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가신묘역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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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2 00:00
향토문화유적명 relicsNm | 홍가신묘역 및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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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지정번호 appnNo | 지정번호 없음 |
향토문화유적구분 relicsKnd | 유형문화유적 |
향토문화유적종류 relicsSe | 묘 및 비 |
소재지도로명주소 rdnmadr | |
소재지지번주소 lnmadr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 76 |
위도 latitude | 36.81309365 |
경도 longitude | 127.0442274 |
지정일자 appnDate | 2021-09-05 |
소유주체구분 posesnSe | 사유 |
소유자명 ownerNm | 남양홍씨 문장공파종중 |
규모 scale | 분묘2, 석물6, 묘표2, 신도비1 |
조성시대 makePd | 조선 |
이미지정보 picInfo | |
향토문화유적소개 relicsIntrcn | 홍가신 묘표는 홍가신(洪可臣, 1541~1615)의 묘소 앞에 세워져 있다. 대리암(속칭 대리석)으로 만든 장방형 대좌 위에 머리 부분을 둥글게 만든 원수(圓首) 형, 또는 갈(碣) 형 비신을 세웠다. 대좌는 윗부분의 네 변을 둥글게 다듬어 각을 없앴다. 역시 대리암으로 만든 비의 앞면에는 오른쪽(바라볼 때 왼쪽)에 ‘崇政大夫寧原君致仕洪公可臣之墓(숭정대부영원군치사홍공가신지묘)’, 왼쪽에 ‘貞敬夫人載寧李氏?左(정경부인재령이씨부좌)’라 새겨져 있다. 홍가신 묘표가 특별한 점은 뒷면의 음기(묘비명)를 홍가신 스스로가 지은 명(銘), 자명(自銘)을 새겨 일찍이 묘비를 세웠었던 점이다. 음기의 맨 끝에 기록된 ‘만력 무신년 12월 25일 찬’한, 즉 선조 41년(1608) 12월 25일에 찬한 사람이 바로 홍가신이다. 그러나 그 비석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200여 년 뒤인 1830년에 다시 비석을 만들어 새긴 것이 지금의 이 홍가신 묘표다. 그런 사실이 비의 오른쪽, 바라보며 왼쪽 옆면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萬曆四庚寅閏四月 日 八代孫始祿改建 九代孫圭璜謹書(만력사경인윤사월 일 팔대손시록개건 구대손규황근서)’ 홍가신의 신도비는 아산지역의 신도비 중 유일하게 자연 바위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 형태의 옥개석을 올린 비석이다. 지붕돌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며 처마 선이 얇고 수평의 직선이다. 귀마루(추녀마루)는 굵고 뚜렷하게 표현되었고 끝을 올려 반전을 표현하였다. 비문은 조경(趙絅)이 짓고 글씨는 김세흠(金世欽)이 썼으며, 권규(權珪)가 두전의 전서를 썼다. 두전에는 ‘判書致仕 贈右議政 諡文莊公 晩全洪先生神道碑(판서치사 증우의정 시문장공 만전홍선생신도비)’라 쓰여 있다. |
관리기관전화번호 phoneNumber | 041-536-8775 |
관리기관명 institutionNm | 충청남도 아산시청 |
데이터기준일자 referenceDate | 2021-11-02 |
ctprvnNm | 충청남도 |
sigunguNm | 아산시 |
sido | 34 |
sigungu | 34040 |
upmyund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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