다. 제의비용을 추렴할 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비용을 내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마을 행사라고 하여 무조건 거두게 되었다. 산신제의 가장 큰 제물은 황소이다. 산신제를 주관하는 [대동회](/topic/대동회)에서는 [잡색](/topic/잡색)이 없는 황소를 구입하며, 보통 3살 이상 된 소이다. 소는 2년 동안 집집마다 거둔 쌀로 구입한다. 소의 값이 비싸고 쌀의 가격이 떨어지면 개인별로 돈을 보태 구입한다. 일 년에 집집마다 추렴하는 쌀은 대두 한 말이다. 이 쌀을 ‘산제미(山祭米)’ 또는 ‘동미(洞米)’라고 부르며, 이장이 관리한다. 소값이 비싼 때에는 마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대가 있었지만 어른들이 “어려운 일제강점기에도 해 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여 계속 소를 잡고 있다. 구입한 소는 부정이 없는 집에 두었다가 제사 당일 정개산의 흐르는 물에 깨끗이 몸을 씻긴 다음 이천의 도살장에서 잡아 제당으로 운반한다. 특히 소를 도살할 때에는 잡은 부위가 빠지지 않도록 열 명 정도가 참관한다. 소의 [가죽](/topic/가죽)도 가져온다. 토막 낸 소고기는 경운기를 이용해 마을로 옮긴다. 예전에는 모두 [지게](/topic/지게)로 날랐다. 황소 이외에 귀한 제물은 대구이다. 대구는 물고기 가운데 가장 비싸다. 상태가 좋은 대구를 고르기 위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구입한다. 이 밖의 제수로 [대추](/topic/대추), 밤, 감 등 삼색과일이 있다. 가게에서는 흥정을 하지 않고 조용히 가서 조용히 사온다. 음력 이월 초하룻날 새벽 4~5시가 되면 제관과 화부는 제사 준비를 위해 정개산을 오른다. 당 주위에 흐르는 물로 먼저 세수를 한다. 원래는 목욕재계를 하였지만 지금은 세수로 약식화하였다. 그런 뒤 제관과 화부는 메를 지어 [정화수](/topic/정화수)와 함께 제단에 올려서 절하고, 메와 누룩을 버무려서 땅에 묻은 다음 그 위에 불을 지펴 [조라술](/topic/조라술)을 만든다. 조라술은 15시간 만에 숙성되어 그날 밤 12시에 지내는 제사에 쓸 수 있다. 오전 중에는 백설기를 쪄 제단에 올린다. 떡가루는 제관 집에서 미리 찧는다. 제사 시간이 가까워지면 오전에 잡은 소를 당으로 운반한다. 마을 사람들은 당 주위에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당 밑에까지만 운반하고 당까지는 화부들이 운반한다. 소를 산 중턱 축대까지 운반하기 위해 화부들은 여러 차례 지게를 지고 다녀야만 한다. 제사상에는 먼저 쇠가죽을 깔고 토막 낸 고기를 맞추어 소의 형태가 되도록 한다. 이때 소의 머리는 동쪽을 향하게 하며, 소 이외에 조라술과 삼색과일 등을 진설한다. 이 시간이 되면 축관이 산으로 올라오며, 한쪽에서는 쇠목을 넣어 선짓국을 끓인다. 선짓국은 소금만 넣어 간을 맞추며, 소를 운반한 마을 사람들의 안주가 된다. 밤 10시쯤이 되면 [삼실과](/topic/삼실과)와 대구포를 올리고 본격적으로 제사 지낼 준비를 한다. 이전에 차려 놓은 백설기 등은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제물 진설이 완료되고, 밤 12시가 되면 산신제를 시작한다. 먼저 제관이 술을 올리고 절을 두 번 한 다음 축관이 절을 하고 [축문](/topic/축문)을 읽어내려 간다. [독축](/topic/독축)(讀祝)이 끝나면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절을 하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마을소지와 당에 오른 사람인 제관․축관․화부들의 소지만 올린다. 개인별 소지는 올리지 않는다. 소지가 끝나면 간단히 [음복](/topic/음복)을 한다. 한편 회관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은 쇠고기와 선짓국을 운반하기 위해 시간에 맞춰서 산에 오른다. 마을로 운반한 소는 회관에 보관하고, 선짓국과 조라술 등은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다. 산신제의 축문은 한문과 한글 두 [가지](/topic/가지)가 있다. 한글축문은 한문의 내용을 마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2000년쯤에 수하리의 나기창(1930년생)이 번역한 것이다. 실제 제의 과정에서는 축관이 한문을 아는 사람이 맡아서 문제가 없지만 뒷날에 한문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한글축문도 보관하고 있다. 한문축문은 세로로 쓰여 있고 한글로 토를 달았으며, 한글축문은 가로로 적었다. 한문축문과 한글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維歲次 ○年 ○月 ○日 幼學○○○ 敢昭告于 鼎蓋山神 崇高惟嶽 峻極于天 巍巍其德 衆人景仰 昭昭維靈 一洞瞻望 敢陳太牢 神其格思 齋誠將祀 壇上儼然 伏惟尊靈 歆此浻酌 保佑生民 驅出厲疫 消灾致祥 掃蕩妖氛 轉禍爲福 五穀發穰 物阜民安 六畜繁殖 時和年豊 民乃隨業 報效如在 神亦載寧 永戴神功 保護周旋 一坊欣萬 使民安樂 永世無斁 尙饗 “정개산 산신이시여 뫼는 숭고하시고 하늘같이 높으시며 덕은 높고 웅장하시며 뭇사람들이 존경하며 [영기](/topic/영기)는 밝고 밝으시니 온 동리사람이 우러러 바라보옵니다. 감히 큰 희생을 벌이오니 신령은 감동하소서. 목욕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제향을 올리고저 하오니 제단이 엄숙하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귀하신 신령께서는 잔을 휘둘러 [흠향](/topic/흠향)하시옵소서. 백성을 보우해 주시고 역병을 몰아내 주시고 모든 재앙을 없이 하야 복되게 하여 주시고 불길한 재앙을 없애 주시어 화가 도리어 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곡](/topic/오곡)은 잘 여물고 물건은 살찌고 백성은 편안하며 육축은 번식하며 나라는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 들고 백성들은 마음 놓고 [생업](/topic/생업)에 종사하야 신령님께서도 또한 편안하옵소서. 오래도록 신령님의 공덕을 뫼실 것이오니 보호하도록 주선하소서. 온 동리가 즐거움이 가득하고 백성들의 안락함이 오래 끝이 없도록 하여 주옵소서. 흠향하소서.” 마을 사람들은 산신제를 지낸 날 아침에 마을회관에 모여 음복을 한다. 이때 선짓국과 쇠목만을 쓰고 다른 부위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쇠목 외의 다른 부위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몫이기 때문이다. 소는 지석리 5개반 반장들이 참여하여 반별로 나누며, 제사에 쓰인 대구와 과일 등도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 나눈 고기 가운데 제관, 축관, 화부에게는 수고했다는 의미로 고기 한 근씩을 따로 떼어 준다. | 내용 | 이천시 신둔면 지석리의 뒷산은 정개산이다. 사람들은 정개산에 산신령이 살고 있다고 여기고 격년제, 즉 이 년에 한 번 음력 이월 초하룻날에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는 곳은 정개산 중턱으로, 이곳을 ‘산지사터’라고 부른다. ‘산지사’는 ‘산제사’의 사투리, ‘산지사터’는 ‘산제사를 지내는 터’라는 의미이다. 정개산은 [풍수](/topic/풍수)적으로 [명당](/topic/명당)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예부터 무덤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마을](/topic/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암매장을 해 산신령의 진노를 사서 마을이 해를 입을까봐 두려워한다. 1950년대에 정개산 중턱에서 불빛이 새어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조상 묘를 쓴다고 여겨 그곳으로 달려가 땅을 파헤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정개산산신제에는 당집이나 신목이 없다. 단지 중턱에 제물을 진설하기 위해 축대를 쌓아 놓았을 뿐이다. 축대의 크기는 소 한 마리를 놓고도 남을 만하다. 제를 올릴 때에는 이곳에 [차양](/topic/차양)을 친다. 축대로부터 아래로 10m 떨어진 지점에는 큰 바위가 있다. 큰 바위 밑에는 그릇․시루․술병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제사 때마다 이것을 사용한다. 정개산 중턱은 산신령이 사는 곳이다. 그렇기에 산지사터 위로는 무덤을 쓸 수 없도록 마을에서 규정을 만들었다. 또한 산지사터 주위에서 침을 뱉거나 오줌을 누는 등 부정한 행위를 할 수 없다. 나무도 베어서는 안 된다. 제사 전에 가장 중요한 일이 [제관](/topic/제관) 선정과 제물 준비이다. 제사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제관, 축관, 화부를 뽑는다. 제관과 축관은 각각 한 명, 화부는 두 명을 선출하는데,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가려 선출한다. 이들을 뽑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성명과 생년월일을 적어서 책력으로 따진다. 제관 등으로 뽑힌 사람들은 집 [대문](/topic/대문)과 마을 입구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금기된 생활에 들어간다. 비린 음식을 먹지 않고 초식 위주로 한다. 그리고 제사 지내기 사흘 전부터는 외출을 금하고, 음식도 소식(小食)을 한다. 또한 매일 목욕을 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 제를 지내기 전날에도 목욕재계를 하며, 이때에는 음식을 먹지 않고 근신한다. 제의 비용은 각 가구에서 쌀 한 말씩 추렴하여 사용한다. 이것은 2년치를 모아서 하는 것이지만 부족할 경우 마을에 적립된 돈으로 충당한다. 제의비용을 추렴할 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비용을 내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마을 행사라고 하여 무조건 거두게 되었다. 산신제의 가장 큰 제물은 황소이다. 산신제를 주관하는 [대동회](/topic/대동회)에서는 [잡색](/topic/잡색)이 없는 황소를 구입하며, 보통 3살 이상 된 소이다. 소는 2년 동안 집집마다 거둔 쌀로 구입한다. 소의 값이 비싸고 쌀의 가격이 떨어지면 개인별로 돈을 보태 구입한다. 일 년에 집집마다 추렴하는 쌀은 대두 한 말이다. 이 쌀을 ‘산제미(山祭米)’ 또는 ‘동미(洞米)’라고 부르며, 이장이 관리한다. 소값이 비싼 때에는 마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대가 있었지만 어른들이 “어려운 일제강점기에도 해 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여 계속 소를 잡고 있다. 구입한 소는 부정이 없는 집에 두었다가 제사 당일 정개산의 흐르는 물에 깨끗이 몸을 씻긴 다음 이천의 도살장에서 잡아 제당으로 운반한다. 특히 소를 도살할 때에는 잡은 부위가 빠지지 않도록 열 명 정도가 참관한다. 소의 [가죽](/topic/가죽)도 가져온다. 토막 낸 소고기는 경운기를 이용해 마을로 옮긴다. 예전에는 모두 [지게](/topic/지게)로 날랐다. 황소 이외에 귀한 제물은 대구이다. 대구는 물고기 가운데 가장 비싸다. 상태가 좋은 대구를 고르기 위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구입한다. 이 밖의 제수로 [대추](/topic/대추), 밤, 감 등 삼색과일이 있다. 가게에서는 흥정을 하지 않고 조용히 가서 조용히 사온다. 음력 이월 초하룻날 새벽 4~5시가 되면 제관과 화부는 제사 준비를 위해 정개산을 오른다. 당 주위에 흐르는 물로 먼저 세수를 한다. 원래는 목욕재계를 하였지만 지금은 세수로 약식화하였다. 그런 뒤 제관과 화부는 메를 지어 [정화수](/topic/정화수)와 함께 제단에 올려서 절하고, 메와 누룩을 버무려서 땅에 묻은 다음 그 위에 불을 지펴 [조라술](/topic/조라술)을 만든다. 조라술은 15시간 만에 숙성되어 그날 밤 12시에 지내는 제사에 쓸 수 있다. 오전 중에는 백설기를 쪄 제단에 올린다. 떡가루는 제관 집에서 미리 찧는다. 제사 시간이 가까워지면 오전에 잡은 소를 당으로 운반한다. 마을 사람들은 당 주위에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당 밑에까지만 운반하고 당까지는 화부들이 운반한다. 소를 산 중턱 축대까지 운반하기 위해 화부들은 여러 차례 지게를 지고 다녀야만 한다. 제사상에는 먼저 쇠가죽을 깔고 토막 낸 고기를 맞추어 소의 형태가 되도록 한다. 이때 소의 머리는 동쪽을 향하게 하며, 소 이외에 조라술과 삼색과일 등을 진설한다. 이 시간이 되면 축관이 산으로 올라오며, 한쪽에서는 쇠목을 넣어 선짓국을 끓인다. 선짓국은 소금만 넣어 간을 맞추며, 소를 운반한 마을 사람들의 안주가 된다. 밤 10시쯤이 되면 [삼실과](/topic/삼실과)와 대구포를 올리고 본격적으로 제사 지낼 준비를 한다. 이전에 차려 놓은 백설기 등은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제물 진설이 완료되고, 밤 12시가 되면 산신제를 시작한다. 먼저 제관이 술을 올리고 절을 두 번 한 다음 축관이 절을 하고 [축문](/topic/축문)을 읽어내려 간다. [독축](/topic/독축)(讀祝)이 끝나면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절을 하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마을소지와 당에 오른 사람인 제관․축관․화부들의 소지만 올린다. 개인별 소지는 올리지 않는다. 소지가 끝나면 간단히 [음복](/topic/음복)을 한다. 한편 회관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은 쇠고기와 선짓국을 운반하기 위해 시간에 맞춰서 산에 오른다. 마을로 운반한 소는 회관에 보관하고, 선짓국과 조라술 등은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다. 산신제의 축문은 한문과 한글 두 [가지](/topic/가지)가 있다. 한글축문은 한문의 내용을 마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2000년쯤에 수하리의 나기창(1930년생)이 번역한 것이다. 실제 제의 과정에서는 축관이 한문을 아는 사람이 맡아서 문제가 없지만 뒷날에 한문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한글축문도 보관하고 있다. 한문축문은 세로로 쓰여 있고 한글로 토를 달았으며, 한글축문은 가로로 적었다. 한문축문과 한글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維歲次 ○年 ○月 ○日 幼學○○○ 敢昭告于 鼎蓋山神 崇高惟嶽 峻極于天 巍巍其德 衆人景仰 昭昭維靈 一洞瞻望 敢陳太牢 神其格思 齋誠將祀 壇上儼然 伏惟尊靈 歆此浻酌 保佑生民 驅出厲疫 消灾致祥 掃蕩妖氛 轉禍爲福 五穀發穰 物阜民安 六畜繁殖 時和年豊 民乃隨業 報效如在 神亦載寧 永戴神功 保護周旋 一坊欣萬 使民安樂 永世無斁 尙饗 “정개산 산신이시여 뫼는 숭고하시고 하늘같이 높으시며 덕은 높고 웅장하시며 뭇사람들이 존경하며 [영기](/topic/영기)는 밝고 밝으시니 온 동리사람이 우러러 바라보옵니다. 감히 큰 희생을 벌이오니 신령은 감동하소서. 목욕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제향을 올리고저 하오니 제단이 엄숙하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귀하신 신령께서는 잔을 휘둘러 [흠향](/topic/흠향)하시옵소서. 백성을 보우해 주시고 역병을 몰아내 주시고 모든 재앙을 없이 하야 복되게 하여 주시고 불길한 재앙을 없애 주시어 화가 도리어 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곡](/topic/오곡)은 잘 여물고 물건은 살찌고 백성은 편안하며 육축은 번식하며 나라는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 들고 백성들은 마음 놓고 [생업](/topic/생업)에 종사하야 신령님께서도 또한 편안하옵소서. 오래도록 신령님의 공덕을 뫼실 것이오니 보호하도록 주선하소서. 온 동리가 즐거움이 가득하고 백성들의 안락함이 오래 끝이 없도록 하여 주옵소서. 흠향하소서.” 마을 사람들은 산신제를 지낸 날 아침에 마을회관에 모여 음복을 한다. 이때 선짓국과 쇠목만을 쓰고 다른 부위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쇠목 외의 다른 부위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몫이기 때문이다. 소는 지석리 5개반 반장들이 참여하여 반별로 나누며, 제사에 쓰인 대구와 과일 등도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 나눈 고기 가운데 제관, 축관, 화부에게는 수고했다는 의미로 고기 한 근씩을 따로 떼어 준다. | 의의 | 지석리의 산제사는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으며, 6․25전쟁 때 큰 피해를 보지 않은 점과 전사자가 없는 점을 모두 산신의 도움으로 보아 산신제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다. 지석리에는 2000년쯤에 교회가 [마을](/topic/마을)에 들어왔으나, 신자는 대부분 외지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산신제를 지내는 사람과 교인들 사이에 약간의 알력이 존재하기도 한다. 2010년 현재 100가구 가운데 산제사에 참여하는 수는 80가구이다. | 참고문헌 | 경기민속지 1 (경기도박물관, 1998) 이천의 민간신앙 (홍순석, 민속원, 2004) | 의의 | 지석리의 산제사는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으며, 6․25전쟁 때 큰 피해를 보지 않은 점과 전사자가 없는 점을 모두 산신의 도움으로 보아 산신제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다. 지석리에는 2000년쯤에 교회가 [마을](/topic/마을)에 들어왔으나, 신자는 대부분 외지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산신제를 지내는 사람과 교인들 사이에 약간의 알력이 존재하기도 한다. 2010년 현재 100가구 가운데 산제사에 참여하는 수는 80가구이다. | 참고문헌 | 경기민속지 1 (경기도박물관, 1998) 이천의 민간신앙 (홍순석, 민속원,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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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사 | 한국민속대사전 2 |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 1991 | 민속원 | 서울 이태원 부군당굿 | 양종승 |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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